[비즈한국] “인자함은 지나쳐도 화가 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
15일 김수남 검찰총장이 떠나면서 남긴 이임사에서 인용한 송나라 문인 소동파의 문장이다. 김 총장은 이를 거론하면서 “수사에 있어서 소신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나만 정의롭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며 “재판의 미덕은 공정에 있고 수사의 미덕은 절제에 있다. 검찰에 부여된 권한은 절제해 꼭 알맞게 행사하고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하고 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검찰이 나아가야 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듯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김수남 총장은 재직 시절 여러 사건들에 대해서 ‘환부만 도려내야 한다’고 거듭 얘기를 했었지 않느냐”며 “굳이 다시 이임사에서 이를 언급한 것은, 검찰은 그렇게 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대검찰청은 ‘여러 언론의 부탁이 있었다’며 A4 용지 5장 분량의 ‘김수남 총장 1년의 성과’ 자료를 언론에 뿌렸는데 이 자리에서 검찰은 “김수남 총장이 처벌에 대한 원칙을 정립했고 검찰은 이에 준수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다른 관계자 역시 “김수남 총장이 이임사에서 재판의 미덕은 공정에 있다고 적은 것 자체가, 검찰뿐 아니라 법원도 정치적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검찰을 향한 칼날의 방향을 바꾸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이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 명백한 가운데, 자신이 이끌던 검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한 이임사”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검찰을 둘러싼 분위기는 좋지 않다. 일부 검사들은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검찰 내 개혁의 목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의정부지검 임은정 검사는 14일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검사 게시판이 활발하던 그때가 그립다”며 “이제라도 머리를 맞대고 검찰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지 지혜를 모으자”고 적었다.
부산고검 박철완 검사 역시 검찰 조직을 먼 길을 가는 새에 비유하며 “공수처 설치나 수사권 조정은 2005년, 2011년에도 활발하게 논의가 있었다. 검찰로 6년 단위로 돌아오는 혜성과 같다. 검찰 구성원들의 마음과 자세가 과거와 많이 달라진 듯하다”고 올렸다.
“검찰이 정치적인 중립을 이번 기회에 확보해야 한다”며 두 검사의 글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를 원치 않는 검사들이 더 많은 것이 검찰 내 분위기다. 특히 임은정 검사를 비롯해, 내부망에 올라오는 글들에 대해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검사들도 있다.
대검의 한 부장검사는 “임은정 검사에 대해서 나쁜 감정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개인의 의견을 SNS에 올려 언론에 회자되게 하는 것은 검찰 내 분위기가 앞선 총장 시절 수사 전체에 대해 비판적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며 “많은 검사들이 ‘당시 최선의 결정을 했고, 더 나은 결정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생각함에도 마치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일부 검사의 글로 검찰 전체가 ‘개혁을 원한다’는 것처럼 비칠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 역시 “검찰 내 불문율 중에 하나가 수사에 관여하지 않은, 다른 수사팀에서 한 수사에 대해서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이라며 “검찰의 인사권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사팀-대검-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보고 라인 속에서 치열하게 법리와 혐의 사이에서 구속 여부, 혐의 적용 범위를 토의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앞선 수사들 전체에 대해 무조건 ‘정치 수사’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평가”라고 경계했다.
최소한 앞으로 한 달, 법조계는 이런 ‘검찰 개혁 방향’을 놓고 여러 의견들이 개진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정농단 사건 당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이후 법무장관 자리가 6개월째 공석인 상황에서 이창재 차관이 지난 8일, 김수남 총장이 최근 사표를 내면서 현재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는 모두 비어 있기 때문.
국무총리마저 공석인 탓에, 법무, 검찰 수뇌부 자리가 채워지려면 최소 한 달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무총리가 되어야, 법무부 장관 자리에 후보를 제청할 수 있는데,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 검찰총장의 경우, 임명 제청권자는 법무부 장관이기에 이낙연 총리 후보자뿐 아니라, 장관 후보자까지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앞선 대검찰청 관계자는 “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두 달 정도, 인사가 새롭게 정비되는 기간 동안에는 대형 부패 사건 수사를 하지 못했다”며 “이미 큰 사건(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을 진행했기 때문에 수뇌부 인사가 날 때까지 검찰은 외형적으로는 재판에 대비하고, 내부적으로 대검, 법무부 검사장 급들을 중심으로 개혁 방향을 어떻게 제시할지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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