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생명의 계절, 5월은 철쭉의 달이다. 전국 곳곳에서 철쭉 축제가 줄지어 벌어진다. 황량한 벌판에 불씨 지피듯 찬바람 속에서 꽃을 피우는 쪼매한 풀꽃들이 나름 앙증맞게 곱다. 하지만 따스한 봄 하늘이 보이는 푸른 잎새 사이사이로 커다란 꽃 더미를 피어 올리는 꽃나무들의 화려한 꽃 향연이 봄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5월은 새 생명의 기운이 번져가는 연초록 산천에 꽃 잔치의 마무리 점을 찍듯 푸른 잎과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계절이다. 봄이 비로소 완연하게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삭막한 들판에 봄 햇살 내리쬐면서 화들짝 놀란 이른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던 한 시기가 지나갔다. 돌풍처럼 휘젓고 지나간 봄바람 따라 겨우내 숨죽이던 풀꽃이 예서 제서 봄소식을 알리고 나니 묵직한 산세의 빛깔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칙칙한 암갈색 너울을 걷어내고 밝고 상큼한 신비(神秘)의 담녹색으로 생명의 빛을 띠기 시작한다. 메마른 가지에 새 움이 돋고 어둠에 싸인 산골짜기에 봄빛이 퍼져 가면 꽃보다 더 고운 연둣빛 세계가 펼쳐진다. 신록에 잠긴 산천에 생명의 기운이 싱그럽게 번져 나간다.
태백산 천제단(天祭壇)을 오르는 길에는 갖가지 5월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발밑에도 지천이지만 눈높이에서 수줍은 듯 푸른 잎새 사이사이에서 철쭉꽃이 환하게 반겨주었다. 산 전체가 온통 철쭉꽃으로 이어지는 철쭉 능선이나 군락지보다 숲길 따라 푸른 잎새에 숨은 듯 간간이 나타나는 철쭉꽃 더미가 더욱 정겹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푸른 잎새에 살짝 감추어진 철쭉의 꽃은 지나치게 발랄하지 않아 곰살맞다. 새 생명의 연둣빛 이파리 속에서 진한 빨강도, 완전 하양도 아닌 우윳빛 도는 연분홍 색깔이 정겹다. 천사 같은 해맑은 웃음으로 가슴을 녹이는 돌쟁이 갓난아이의 보송보송한 피부 빛처럼 곱다. 진달래꽃처럼 이파리도 없는 맨 가지에 꽃을 활짝 피워 요란스럽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얄팍하지도 않게 도톰한 꽃잎에 산철쭉이나 영산홍처럼 격정의 새빨간 빛도 아니다. 연둣빛 잎새에 수줍은 듯 감추어진 연한 분홍빛의 도톰하고 큼직한 꽃송이가 따습게 가슴을 파고드는 꽃이다.
철쭉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지에 자생하는 높이 2∼5m의 낙엽떨기나무이다. 잎은 가지 끝에 4~5장씩 어긋나게 모여 나며 잎자루는 짧다. 잎몸은 주걱 모양의 넓은 난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잎과 동시에 피며 가지 끝에 3~7개씩 산형으로 달리고 연분홍색이거나 드물게는 흰색이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하지만,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으므로 ‘개꽃’이라고도 한다. 철쭉의 학명은 Rhododendron schlippenbachii인데 슐리펜바키(schlippenbachii)는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이 꽃을 처음 발견하여 서방에 소개한 러시아 해군 장교의 이름이다.
비슷한 종(種)으로 진달래, 산철쭉, 영산홍 등이 있다. 서로 비슷하여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우선 진달래는 4~5월경에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꽃잎이 얇아 반투명하다. 또 꽃 색깔이 붉은빛이 강한 분홍색이어서 철쭉과 쉽게 구분이 된다.
산철쭉은 철쭉과 매우 비슷하여 구분이 쉽지 않다. 꽃이 피는 시기도 같고 독성이 있어 먹지도 못하는 등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다. 더구나 지방 곳곳에서 벌이는 철쭉 축제가 대부분 산철쭉 축제인데 철쭉 축제라 부르기에 더욱 헷갈린다. 큰 차이점은 잎 모양과 꽃 색깔이다. 산철쭉은 잎 모양이 버들잎처럼 길고 갸름하고 꽃 색깔이 붉은빛이다. 철쭉은 잎이 주걱 모양으로 끝이 둥글고 꽃 색이 흰빛이 감도는 연한 분홍이다.
영산홍은 철쭉과 크게 다르다. 영산홍은 일본에서 주로 개량하여 보급한 원예품종으로 자생하는 꽃이 아니다. 영산홍은 다양한 품종개량으로 영산홍 자체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산홍은 키도 1m 이내이고 꽃도 훨씬 작으며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반상록성이다. 꽃은 진한 홍색이 대부분이지만 워낙 품종 개량이 많아 붉은색, 분홍색, 자주색, 흰색 등 색깔도 다양하다. 수술도 대부분 5개이지만 품종에 따라 더 많은 것도 있다.
최근에는 영산홍 개량 품종이 산철쭉과 비슷한 종이 많아 산철쭉과의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이르렀다. 영산홍은 키가 작다고 해서 왜철쭉이라고도 한다.
철쭉의 꽃말은 ‘정열’, ‘사랑의 기쁨’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수로부인(水路夫人)과 헌화가(獻花歌) 관련 설화에서 수로부인에게 꺾어 바친 높은 바위 위의 꽃이 바로 철쭉꽃이라고 한다. 철쭉은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곱게 여겨왔던 우리의 자생 꽃나무임을 알 수 있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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