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벼락같이 시작된 19대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시대’가 열렸다. 그간 정치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그러나 대선후보 위주라는 한계를 가진 선거 보도 탓에 유권자는 보도의 주변으로 쫓겨나며,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청년, 특히 기성 매체와 기자의 범위 바깥에 있는 청년들은 더욱 그랬다. 청년들은 아직 할 말이 많다. ‘비즈한국’이 ‘미스핏츠’ ‘밀레니얼 오브 서울’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날이 선 채로, 날 것 그대로’ 풀어보는 ‘날;청년’도 계속된다.
24세 여성 이영초(가명)의 의식주에는 크게 불편한 게 없다.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고, 용돈이 모자라 끼니를 굶을 걱정도 없으며, 가지고 싶은 옷이 있으면 모아둔 돈으로 망설임 없이 구매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이건 다 개소리다. 우리 모두는 사실 편안한 삶이 좋다. 그녀는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이 행복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냥, 그렇게 좋은 삶
―처음에는 간단한 질문부터 해보자. 여기까지 뭐 타고 왔어? 평소처럼 스쿠터 타고 왔어?
“아니아니. 마침 강남역 근처에 있어서 지하철 타고 왔어. 집에 갈 때는 시간도 늦었고 교통이 불편하니까 택시 탈 거야.”
―평소에 택시를 자주 타는 편이야?
“교통이 불편하거나 피곤할 때에는. 택시비가 안 아까운 건 아닌데, 그런 날 있잖아. 대중교통에서 사람들한테 시달리기가 싫은 날.”
―어젠 뭐 했어? 평소에 집에서 쉴 때, 뭐 하면서 쉬어?
“학교에서 공부했어. 방학인데 딱히 할 게 없어서. 사실 요즘 스쿠터 타는 거에 취미를 붙였는데,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고치느라 학교에 갔거든. 아니면 집에서는 프라모델(plastic model) 만들어. 밀리터리 프라모델.”
―스쿠터?
“응, 학교에서 강의실 사이가 머니까 이동용으로도 타고, 가끔 스트레스도 풀려고. 원래 예전부터 좀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학교 벼룩시장에 내가 살 만한 게 올라왔길래 충동적으로 질렀어.”
―엄마 아빠는 뭐라셔?
“부모님은 당연히 뭐라 하시지. 다칠까 걱정도 하시고. 근데 학교 안에서만 타겠다고 하고 면허를 속성으로 따서 잘 타고 다니고 있어. 그 스릴이 좋거든.”
―그럼 요즘 제일 재미있는 게 뭐야? 아니면,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제일 열심히 하고 있는 건 책 읽는 거야. 아니면 스쿠터 관련 일을 제일 열심히 해.”
―어떤 책이 좋아?
“비문학을 많이 읽어. 대학 교재 중에 아무 과목이나 관심 있는 게 있으면 이론서를 읽어. 뭔가 배우는 느낌이어서. 소설 같은 건 내 일상이랑 멀어서 그런지 그 감정이 딱히 공감이 안 되더라고. 수필은 더 그렇고.”
그럴 수 도 있고 아닐 수 도 있지
―혹시 촛불집회 가봤어?
“가봤어. 과 친구들이랑.”
―느낌이 어땠어?
“되게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어. 너무 화장실에 가고 싶었어.”
―결과적으로 촛불집회가 탄핵을 이끌고 새로운 대통령까지 만들었지만, 촛불집회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어?
“음. 근데 사실 확실히 어떤 법적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영향에 대해서 잘 몰랐지. 여론이 정치에 반영되었다는 건 결국 그 법적 판결문에서 알 수 있는 거잖아. 근데 처음에는 탄핵 여부도 불확실했으니까, 촛불 집회가 진짜로 역할을 한 건지 아닌지 몰랐어. 판결문이 나와야 알 수 있겠지. 근데 확실히 판결문을 보니까 영향을 준 건 맞는 거 같아. 촛불집회는 실천이었고, 시민의 행동이었고, 그 점에서 의미가 있지.”
―평소에 자기가 어떤 성향이다,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냥 두루뭉술하게라도.
“나는 보수라고 생각해. 뭐 굳이 투표 1번! 이런 게 아니라, 가끔 심심풀이로 하는 성격 테스트나 정치성향 테스트 있잖아. 그런 거 보면 변화를 싫어한다고 나오거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명목상 보수 정당이라도, 갑자기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면 싫어.”
―왜 그런 성향이 된 것 같아?
“아마 집안 영향이 큰 것 같아. 내가 천성적으로 막 열정 타오르고 패기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가족들하고 정치 얘기 많이 해? 친구들하고는?
“가족들 하고는 꽤 많이 하는 편이야. 뉴스 보면서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정보 교환도 하고. 근데 별로 충돌을 하고 싶지 않아서 예민한 화제는 얘기를 잘 안 꺼내고, 그럴 거리도 없어. 논쟁하는 걸 싫어해서. 친구들 하고는 정치 얘기를 하는데 주변에는 비슷한 성향인 친구들이라서 우스갯소리로 많이 하는 편이야. 막 우리 고등학교 3대 우파! 이러면서(웃음).”
―지금 제일 불편한 게 뭐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돼? 요즘 내가 스쿠터를 타니까 그거랑 관련된 거. 지금 법을 보면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 자동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게 하거든. 근데 그게 되게 위험하고 비합리적인 거라, 안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해.”
―아까랑 비슷한 질문이겠네. 그냥, 완전 헛된 망상이어도 되는데, 바라는 정책 같은 게 있었어? ‘Active X’ 완전 폐지라든지, 최저임금 2만 원이라든지, 청소년 콘돔 무상 지급이라든지.
“이번에 정권도 바뀌었는데, 심의 정책이 확 바뀌었으면 좋겠어. 국내에 게임 같은 거 들여올 때 심의를 자제했으면 좋겠어. 유해매체 지정이 너무 엄격한 것 같아. 솔직히 힙합 가사들 이런 거 보면 혐오 표현이 넘쳐나잖아. 난 오히려 게임 같은 가상 세계의 폭력이나 선정성보다 이런 실질적인 혐오 표출이 더 보기 싫거든. 그러니까 정책으로 말하자면, 게임 분야의 규제 완화.”
―혹시 바라는 대통령 후보가 있었어? 정식 등록된 후보가 아니었어도 좋아.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부터 초등학생 때 선생님, 아니면 그냥 친구나 선배, 후배라도.
“솔직히 말하자면 없어. 아! 웃음이 예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웃음).”
―그러면, 대통령이 박근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지금이랑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
“뭐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사람이 다르니까 결과도 다르겠지.”
―첫 대선이었을 텐데 느낌이 어때?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이상 첫 대선인 것도 좀 새로웠지만, 사실 더 구체적으로는 이사 와서 처음 치르는 투표여서 뭔가 신기했지. 이번에 가는 투표장은 어딜까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고.”
―투표를 사람들이 왜 한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하면 어떤 문제가 생겨?
“자신의 민주적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근데 막 꼭 해야 된다 그런 건 아니겠지. 나는 투표를 안 할 권리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다 안 하면 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일단 나는 했어.”
―이번에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어떤 세상이 오길 바라? 어떤 세상이어야 살맛이 날 것 같아?
“쉽게 말하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그거 진짜 좋은데. 더 구체적으로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져야 해. 식물, 풍만한 잎이나 줄기를 가진 식물. 좋은 전시회. 예술. 건축물. 맛있는 술. 그리고 그런 것들을 누구나 당연하게 향유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보통) 운전면허만으로는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없게 해야 해…. 이건 정말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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