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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청년] "너무 센가? 내가 20대 여자 보수잖아"

청년 공감 프로젝트 ‘날 선,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10) 스물넷 '샤이 보수' 대학생

2017.05.18(Thu) 13:47:29

​[비즈한국] 벼락같이 시작된 19대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시대’가 열렸다. 그간 정치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그러나 대선후보 위주라는 한계를 가진 선거 보도 탓에 유권자는 보도의 주변으로 쫓겨나며,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청년, 특히 ​기성 매체와 기자의 범위 바깥에 있는 청년들은 더욱 그랬다. 청년들은 아직 할 말이 많다. ‘비즈한국’이 ‘미스핏츠’ ‘밀레니얼 오브 서울’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날이 선 채로, 날 것 그대로’ 풀어보는 ‘날;청년’도 계속된다. ​

 

군복도 없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도 없었다. 빨갱이라고 욕하며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우리가 생각하던 보수와는 전혀 달랐다. 어떤 생각을 가진,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수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항상 변하지 않을 가치관을 소리치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갈림길과 마주친다. 부딪치는 가치관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은 24세 여성 박서연(가명)도 마찬가지였다.

 

노오력 해봤니?

 

―교환학생 갔다 왔다고 들었어.

“맞아. 노스다코타라고.”

 

―사우스다코타 위에?

“잘 아네? 미국이랑 캐나다 딱 가운데 있어. 미국에서 가장 추운 곳이야.” 

 

―교환학생은 어때?

“사실 나는 교환학생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한국에서 만족스러워서 굳이 안락한 집을 떠나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교수님이 견문을 넓혀 보라고 설득하셔서 일단 지원해본 거야.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보니 면접도 너무 가볍게 봤던 것 같아. 망했다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는데 누가 합격한 걸 축하해 주더라고.”​ 

 

“​막상 가려고 생각하니 돈이 문제더라. 재수할 때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내가 충당했는데 교환학생에 생각보다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거야. 사실 모아놓은 돈은 있었지만 피와 땀이 묻은 돈을 투자할 만큼 교환학생에 가치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 그래서 장학금을 받으면 가고 아니면 안 가려고 했어.”

 

―돈은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거야?

“아웃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 스무 살에 반수 할 때부터 계속 모았지. 그때 모으지 않았더라면 내 대학 생활이 지금보다 힘들었을 것 같아.”

 

―교환학생 갈 때도 부모님이 전혀 도와주시지 않았어?

“그때는 조금 도와주셨지.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독립적으로 키우려고 하시는 편이라 많이 도와주시지는 않았어.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줄 부유한 형편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거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스스로 벌었어. 사실 장학금을 받아서 학비가 안 나가긴 했어.” 

 

―예전에는 돈 없다면서 아르바이트도 안 하는 친구들을 안 좋게 봤다고 들었어.

“나도 부모님의 지원 없이 학비도 장학금 받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벌어 살고 해서 그렇게 생각했어. 장학금 나올 정도로 어렵지도 않으면서 가정형편 어렵다고 하는 애들이 있잖아.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핑계 대는 것처럼 느껴졌어. 나는 노오오력 하면 되던데 왜 거기까지 안 하고 세상 탓만 하느냐고 생각했어. 굉장히 어리고 건방진 생각이었지. ”​ 

 

“​​당시에는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몰랐어. 부모님에게 사랑도 많이 받고 자랐고, 타고난 것도 있으니까. 누군가는 정말 노력해도 성적이 안 나올 수 있지만 나는 알바를 하면서도 성적을 잘 받았거든. 운도 좋았고 어느 정도 타고난 것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간과한 것 같아. 집이 서울이라는 것도 큰 도움이야. 따로 사는 친구들은 매달 월세가 고정적으로 나가는데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어.”

 

사진=이수련

 

젊은 보수는 침묵한다

 

―정치 성향은 보수야? 대통령 후보 중에 누가 가장 나았어? 

“잘 모르겠네. 요즘 정치에 관해서는 생각을 하긴 해. 사람들이 최선보다 차악이라고 말하는데 많이 공감하게 돼. 좋아하는 사람을 뽑을 수도 있지만 정말 싫어, 이건 정말 아니야 하고 거르는 것들도 많아. 개인적으로는 문재인을 제일 먼저 걸렀지.”

 

―총선 때는 어느 당 뽑았는데?

“새누리당.”

 

―그래서 문재인 거르는 거야?

“문재인만 아니면 괜찮았어. 나머지는 상관없어. 너무 센가? 내가 20대 여자 보수잖아. 주변에 찾아보기 힘든 성향이라 얘기를 잘 안 해. 필요 없는 논쟁을 만드는 게 피곤해. 내가 정치관을 드러내면 그때부터 그러면 안 된다고 설득 아닌 설득, 강요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입을 닫거나 동조하는 척을 해. 정치 얘기가 나오면 부드럽게 넘어가라고 부모님에게 예전부터 교육을 받아 왔거든.”

 

―이런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안 나오는 샤이(shy)보수네. 부모님은 성향이 비슷한가?

“부모님이랑 정치성향이 잘 맞아. 아까 말한 이유로 맞는 사람들하고만 이야기를 하는 편이야. 우리나라의 진보-보수, 좌파-우파 개념이 확실한 개념도 아니고 결국 목적은 좋게, 좋게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것 아닌가? 너무 양쪽으로 갈라서서 극단적으로 가는 것은 좋지 않아. 난 일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어떤 이슈에서는 진보적이기도 하거든. 그런데 새누리당을 지지한다고 말하면 나는 그냥 보수가 되는 거야.”​ 

 

“​설명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너는 젊은 애가 왜 그러냐면서 따져 막. 왼쪽에 가까운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 대부분 나를 가르치려고 들어. 나를 설득하고 싶은가봐. 하지만 정치관은 본인이 경험한 게 아니면 설득하기 정말 힘든 거야.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개인의 기호, 감성적인 영역과도 가까운 거니까”​ 

 

“​​얼마 전에 ‘닷페이스’에서 샤이보수 글이 올라왔어.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해. 그런데 닷페이스 글을 보면 인신공격적인 댓글이 달려 있다? 인터뷰이가 사는 곳도 TK고 부모님도 보수적인 성향이라 자신도 보수가 된 것 같다고 말을 하니까 댓글에서 저 사람은 주체적인 생각을 못한다고 욕을 하더라. 왜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얘기를 안 하는 거야. 욕먹기 싫거든.”

 

―그 사람들도 자기 경험에서 정치관이 생겼을 텐데.

“고등학교 때는 토론 동아리도 하고 대회도 나가고 했어. 근데 대학교 들어온 후로는 토론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어. 토론을 하면 상대방 까내릴 것 찾고 억지로 비판하는, 논쟁을 위한 논쟁을 하는 것 같더라.”

 

―이분법적이긴 하지.

“이상적인 방법이라면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합의하는 거지만 실제로 그러긴 힘들지. 싸우기도 하고. 정책토론에서도 인사이트(insight)를 그다지 얻지 못하는 것 같아. 얘기하면서 합의를 보고 같이 맞춰가면 좋겠어. 아무리 좌파-우파, 진보-보수가 다르더라도. 유권자든 후보든 맞춰갔으면 좋겠어. 언론이 조장을 하는지 정치계에서 갈등 구도를 원하는지 자꾸 갈등 구도를 고의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 정치 성향, 젠더, 세대, 계급 갈등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갈등이 조장된다는 느낌을 받아.”

 

진보에서 온 남자

 

―사실 보수냐 진보냐 두 가지로 여러 이슈에 대한 스탠스를 나누기는 힘들지.

“굳이 말하자면, 내가 오른쪽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이슈마다 달라. 대기업 같은 경우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젠더 갈등에서도 당연히 여자다 보니 느끼는 것도 있고, 소수자 이런 것도 마찬가지야. 이래저래 설명하기도 힘들고 입 아프다. 이야기를 하며 맞춰가는 게 필요한데 서로 자기주장만 하다 보니 갈등의 골만 너무 깊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연애를 하다가도 남자친구랑 정치관이 맞지 않으면 대립하게 되더라. 지금 친구와는 맞아서 이야기가 되는데 전엔 안 맞을 때도 있었어. 얘기를 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 예를 들면 나는 경영학과를 나와서 그런가, 기업을 나쁜 존재로만 보지 않거든.”

 

―이윤 추구가 기업의 목적이다?

“마르크스도 읽고 투쟁 같은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 경영학과를 오고 나니 조금 더 기업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더라. 자유시장경제를 정부가 지켰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굳이 선택을 하라면 보수인 거지 절대적인 건 아니야.”

 

―당연히 모든 정책에 찬성하는 건 아니겠지. 전 남친은 어땠어?

“재벌이나 돈 있는 상류층을 굳이 다른 계급으로 나누진 않지만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어.”

 

―그 사람은 상류층이 아니었고?

“상류층이었어. 전형적인 강남좌파. 사적인 거긴 한데, 그 친구는 강남에서 쭉 교육을 받고 과학고 나와서 연대 의대를 갔거든.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잖아. 나는 그런 애가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한 거야. 그때 강남좌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겠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았어. 그 안에서도 계급이 나뉘어서 그런 것 같아. 의대 안에서도 왕족이 있다더라고. 아빠가 병원장이거나, 어디 대학병원 교수면 그 안에서 왕족 취급을 받는다고 하더라. 지방대 의대면 귀족쯤 되나? 그 친구 부모님은 그냥 평범한 교수라 보통이라고 했어.”

 

―세상에 평범한 교수가 있나?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더라고. 나도 신기했어. 그 친구를 만나면서 새로운 생각과 관점을 많이 배웠지. 지금 남자친구는 정치관이나 세상을 보는 시선이 나랑 어느 정도 비슷해. 아무튼 그런 경험을 하면서 정치관이 조금씩 바뀌는 걸 느꼈어. 내가 옛날에 노오력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그게 건방지고 배려 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느끼듯이 조금씩 바뀌는 거야.”

 

―원래 나이 들수록 성향이 안 바뀐다는데.

“바뀔 건 바뀌어야 하지 않겠어? 정치관이 뿌리부터 바뀌는 건 어려운 일 같긴 해. 주변의 친구들 봐도 바뀌는 건 설득의 영역이 아냐. 그래도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친구들이 시위 나가고 하는데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성향 때문에 보고 싶지 않다고 팔로우 끊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거든. 강요하는 것만 아니면 돼. 나쁜 사람처럼 몰아가는 그런 거. 나는 엄청 깨어 있고 너는 이등시민이다, 너는 왜 금수저도 아닌데 보수냐는 식으로 말하는 거.” 

 

사진=이수련

 

금수저가 아니라도

 

―그래, 금수저도 아닌데 왜 보수야?

“세상이 실력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학벌이 안 좋아도, 집안이 금수저가 아니어도 노력을 하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 근데 사실 나이가 들면서 취직 준비를 하면서 그런 믿음이 흔들리고 있어. 페미니즘도 비슷하지. 취업 준비하기 전에는 남녀차별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취준하고 인턴하면서 깨달은 거야. 그동안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도 알겠더라. 코르셋을 벗는다고 하나?”

 

―남녀가 취업시장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데?

“극적인 예로 모 기업의 최종면접을 보러 갔는데 제일 큰 직군에서 여자를 한 조에 몰아놓은 거야. 여자 조는 순서도 맨 끝이었어. 인사담당자도 껄끄러운지 얘기를 하는데 여자들이 워낙 말을 잘해서 남자들이랑 섞여 있으면 남자들이 말을 못한다고 여자만 따로 모아놨다더라. 잘해서 그런 거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더라. 말도 안되잖아. 핸디캡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아무튼 느끼기만 했던 남녀차이를 극명하게 봤어. 인사 담당자 입에서 직접 들었으니까.”

 

―그 사람도 남자였어?

“그 사람도 남자였지. 면접 가면 성비도 달라. 지원할 때는 모르겠지만 면접장에 가면 남자가 더 많더라. 주변을 봐도 여자가 취업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잖아. 인터넷상에는 여자가 취업이 잘 안 되는 인문계가 많아서 통계적 수치가 차이 나는 거지 실제로는 아니다 하는 얘기도 있긴 한데, 여자가 출산 등으로 손해인 게 많으니 이윤 추구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는 얘기도 있어. 직접 피해보는 입장에서는 화가 나지.”​ 

 

“​전 남자친구와도 이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처음에 걔는 믿지 않더라. 걔가 남녀차별은 거의 없다면서 과학고에는 여자가 적은데 여자들은 성적에 비해 학교도 쉽게 가고 남자도 쉽게 만났다고 그러더라. 한창 취업 준비할 때 너무 열이 받아서 거기서 끝냈지.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어. 딱히 부족할 것도 없이 커서 왜 그런 생각을 가졌을까?”

 

정치질은 이제 그만

 

―아무튼 아까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고 말했잖아, 기업 입장에서 여자가 이윤이 적어서 적게 뽑는다고 생각해?

“세상이 안 좋게 돌아가는 건 오히려 기업의 잘못이야. 보통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라고 생각하는데 이윤추구는 기업의 목적이 아니거든.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기업의 목적은 가치의 극대화야.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세상을 바꾸는 일 등이 가치 창출이라고 해.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거야. 기업가 정신이라는 게 절대 돈만 버는 게 아니야.”​ 

 

“​요즘 기업들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단기적인 이윤이나 보니까 골목상권 침해하고 벤처기업 헐값에 빼앗는, 기업의 목적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 기업의 목적 중에 조직을 잘 굴러가게 하는 것도 있어. 기업 내부 조직원들이 행복해야 조직이 잘 돌아가는데 지금은 조직원들이 행복하지 못하잖아. 노동시간도 너무 길고 여성 육아 문제도 있으니까. 그런 아젠다들이 공유되지 않아.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경우도 많고. 호칭을 없앤다거나 밤에 컴퓨터를 끈다거나 하는 식으로 단순히 제도, 규칙 하나 바꾼다고 문화나 사람들의 사고가 바뀌는 게 아니거든. 근데 그렇게 돌아가고 있잖아. 그게 너무 화가 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유래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잖아. 그들이 제대로 된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건 굉장한 사회적 낭비라고 봐. 정치인들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기업을 압박하기만 하고 기업은 신입사원을 뽑는 척만 하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이건. 우리나라의 재벌기업구조에서는 윗사람들이 바뀌어야 돼. 처음에는 기업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말도 안 되는 낙수효과니 뭐니 했는데 결국 기업이 전혀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해체해도 싸.”

 

―완전 진보적인데? 그럼 정치인들은 기업이 알아서 잘하도록 놔두는 게 더 나아?

“정치는 되게 고민이 많이 되네. 후보 중 정치질을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내 생각과 맞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고민이야. 이상적으로는 생각과 맞는 사람을 뽑고 싶은데 정치판이 실제로 더러워서 정치질을 못하면 본인의 뜻을 펼치지 못하니까. 워낙 정치판 굴러가는 꼴이 치졸하잖아. 내가 정치질을 안 좋아해.”

 

―정치질이 뭔데?

“정치질을 정의하자면, 세상 굴러가고 사람 굴러가는 거 잘 관찰하다가 그에 맞게 줄을 잘 서고, 물타기도 잘하고, 언론플레이 잘하는 거. 박근혜 같은 사람이 정치질 하는 사람이지.”

 

―박근혜 싫어해?

“박근혜 싫어하지.”

 

―근데 왜 자유한국당 지지해?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네. 나도 혼란스럽다. 확실한 게 아냐. 근데 아까 말했듯이 내가 싫어하는 짓을 민주당이 하고 있어서 거르고 있는 거야. 선심성 공약 그런 거. 정치인들, 특히 좌파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게 안 느껴지는데 자기들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 위선, 기만이 너무 싫어. 그래서 민주당이 제일 싫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같은 당들은?

“똑똑하지는 않아도 되는데 멍청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보정당들 멍청하다?

“아니. 내 성격이 원래 이상적이었거든. 그런데 순진하게 살면 세상에 배신당하고 내가 가진 이상이 더렵혀지더라. 이상을 제대로 지키려면 똑똑해야 한다는 걸 느꼈지. 내 의지를 관철하려면 당하지 말아야 돼. 진보정당처럼 이상적인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아. 그들이 멍청하고 착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세 정당은 그 부분에서 아쉽다? 

“힘도 약하고. 그 점이 아쉽네.”

 

―촛불집회는 안 나갔겠네? 

“집 앞이라서 지나가다 봤어. 걸어갈 수 있으니까. 참여는 아니고 지나가다 본 거야. 주체적이지 않아 보이는데 어머니가 싫어하셔서 안 갔어. 집회에 끼는 걸 좋아하지 않으셔.”

 

―같이 가자고 한 친구는 없었어?

“같이 가자고 한 사람은 없었어. 집회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같이 가자고 했어도 가진 않았을 거야. 혼자 갔다 오라고. 나 나쁜 사람 같네? 이게 시위로 들끓는 곳에 살다 보니 거부감이 생겨.”

 

―광화문 근처에 살았어?

“20년 가까이 살았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불편해서 시위를 썩 좋아하지는 않아. 보수 집회도 마찬가지야. 집회 자체를 안 좋아해.”

 

사진=이수련

 

여자 속의 나


―지금 다니는 대학이 남초집단 아냐? 

“맞아. 남초집단에 있었지. 근데 한때 여자를 혐오했던 적이 있었어.”

 

―왜?

“혐오라기보다는 여자집단 특유의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성격이라 여자집단에서 어울리지 못했어.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알지. 여중, 여고 다닐 때는 분위기 못 맞추고 겉돌아서 왕따도 당했고 안 좋은 일들도 당했거든. 그렇게 당한 사람들 생각보다 많아. 중학교 때는 자살까지 생각했었고. 고등학교도 상처를 받아서 좋아하지 않아.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는데 여대에도 나쁜 시선을 가졌어. 아르바이트 할 때도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미움을 받아가지고. 텃세나 미묘한 기싸움 그런 것들.”

 

―그런데 왜 처음에 여대를 갔어?

“여러 대학에 지원하다 보니 넣은 거야. 현실과 타협하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잖아.”

 

―중고등학생 때는 타협을 안 했어?

“성격상 싫은 티를 잘 내. 내가 서로 맞장구 치고 칭찬하는 그런 것도 못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지도 않거든. 여자들은 알 텐데 여자들이 모이면, 특히 어릴수록 공유하는 가치체계, 화장품, 연예인 이야기 등에 공감을 못 했어. 내 개인의 경험이지만 여성혐오인 것 같아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고, 친한 친구들하고는 정말 잘 지내. 아무튼 그러다 남초집단에 오게 된 거지. 우리 대학이 남녀성비 전국 1위야. 대학에는 중고등학교 때 같은 그런 게 없었어. 개인적으로 처음엔 그게 정말 편했어. 개인주의적인 게 더 심한가?”

 

―친구한테 신경을 덜 쓰는 것 같기는 하지.

“그래서 편했나 보다. 왜 그런지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대학교에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어. 그래도 양쪽을 다 경험해보니 어느 집단이든 다양성이 존중되는 집단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 졸업 후에 여자가 많은 기업에서도 인턴 해보고 남자가 많은 곳에서도 해봤거든. 처음 기업이 여자가 많은 곳이었는데 많이 어렵더라. 나랑 잘 안 맞아서 그랬으려나. 남자가 많은 회사에 가보니까 새로운 지옥이 열리더라고.”

 

―아예 달라?

“나이 많은 남자 직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게 싫었어. 사내 성희롱을 경험하고, 주변에서 자주 들었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 직원들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 놀랐던 게, 어른들한테 얘기했더니 사회생활하면서 앞으로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시더라.”

 

―실제로 많이 겪으니까? 

“그런 걸 겪으면서 사회생활이 이런 거구나 느꼈어. 나 혼자였는데 남자 직원들이 기분 나쁜 얘기를 하더라. 네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렇다, 우크라이나 여자가 예쁘니 이런 것들. 딸뻘, 조카뻘 되는 내 앞에서 아저씨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얘기는 안 해봤어?

“내가 뭐라고 해. 너무 슬퍼서 남자친구 붙잡고 운 적도 있어. 내가 그렇게 절대적인 약자가 된 게 너무 억울해서. 내가 인턴이고 여자고 나이가 어리지 않았으면 이런 말을 듣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뿐만 아니라 회사 생활 하는 사람들은 다 그럴걸. 계약직 여사원, 이런 분들이 ​더 많이 ​노출된다고 들었어. 회사에 계약직 여사원 진짜 많은데!”

인터뷰=김정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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