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예술은 시대의 반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아 할리우드는 대통령과 반대되는 정신의 영화를 주목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을 차별합니다. 성 소수자도 비난하지요. 공적인 장소에서 여성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감세를 위해 과학연구 예산을 대폭 삭감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문라이트’는 흑인 동성애를 다룬 영화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지요. ‘히든 피겨스’는 흑인 여성과학자 이야기입니다. 두 영화 모두 트럼프로 상징되는 최근 미국에 대한 비판정신이 돋보였습니다.
문라이트와 히든 피겨스에는 또 하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수 ‘자넬 모네’가 주조연으로 등장합니다. ‘문라이트’에서 그녀는 주인공에게 어머니가 되어주는 테레사 역을 맡았습니다. ‘히든 피겨스’에서는 엔지니어가 되는 흑인 여성 메리 잭슨 역을 연기했지요.
자넬 모네의 ‘할라피뇨(Jalapeno)’, 영화 ‘히든 피겨스’의 사운드 트랙이다. 한스 짐머와 퍼렐 윌리엄스가 영화 음악을 나누어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또한 이런 미국사회의 차별에 피해를 보았습니다. 자넬 모네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적은 없지요. 그녀는 뛰어난 보컬 실력, 춤, 랩 실력을 갖췄습니다. 부족한 건 스타의 매력이었습니다. ‘흑인 여가수’의 성공 공식처럼 성적으로 도발적이지 않습니다. ‘백인 여가수’의 성공 공식처럼 귀엽거나 정숙하지도 않죠. 남자 같은 아프로 머리를 하고 중성적인 정장을 입은 여가수에게 대중은 미지근하게 반응했습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적도 있습니다. 자넬 모네는 펀(Fun)의 최대 히트곡 ‘위 아 영(We Are Young)’의 피처링 아티스트로 참여해 빌보드 차트 1위를 했습니다. 아쉽게도 자넬 모네의 지분이 크다고 보기는 어려운 곡입니다만. 자넬 모네는 또 대형 레코드인 에픽 레코드와 협업해 ‘요가(Yoga)’라는 곡을 낸 적도 있습니다.
이 곡은 자넬 모네의 곡 중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00위에 처음 진입해 유의미한 성과를 냈습니다. 다만 파티튠 반주와 성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내용으로 ‘자넬 모네조차 뻔한 파티 음악을 지향해야만 성공하는구나’라는 씁쓸한 현실을 깨닫게 하기도 했습니다.
자넬 모네의 싱글 ‘요가(Yoga)’. 성적으로 도발적이고 예쁜 자넬 모네의 모습이 부각된 최초의 곡이다. 음악과 가사도 전형적인 파티 음악이다. 차트 성적으로는 자넬 모네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그녀 특유의 정체성은 축소되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자넬 모네의 곡은 ‘타이트로프(Tightrope)’입니다. 정규 1집 타이틀곡인데요, 자넬 모네 특유의 중성적인 이미지와 다재다능한 재능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곡입니다. 음악적으로도 펑크와 소울이 가득한데요, 과하지 않게 전자음과 디제잉으로 업데이트한 새로운 올드스쿨 음악입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시종일관 흐르던 바로 그 소울 음악이지요. 제가 제일 처음 접한 자넬 모네의 곡이라 그런지 가장 ‘자넬 모네다운’ 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넬 모네의 ‘타이트로프(Tightrope)’. 자넬 모네의 정규앨범 1집 타이틀곡이다.
When you get elevated,
네가 성공하기 시작하면
They love it or they hate it
그들은 그 사실을 사랑하거나 싫어하지
You dance up on them haters
헤이터들 위에서 춤을 춰
Keep getting funky on the scene
계속 펑키한 분위기를 유지해
While they jumpin’ round ya
헤이터들이 네 주변을 뛰어다니는 동안
They trying to take all your dreams
그들은 네 모든 꿈을을 뺏어 가려 해
But you can’t allow it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지
Cause baby whether you’re high or low
베이비, 네가 높은 곳에 있든 낮은 곳에 있든
Whether you’re high or low
네가 좋은 순간이든 나쁜 순간이든
You gotta tip on the tightrope
넌 줄타기를 해야 해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묘사되듯, 인종차별은 거대한 차별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하나의 작은 차별입니다. 손가락으로 쿡 찌르는 것과 같지요. 그런 찌름이 매일, 평생 반복된다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공하려면 소수자는 화내거나 싸워서는 안 됩니다. 평생 참아야지요. 마치 줄타기(tip on the tightrope)를 하듯 말입니다.
타이트로프는 언제나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소수자의 기분을 재치 있게 표현했습니다. 사운드도 흑인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펑크, 소울음악의 그루브를 현대적으로 표현했지요. 형식으로도 내용으로도 소수자에게 바치는 음악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 곡은 슬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쾌합니다. 분노와 슬픔을 흥겹게 받아친다, 그게 바로 소울음악의 정신이겠지요. 그런 음악을 꾸준히 해왔기에 그녀가 트럼프 시대의 반작용을 대표하는 얼굴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게 아닐까 합니다. 주류 사회의 한계를 절감한 가수이자 트럼프 시대를 대변한 얼굴, 자넬 모네였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책임한정형 디딤돌대출' 유명무실 전락 가능성
·
'용량 걱정은 그만' 2017 메모리카드 실전 구매가이드
· [왱알앵알]
수출효자 게임산업, 육성·규제 뒤죽박죽 고사 위기
·
[그때그공시] 동양, 4년 전 처분한 콘크리트파일 사업 '눈독'
·
[미국음악일기] 유튜브로 왕좌에 복귀한 크레이그 데이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