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기자기한 온갖 작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앙상하고 메마른 가지마다 연초록 새싹이 보송보송 피어난다. 찬연하면서도 담담하고 불타는 듯하면서도 은은하게 생령(生靈)이 넘쳐나는 담록빛 이파리들! 천상의 고운 빛이다. 싱그러운 새 생명이다.
실내에 있는 것이 동굴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게 여겨지는 계절이다. 훌훌 일상을 털고 밖으로 나선다. 꽃 찾아 산 찾아 길을 떠난다.
들판에 담록빛을 낭자하게 피워내는 맑고 따스한 바람과 푸른 하늘 찾아 서해의 외딴 섬으로 길을 떠난다. 끝없이 너른 바다, 맑은 하늘이 눈부신 뱃머리 갑판에 서서 시야가 탁 트인 하늘과 바다와 흰 구름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한다. 망망대해를 거칠 것 없이 내닫는 여객선, 뱃고물은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솟구쳐 흩어지는 물보라에 쏟아지는 햇살은 곱디고운 무지개를 그린다. 무지개 빛살 속으로 사그라지는 하얀 물거품 따라 갈매기는 떼 지어 여객선을 따른다. 갑판에 서서 손에 들고 있는 새우깡을 잽싸게 채가는 갈매기의 묘기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내지르는 함성이 여객선의 엔진 소리를 압도한다.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쐬며 함성을 지르다가도 손끝의 새우깡을 채가는 갈매기의 용맹스러운 도전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배는 어느덧 목적지 항구에 닿았노라고 길게 뱃고동을 울린다.
천지에 가득한 봄기운에 떠밀려 아니 가본 낯선 섬 찾아온 곳은 강화군 볼음도. 강화 외포리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한 시간 반 남짓 거리에 있는 조그만 섬이다. 섬 북쪽 끝 바다 너머는 바로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연안군 해안이다. 볼음도 선착장에 배가 닿자 온갖 손님이 봄 한철 꽃망울 터지듯 여객선에서 쏟아져 나온다. 5월 초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라서 배가 만선 되어 손님을 다 태우지 못하고 떠났다. 그래서인지 내리는 손님도 많고 다양했다. 모두가 울긋불긋 화려한 아웃도어 차림이다. 생동하는 천지의 봄기운에 끌려 나온 모양이다. 낚시꾼, 나물 채취꾼, 갯벌 체험객, 강화 나들길 등산객, 각양각색이었다.
강화 나들길 13번 코스, 숲길에 들어서니 상큼한 숲 냄새가 온몸에 생기를 일깨운다. 발밑에 밟히는 갈잎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가을철과는 또 다르다. 뭔가 새 생명의 기운이 촉촉이 배어 있는 느낌이다. 가지 끝마다 이제 막 돋아나는 연초록의 새싹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달리 참나무류의 활엽낙엽수가 많아 땅이 보이지 않게 갈잎이 수북하게 쌓인 산길이다. 수북하게 덮인 갈잎 더미에 푸른 새싹과 함께 반짝이는 꽃이 눈길을 끈다.
낙엽 더미를 헤집고 수줍은 듯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푸른 새잎과 함께 꽃송이를 피워냈다. 칼날처럼 생긴 풀잎이 힘 있게 솟아나 환한 미소의 큼직한 꽃을 피워 올렸다. 잎보다 꽃망울이 버겁게 커 보였다. 각시붓꽃이 화려한 꽃망울을 펼쳐 낸 것이다. 연보랏빛 꽃잎에 하얀 그물 무늬가 곱게 퍼져 있고 그 가운데로 황금빛 줄무늬가 꽃술을 향해 이어져 있는 꽃이다.
각시붓꽃! 산들꽃 이름 앞에 ‘각시’가 붙는 경우는 꽃이 앙증맞게 작거나 귀여운 경우이거나 예쁘고 날씬한 경우 등이다. 각시붓꽃은 붓꽃 종류 중 가장 키가 작고 날씬한 잎을 지녔다. 깊은 숲속 호젓한 곳에서 낙엽이나 풀 더미에 몸을 숨기고 수줍은 새색시처럼 빼꼼하게 꽃망울을 내밀어 화려한 꽃을 활짝 펼친다. 군락을 이루어 무리를 지어 피지 않고 두세 송이 군데군데 피어나는 외로운 꽃이다. 수북이 쌓인 갈잎을 헤집고 나와 봄바람에 살랑대는 여린 보랏빛 꽃잎은 수줍음에 떨리는 새색시의 여린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각시라는 이름처럼 수줍음과 청초함을 연상케 하는 작고 앙증맞게 생긴 꽃이다.
각시붓꽃은 햇살이 잘 들어오는 양지바른 산지 풀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키는 커봐야 20㎝를 넘지 않는 작은 풀꽃이다. 잎은 길이가 약 30㎝, 폭은 약 0.2~0.5㎝로 칼처럼 길고 끝이 휘어진다. 안쪽의 속 꽃잎은 곧게 서고, 바깥쪽의 꽃잎은 긴 타원형이며 끝이 뒤로 젖혀지며 꽃잎 중간에 하얀 그물 무늬가 있다. 군락을 이루지 않고 대부분 군데군데 흩어져 자라는 종이다. 꽃은 보라색이며 크기는 3~4㎝, 꽃잎 안쪽에 수술과 암술이 들어가 있어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꽃줄기 하나에 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꽃이 필 때의 잎은 꽃대와 길이가 비슷하다. 땅속줄기와 수염뿌리가 발달했는데, 뿌리줄기는 모여 나며 갈색 섬유로 덮여 있다. 암술대는 3개로 갈라진 뒤에 다시 2개씩 깊게 갈라지고 열매는 둥근 삭과이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곳에 피지만 여름이 되면 생장이 쇠퇴, 정지하고 대부분 말라 죽어 땅에서 모두 없어지는 하고(夏枯) 현상이 일어난다. 옮겨 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종이어서 자생지에서 피어난 그대로 보존하여야 하며 종자로 번식시키는 것이 좋다.
분재용으로 적합하고 관상용, 지피조경용으로 정원에 심기도 한다. 뿌리를 약재로 사용하는데, 소화를 도와주고 타박상에 맺힌 피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 생잎을 짓찧어서 환부에 붙인다. 종기에도 약효가 있다고 한다.
꽃말은 ‘기별’, ‘존경’, ‘신비한 사랑’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각시붓꽃 전설이 있어 옮겨 본다. 황산벌에서 전사한 화랑 ‘관창’과 그의 정혼자 ‘무용’에 얽힌 이야기라고 한다. 관창이 죽고 나서 정혼자 무용은 관창의 무덤가에서 슬픈 나날을 보내다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듬해 봄 그 자리에서 관창의 칼처럼 생긴 풀잎에 무용의 모습을 빼닮은 보랏빛 꽃이 함께 피어났단다. 그 후 사람들이 이 꽃을 ‘각시붓꽃’이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호젓한 숲속에 무리 짓지 않고 두세 송이 피어나는 외로운 꽃, 청순하고 각시처럼 예쁘고 날씬한 맵시에 신비감 감도는 보랏빛 꽃, 갈색의 낙엽과 덤불 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피어나는 꽃이다. 그러나 일단 눈에 띄어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픈 보랏빛 꽃잎에 화려한 그물 무늬와 황금 줄무늬가 오히려 애틋해 보이는 각시붓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신비한 사랑에의 설렘과 존경의 기쁨을 품고 있는 듯한 각시붓꽃 전설의 주인공다운 꽃이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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