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조선 16대 국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어보(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 소유권을 두고 고미술품 수집가 정진호 유심재 관장과 대한민국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정 관장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부터 장렬왕후의 어보를 돌려받지 못하자 국가를 상대로 어보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 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게 도난당한 어보이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담은 변론 준비서면을 지난 4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지난해 1월 30일, 정 관장은 미국 인터넷경매 사이트 라이브옥셔니어스(liveauctioneers)에서 시작가 50달러(약 5만 7000원), 추정가 100~200달러(11만 4000~22만 8000원)에 나온 일본경옥거북(Japanese hardstone turtle)을 73회의 경합을 거쳐 9500달러(1083만 5000원)에 낙찰 받았다.
정 관장이 낙찰 받은 일본경옥거북은 1676년 장렬왕후에게 휘헌(徽獻)이라는 존호를 올리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어보였다. 라이브옥셔니어스가 일본 고미술품으로 착각해 고미술품의 제목을 잘못 게시한 것이다. 1677년 작성된 존승도감의궤(尊崇都監儀軌)에는 ‘자의공신휘원대왕대비지보(慈懿恭愼徽憲大王大妃之寶)’가 인각된 장렬왕후의 어보가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정 관장은 경매에 참여하면서 일본경옥거북이 장렬왕후의 어보임을 알고 있었다. 공개된 사진 속에 ‘자의공신휘원대왕대비지보’라는 한자가 인각된 어보의 하단 사진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정 관장은 운송 및 세관비로 1425만 원을 납부한 후 장렬왕후 어보의 소유자가 됐다.
정 관장은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에 ‘2016년 하반기 유물 공개 구입 공고’가 게시된 직후인 지난해 9월 장렬왕후 어보 매도 신청을 접수했다. 유물 구입 심의를 위해 국립고궁박물관과 유물임시보관증 및 인수인계서를 작성한 후 장렬왕후 어보를 국립고궁박물관에 맡겼다. 정 관장은 매도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매도 희망가로 2억 5000만 원을 적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3차에 걸친 평가심의위원회 결과, 장렬왕후의 어보가 도난문화재로 등록된 데다 미국 인터넷경매 사이트에서 불법적으로 거래된 점이 의심스럽다면서 장렬왕후 어보를 거래할 수도, 돌려줄 수도 없다는 입장을 정 관장에게 지난 1월 통보했다. 또 문화재청은 라이브옥셔니어스와 정 관장 간 불법적으로 거래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미국 정부(HSI)에 정식 수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장렬왕후 어보뿐만 아니라 2500만여 원의 구입비마저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한 정 관장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어보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장렬왕후 어보를 정상적인 인터넷 경매 거래를 통해 구입한데다 구입 과정에서 도난문화재임을 알지 못했다는 게 정 관장의 주장이다. 또 장렬왕후 어보를 국립고궁박물관에 인수인계한 지 세 달이 지난 후에야 문화재청이 홈페이지를 통해 ‘[도난]국새 29과 및 어보 47과’ 문서를 공개한 점도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정 관장은 “국립고궁박물관과 문화재청이 정상적인 경매 거래를 통해 구입한 사유재산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하려 한다”며 “문화재청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도난]국새 29과 및 어보 47과’ 문서가 지난해 12월 23일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이 사유재산인 장렬왕후 어보를 취득하기 위해 뒤늦게 손을 쓴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측은 ‘[도난]국새 29과 및 어보 47과’ 문서가 지난해 12월 23일에 작성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문화재청이 한국전쟁 때 미군에게 도난당한 국새와 어보를 돌려달라며 미국 정부(HSI)에 발송한 문서를 뒤늦게 한글화하면서 발생한 오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2015년 3월 작성된 ‘Stolen Korean Seals’ 영문서를 ‘비즈한국’에 공개했다. 도난 어보 목록 20번에는 장렬왕후의 어보 ‘자의공신휘원대왕대비지보’가 수록돼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문화재청 관계자는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을 내세우며 공식 인터뷰를 거절했다. 인터넷 경매를 통해 낙찰 받아 장렬왕후 어보의 원소유자였던 정 관장에게 구입비라도 지불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소송 중이라서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고만 반복했다.
유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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