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뤄왔던 취업사진을 찍었다. 친구가 급히 지원할 회사가 있다며 재촉하지 않았다면, 자소서를 쓰는 시기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찍었을 게 뻔했다. 막상 취업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괜찮은 사진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우리는 블로그 포스팅에 의존해 입소문이 난 곳을 찾았다.
종로나 신촌 쪽이 유명했는데, 많이 언급되는 것들은 신촌 세 곳, 종로 한 곳 정도였다. 생각보다 많은 선택지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취업사진을 찍었다는 또 다른 친구의 추천으로 종로의 사진관을 선택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조금 더 따져볼 걸 그랬다. 우리는 사진용 정장 블라우스, 재킷 대여, 메이크업, 포토샵이 포함된 취업 패키지를 5만 원 주고 했는데,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그 곳의 모든 것이 다 복불복인 것 같다.
메이크업과 포토샵은 누가 해주냐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나는 기본적인 메이크업을 하고 간 상태였고, 진한 메이크업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다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지.
너무 가만히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파운데이션까지 바른 얼굴에 또 파운데이션을 끼얹었고, 두꺼운 아이라인과 마스카라 한 겹 더…. 왜 아무 말 못하고 해주는 대로 있었을까. 내 친구는 사진 찍고 포토샵 해주는 분이 너무 딱딱하고 조금 대충 해준 것 같다고 불만이었다. 서로 불만이 각자 다르게 있었으니 어쩌면 기분 탓이고 우리 얼굴이 그냥 그렇게 생긴 것일 수도….
스튜디오는 북적였다. 상반기 공채 시즌이라 그런가, 금요일 오전 제일 이른 시간대를 예약했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예약금 같은 건 따로 없고 5만 원을 ‘현금’으로 입금해야 했다. 바가지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사진관은 취업사진으로 먹고 사니까 이런 말하면 안 되려나.
그런데 비싼 걸 어떡해. 메이크업이 엄청난 것도 아니고, 빌려주는 옷이 고급스러운 것도 아니고, 열일하는 포토샵 정도가 제값 하려나. 다른 사진관들도 4만~5만 원으로 취업 패키지를 팔고 있으니 취준생들은 어쩔 수 없이 비싼 돈을 내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동네 사진관이나 교내 사진관에서 찍으면 안되냐고? 안 될게 뭐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아니 취준생 마음이라는 게 뭐라도 열심히 하고 싶고 비싸더라도 유명한 곳에서 찍고 싶지 않은가. 취업과 관련한 거라면 돈도, 노력도 아깝지 않은 게 우리 아닌가(진짜 아깝지 않다는 건 아니다).
취업사진 말고도 돈 드는 일은 많다. 그 예로 자격증 응시료를 들 수 있다. 토익의 경우 정기접수 4만 4500원, 추가접수 4만 8900원이다. 토익을 주관하는 ETS는 정말 약았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있는 토익 시험은 단순히 컴퓨터로 채점할 텐데도 시험결과가 늦게 나온다.
4월 30일에 본 시험은 5월 16일에야 나오고, 다음 시험인 5월 14일, 28일, 6월 10일 시험의 접수가 모두 끝나서야 결과가 나온다. 덕분에 급한 응시생들은 시험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채 다음 시험을 접수한다. 시험에 임박해서는 추가접수를 받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4만 8900원인 추가접수비용으로 토익을 치곤 한다. 얼마 차이 안 나는 것 같아도 좀 얄밉다….
토익뿐인가, 어떤 이는 20만 원이 넘는 토플 성적이 필요하며, 토플까지 안 가더라도 7만 7000원 하는 토익 스피킹이나 7만 8100원 하는 오픽 성적은 취업에 필수다. 한 번에 붙으면 다행이지, 여러 번 도전하면 그 부담감에는 금전적인 무게도 더해 있을 터. 아쉬워하면 안 되는 투자비용이라지만 부모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돈을 다 마련했으려나.
‘시발비용’이라는 용어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비용을 뜻한다. 다이어트를 하다가 폭발해서 시킨 치킨이라든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타는 택시 같은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 아니 그보다 여러 번 소비했을 비용이다. 말이 시발비용이어서 그렇지, 힘든 와중에 한 줄기 빛 같은 성스러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시발비용이 없다면 정말 성격파탄의 시발점이 될 뻔했잖아?
시발비용에 대한 지불은 현대인들의 만연한 소비행태가 되었다는데, 취준생은 어떨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쓸 돈이 생기기만 하면 어디에 돈을 쏟아부었으려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나에게 잘해주고 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예쁜 게 낫다며 화장품을 사고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의리가 밥 먹여주는 거라면서 밥도 척척 잘 사고. 나와 ‘현명한 소비’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먹고 싶으면 먹고 쓰고 싶으면 쓰고. 합리화할 구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취업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니까, 힘드니까 밥이라도 잘 먹고 다녀야지, 예쁜 옷 입고 다니면 기분이 좋으니까 등등. 나는 욕구가 많은 인간인데, ‘취준’이 마치 방패가 되어 나의 모든 시발비용을 ‘커버치고’ 있는 것 같다. 휴, 내 돈 내가 벌면 철 좀 드려나.
돈을 직접 벌면 아까워서 벌벌 떨며 쓴다는데, 진짜일까. 그러면 돈이 좀 모일 것 같지만 슬프다. 돈은 그냥 돈인데, 어느 새부터인가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 먹고사니즘에 목이 메고, 조금이라도 돈을 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돌고 돈다고 해서 돈이고, 쓰려고 모으는 돈인데. 나는 현재를 즐기면서 돈도 쓰고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싶은데. 이렇게 말하면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겠지. 오늘도 철이 덜 든 취준생은 카페에서 5000원짜리 자몽에이드를 마시면서 일기를 쓴다.
※필자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거둬갈 기업 관계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이상은 취업준비생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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