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부적절한 통화 조작 관행을 모니터링해 공정한 세계경제를 확보하겠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내놓은 연차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중국·대만·독일·스위스 등 대미 무역 흑자국들을 상대로 엄포를 놨다. 시장 우려와 달리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유지했다. 여차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현재 세계경제 시스템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각국이 비교우위에 따라 특정 공정을 분업화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교역하면 세계경제 전체의 이익이 향상된다고 설명한다. 한국은 전자기기, 중국은 철강, 호주는 금과 철광석을 팔아 돈을 벌고 있다. 미국의 수출품은 달러다. 미국은 달러를 통해 전 세계를 자국 금융시스템에 편입시켰다.
미국은 ‘농업-제조업-서비스업’으로 이어지는 경제발전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금융패권을 다른 나라에 내놓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금융시스템을 쥐고 있으면 큰 노력 없이 다른 국가들이 이룩한 경제성장의 과실을 취할 수 있다. 달러를 해외에 팔아 공산품을 수입한 미국은 국내소비로 성장가도를 달렸다(무역수지 적자). 또한 다른 나라들이 벌어들인 달러는 국채를 발행해 흡수함으로써 통화량을 조절했다(재정수지 적자). 이런 ‘쌍둥이 적자’는 미국 금리를 낮춰 부동산 경기 부흥에 일조했으며, 증시 상승을 이끌어 자산효과를 일으켰다.
미국은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 16개 국가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마셜플랜을 펼쳤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에는 제3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공적개발원조(ODA)를 벌였다. 이는 구소련과 벌인 체제경쟁의 결과물인 측면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적하는 구조적 무역적자는 미국 스스로 만든 체제란 뜻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산업을 부흥시켜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향상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쌍둥이적자, 수입증가, 민간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미국의 밸류체인(value chain)을 제조업 재건, 고용확대, 소비증가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금융시스템을 통해 그동안 풍족한 소비활동을 벌였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은 거품’이라는 인식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줬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친 트럼프가 대통령에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1호 법안인 ‘트럼프케어’와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며 미국의 밸류체인 변화의 시행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과 북한 압박 등으로 지지율이 회복되고 있다. ‘국경조정세’ 등 밸류체인을 바꾸기 위한 동력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과연 성공 가능성은 있을까. 이런 의문에는 회의론이 앞선다. 미국의 금융기법이 정교해진 것처럼 제조업도 최첨단을 달리고 있어서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일부 분야의 미국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일자리 창출 능력이 높은 전기·전자·자동차·조선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미국이 단기간에 한국·중국·일본·독일을 따라잡기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정치’를 통해 삼성전자·도요타 등 글로벌 대기업들을 미국으로 소환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높은 인건비와 근로조건을 감내하며 미국을 주력 생산지로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장벽 건설과 송유관 사업 등은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떨어진다. 노동자의 임금이 오를지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의 결과를 트럼프의 밸류체인 변화의 결과에 대입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약 미국이 밸류체인 변화에 실패할 경우 미국 국내 문제로 끝나겠지만, 변화에 성공할 경우엔 그 파장이 전 세계로 퍼진다. 이론적으로 미국이 생산과 소비를 독점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가 침체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국이 폐쇄경제의 모양을 갖출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아시아·미주·유럽 등 글로벌 경제의 블록화가 예상된다.
현재의 일극체제가 다극체제로 바뀌면 경제권 간 무역마찰과 개발도상국의 궁핍화가 발생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을 1930년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펼친 보호무역주의의 결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당시 미국이 수입을 막기 위해 물품에 막대한 관세를 매기는 ‘스무트홀리법’을 시행하자 프랑스·독일 등도 맞대응에 나섰고 극심한 경기침체가 세계를 덮쳤다.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화폐를 발행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세계적으로 고립주의가 번졌다.
한 글로벌 경제 애널리스트는 “미국이 80여 년에 걸쳐 구축한 경제체제를 부정하기에는 이미 전 세계에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면서도 “트럼프가 국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환율 문제과 무역적자 문제를 더욱 부각시킬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 멕시코 등을 상대로 한 미국의 정책방향에서 한국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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