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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도마뱀 꼬리 자르기

살기 위해 평생 한 번 제 꼬리 자르는 도마뱀…남의 꼬리 자르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2017.04.13(Thu) 10:01:19

[비즈한국] 도마뱀은 그리 인기 있는 동물이 아니다. 일단 ‘뱀’이란 말이 들어 있는 게 영 께름칙하다. 하지만 뱀과 도마뱀은 그리 가까운 친척이 아니다. 도마뱀은 억울할 수밖에. 우리 언어생활에서도 도마뱀은 그다지 좋은 용례로 쓰이지 않는다. 기껏 생각나는 표현이라고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뿐이다. 고위 정치인이나 재벌 기업가에게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가 책임을 지는 대신 영향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 책임지게 하는 일처리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도마뱀 꼬리 자르기’는 정말로 올바른 표현일까?

 

길에서 개와 마주친 사람은 먼저 개의 얼굴을 본다. 개가 자신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눈이 움직여야 얼마나 움직이겠는가? 아무리 봐도 잘 모른다. 이때 우리가 주목하는 부위는 따로 있다. 바로 꼬리다. 개의 꼬리를 보면 개가 나를 무서워하는지 아니면 반가워하는지 알 수 있다. 개가 꼬리를 흔들면 우리의 시선은 꼬리를 주목한다.

 

도마뱀도 마찬가지다. 막다른 길에서 천적과 마주치는 위험에 빠진 도마뱀은 일단 꼬리를 흔든다. 사람이 흔들리는 개 꼬리에 주목하듯이 천적 역시 흔들리는 꼬리에 주목한다. 이때 도마뱀은 잽싸게 꼬리를 잘라버리고 도망친다. 천적은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꼬리에 정신이 팔려 있다. 도마뱀은 꼬리를 자른 덕에 위험에서 벗어난 것이다.

 

캘리포니아 악어도마뱀(alligator lizard)이 꼬리를 자른 모습이다.​ 도마뱀이 스스로 꼬리를 자르는 것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다. 약자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빠져나가는 사람에게 갖다붙이는 건 도마뱀으로선 억울한 일이다. 사진=Gary Nafis/CaliforniaHerps.com


꼬리가 아무 데서나 잘리는 것은 아니다. 연골로 된 골절면이 있는 여섯 번째 이하의 꼬리뼈 마디에서만 잘린다. 꼬리가 잘려 나가도 피를 거의 흘리지 않는다. 꼬리가 잘리는 즉시 척추혈관이 수축되기 때문이다. 통증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리고 골절면에는 줄기세포가 있어서 재생된다.

 

재생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성장하는 동안 조금씩 자랐던 꼬리를 어떻게 단숨에 자라게 할 수 있겠는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많은 자원이 투자된다. 원래 꼬리는 양분을 저장하는 곳이다. 기껏 비축해 놓은 자원을 포기한 것이다. 파충류는 원래 죽을 때까지 자란다. 하지만 꼬리를 키우느라 다른 부분은 성장을 멈춰야 한다. 꼬리가 없으니 움직일 때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 당연히 움직임이 굼뜨다. 동물에게 속도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집단 내 서열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친다.

 

다시 생긴 꼬리는 원래 꼬리와 같은 것이 아니다. 잘려 나간 꼬리에는 뼈가 들어 있지만 새로 생긴 꼬리에는 힘줄만 있을 뿐 뼈가 없다. 따라서 이제는 영원히 꼬리를 자를 수가 없다. 그렇다. 도마뱀은 평생 딱 한 번만 꼬리를 자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도마뱀이 꼬리를 자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마뱀은 모두 16개 과가 있는데 다섯 개 과는 꼬리를 자르지 못한다. 11개 과에 속한 모든 종이 꼬리를 자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만 꼬리를 자를 수 있다. 잘 알려진 도마뱀 가운데 카멜레온과 왕도마뱀은 아예 꼬리를 자르지 못한다. 아가마과 도마뱀은 꼬리를 자르기는 하는데 다시 재생하지는 않는다. 다시 생긴 꼬리는 모양이 이상해서 첫 번째 꼬리인지 재생된 꼬리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진화 과정에서 도마뱀이 꼬리를 자를지 말지를 결정한 것은 어떤 천적과 함께 사느냐에 달려있다. 도마뱀을 좋은 먹잇감으로 삼는 동물은 많다. 때까치, 까마귀, 매 같은 새뿐만 아니라 여우 같은 포유류도 도마뱀을 좋아한다. 주로 날카로운 발톱으로 꼬리를 꽉 쥐어야지만 사냥을 할 수 있는 동물들이다.

 

같은 파충류인 뱀도 도마뱀을 좋아한다. 뱀은 쥘 수 있는 발톱이 없다. 도마뱀을 꽁꽁 옭아매서 숨통을 끊어야만 먹잇감을 삼킬 수 있다. 그게 어디 쉬운가? 뱀이 나타났다고 해서 도마뱀이 꼬리를 끊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 뱀이 독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마뱀은 독사에게 살짝만 물려도 목숨을 잃는다. 도마뱀에게 독사는 가장 치명적이 포식자다. 실제로 도마뱀 포식자가 아무리 많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독사가 없는 섬에 사는 도마뱀들은 꼬리를 끊지 않는다. 도마뱀이 꼬리를 끊는 재주는 독사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른다. 독사에게 물리느니 꼬리를 잘라내겠다는 생존전술이 선택된 것이다.

 

재생 능력만 놓고 보면 도마뱀은 사실 별것 아니다. 양서류의 재생능력은 더 뛰어나다. 도롱뇽은 다리를 재생할 수 있다. 단순히 근육만 생기는 게 아니라 뼈도 재생된다. 영원은 다리뿐만 아니라 턱과 눈도 재생된다. 하등동물로 내려갈수록 더 탁월한 재생능력을 보여준다. 불가사리를 잘게 썰면 각 조각이 하나의 불가사리가 된다. 플라나리아의 재생능력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다른 동물들의 재생능력이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재생’이라고 하면 도마뱀이 떠오르는 이유는 스스로 몸을 잘라내는 자절(自切) 능력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절 능력을 보여준 동물은 도마뱀과 오키나와에 사는 달팽이뿐이다.

 

‘도마뱀 꼬리 잘라내기’는 놈들이 자신의 죗값을 힘없는 약자들에게 온전히 덮어씌우고 빠져나가는 행위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데 도마뱀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도마뱀은 그들보다 훨신 훌륭하다. 도마뱀은 남의 꼬리가 아니라 자기의 꼬리를 잘라낸다. 엄청난 자원을 포기한 것이며 이후의 삶도 만만치 않은 것을 잘 알면서 잘라낸다. 그리고 일생에 단 한 번만 꼬리를 잘라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어진 뒤 2016년 11월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돌아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자신은 사익을 추구한 바 없으며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최 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에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도마뱀 꼬리 잘라내듯 곤경을 모면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자기가 아니라 남을 도려낸다. 거의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을 포기할 뿐이다. 그리고 꼬리 자르기를 한 번만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평생을 그렇게 산다. 도마뱀이 그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재생능력은 하등한 생명체에게만 있다. 왜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일까? 사람은 몸이 불편해진 사람들을 아직은 멀쩡한 사람들이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손과 발과 눈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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