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해 온라인 여행전문잡지 ‘이스케이프히어(EscapeHere)’는 최악의 항공사 15곳을 꼽았다. 대부분 후진국에 집중된 이 순위에 미국 대형항공사가 13위에 랭크됐다. 최근 ‘논란의 난기류’에 휩싸인 유나이티드항공이다.
지난 10일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켄터키 주 루이빌로 향할 예정인 유나이티드항공 3411편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유나이티드항공은 4명의 직원이 운항을 위해 루이빌로 이동해야 하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너무 늦게 알아차린 탓에 유나이티드항공은 이미 탑승한 승객들에게 400달러(약 45만 원)의 보상책을 제시하며 내리라고 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다음 항공편이 다음날에나 있었기 때문이다. 보상액을 800달러로 올렸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자 유나이티드항공은 4명을 임의로 택해 강제로 내리도록 했다.
4명 중 3명은 항공사의 요구에 응해 순순히 내렸다. 하지만 베트남계 내과 의사 데이비드 다오(69)가 이를 거부하자 유나이티드항공은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억지로 끌어내리는 동안 다오는 얼굴을 손잡이에 부딪혀 피가 나기 시작했다. 강제로 끌려 나간 그는 다음날 아침부터 봐야 할 환자가 있다며 다시 비행기에 올랐지만 또 다시 끌려 나갔다. 이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논란이 일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떨까. 항공사 기장, 항공업계 관계자 등에 문의한 결과 한목소리로 한국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의 대처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지배적이었다.
먼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오버부킹(Overbooking·예약초과)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정작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게 중론이다. 오버부킹은 좌석을 초과해서 승객의 예약을 받아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만, 이번 사건은 항공사 직원 때문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 오버부킹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유나이티드항공과 같은 대처는 국내에선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오버부킹이 되면 마지막에 오는 사람은 비행기를 못 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꼭 그 시간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일찍 가서 체크인을 해두는 게 좋다. 하지만 국내 항공사에는 이 같은 일조차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지난 2015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버부킹으로 탑승을 못했다며 피해를 신고한 사례는 2014년 1건, 2015년 1건 등 2건에 불과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선 오버부킹 문제를 체크인 카운터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이미 항공권 티켓(Boarding Pass)을 발급받아 자리에 앉은 사람이 내려야 하는 경우는 없다. 예약하고 공항으로 오지 않는(No Show) 사람을 고려해 예약자를 더 받긴 하지만 그 경우에도 체크인 카운터에서 다른 항공편으로 대체해 준다거나 DBC(Denied Boarding Compensation)라고 하는 보상 방법을 통해 보상해준다”고 설명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의 사례처럼 승무원 탑승으로 인해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이 일도 국내에선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적다.
국내항공사 A 기장은 “이번 사건은 만석이었음에도 다른 공항에서 일하기 위해 항공사 직원(Dead Head Crew)이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시작됐다”며 “우리나라에선 짧은 구간은 조종사 뒷자리를 이용하는 등 약간의 예외가 있지만, 긴 구간에서는 예외 없이 무조건 좌석을 확보하고 이동시켜야 한다. 저렇게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국내항공사 B 기장은 “찾아보니 해당 편이 1시간 20분 정도 거리를 가는 70석 정도의 작은 비행기였다. 소형기라 좌석에 여유가 없는데 유나이티드항공 측은 무조건 켄터키 주 루이빌에 승무원을 보내야 비행기를 띄울 수 있고 그다음 편들이 차질 없게 운행된다”면서 “규정상 좌석을 미리 확보해야 하지만 뒤늦게 탄 이유까지는 배경을 알 수 없어 모르겠다”고 밝혔다.
유나이티드항공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미국 국제선 항공업계에서 1위를 다투는 초대형 항공사지만 정작 항공사 평가에서는 매년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서비스 문제나 인종차별 문제도 끊임없이 지적됐다. 이번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13년에는 유나이티드항공 승무원 3명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착륙 사고를 낸 아시아나항공을 조롱하는 핼러윈 의상을 입어 논란이 됐다. 2015년에는 따지 않은 콜라 캔을 요구한 무슬림 여성 승객에게 ‘무슬림에겐 콜라 캔도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모욕을 줘 물의를 빚었다.
앞서의 B 기장은 “유나이티드항공 CEO(최고경영자)가 보낸 메일을 보면 ‘파괴적이고 호전적이어서 경찰을 불렀다’고 하는데 그럼 돈 내고 탑승한 상황에서도 내리라고 하면 웃으면서 내려야 한다는 것인가. 연결편 비행기가 취소되는 것보다 승객에게 고소당했을 때 징벌적 배상이 더 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유나이티드항공 자체가 원래 문제가 많은 곳이다”라고 덧붙였다.
국내 항공업계 종사자들은 유나이티드 사태를 보며 비상식적인 미국 항공업계 대처도 이해할 수 없지만, 국내 항공 사고 관련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최근 땅콩회항, 중소기업 사장 아들의 기내 난동 사건 등 잦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기내에서 승무원을 때리거나 성희롱을 해도 저렇게 끌어내진 못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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