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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계 블랙리스트? ‘장자연법’ 논란 추적

기획사 규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블랙리스트 정지작업 의혹…정부 “등록 요건 완화할 것”

2017.04.07(Fri) 17:07:07

[비즈한국] 8년 전 한 여배우의 삶을 앗아간 ‘그들’이 누구였는지 여전히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후폭풍은 결코 작지 않았다.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권력과 위계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는 의혹이 짙었기 때문이다. 고 장자연 씨 이야기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제2의 장자연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2014년 1월 제정돼 ‘장자연법’으로도 불린다. 고 장자연 씨 영정. 사진=비즈한국DB


이후 제2의 장자연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이른바 ‘장자연법’이 추진됐다. 2014년 1월 제정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그것이다. 발전법이라고는 하지만 대중문화예술의 올바르고 건전한 발전을 위한, 일종의 규제 방안이 담긴 법안이다.

연예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다보니, 가짜 연예기획사들이 연예계 데뷔를 미끼로 한 금품 사기나 성범죄를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 법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누구나 기획사 등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넷 상에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된 지 3년여가 흘렀다. 그사이 여러 일들이 있었다. 비선실세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을 시작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장자연법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한몸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마저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 진상을 파악해봤다.

# 블랙리스트 사전작업?

가수 신대철 씨는 지난 2월 페이스북에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거세게 비판했다. 특히 그가 비판한 부분은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등록’을 다룬 26조다.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은 쉽게 말하면 연예기획사나 혹은 모델에이전시 같은 업체를 의미한다. ​등록 요건을 보면 관련 업무 경력 4년 이상과 독립된 주소를 가진 사무소가 필요하다. 법 제정 이전에는 신고만 하면 일정한 조건 없이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신 씨는 “처음 이 법이 제정됐을 때 왜 이런 법이 필요한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들었다. 스타트업이나 셋방살이 예술가는 시작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라고 반문하며 “블랙리스트 사태를 보며 비로소 이 법의 제정 목적을 이해했다. 이 법은 블랙리스트를 만들기 전 사전 정지작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묘한 시점이다. 2013년 9월 3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좌편향 문화예술인에 대해 언급한 이후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고,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2014년 1월 제정됐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을 하지 않은 업체는 불법 영업으로 간주돼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단순히 법적 제재뿐만이 아니다. 등록되지 않은 기획사 소속 연예인은 방송국 출연이 불가능하다. 음원 스트리밍 회사와 계약도 어렵다. 방송국과 스트리밍 회사들이 법 시행 이후 등록증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당연히 정부 기관에서 하는 문화예술 지원 사업 역시 등록증이 필수다. 지난 3년여 동안 2000여 곳의 업체가 등록을 마쳤다.

결국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록 제도를 통해 정부 기관은 자연스럽게 관련 기업 전부를 관리·감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등록제로 운영되는 산업은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지만,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시점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 개운치 않다.

신대철 씨를 비롯해 여러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 이 점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시행 후 유예기간에 자격심사 업무를 진행한 당시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이 최순실 씨 최측근이던 차은택 씨가 추천한 송성각 씨라는 점도 이러한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현경 한국콘텐츠진흥원 대중문화예술지원센터장은 “까다로운 등록 요건 등 일부 민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일반적인 시행착오 수준”이라며 “법 추진 시점만 따져 봐도 블랙리스트 사건과 연관 짓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가수 신대철 씨는 지난 2월 페이스북에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거세게 비판했다. 사진=신대철 씨 페이스북 캡처


# 등록제, 어떻게 도입됐나

김현경 센터장의 설명처럼 블랙리스트의 사전 작업이라는 주장에는 여러 가지 반론이 제기된다. 법이 제정된 시기는 2014년 1월이 맞지만 그 전부터 많은 공청회가 열렸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국회의원들의 발의와 재청이 있었다. 제2의 장자연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장자연법’으로 불리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정이 최초 추진된 시점은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이며, 이후 무려 4년이나 지지부진하다가 2013년 12월 31일 박창식 전 새누리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마침내 통과됐다. 세부 시행규칙이 만들어진 시기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면직된 유진룡 장관 재임 시절이다. 현재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김종덕 전 장관과는 시점상 맞지 않다.

순기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미성년 연예인의 야간활동 금지 및 학습권 보장, 연예인과의 수익 정산은 발생 후 45일 이내에 해야 한다는 조항 등을 통해 연예인 권익 향상을 도모한 측면도 있다.

또 등록제 자체만 보면 사이비 연예기획사들을 일차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 특히 각종 성범죄 및 아동보호법 처벌을 받은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이나 혹은 그러한 사람이 임원으로 재직할 경우 등록 결격 사유가 되는 점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 자격요건 4년 대형 기획사의 요구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연예 매니지먼트 관련 등록제를 시행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한 문화산업 특성상, 자유로운 진입을 막는 시대착오적인 법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등록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독립 연예 기획사나 인디음악 레이블 연예사업 진출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좌편향 인디 뮤지션 및 일부 연예인들을 죽이기 위한 법안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등록 요건을 살펴보면, 크게 해당 경력 4년 이상과 고정적인 사무실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경력 증명은 기본적으로 4대 보험 가입이나 소득으로 증명하지만, 정규직이 많지 않은 업계 특성을 반영해 월급 이체 내역과 같은 법적 효력이 없는 문서까지도 증빙서류로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이라는 등록 요건을 대체할 방법 자체가 없어, 신규 사업자 진입을 가로막는다는 의견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법인사업자로 신청한 다음, 4년 경력을 갖춘 사람의 명의만 빌려 임원으로 임명하는 편법까지 횡행한다. 임원 중 단 한 명이라도 자격 요건을 충족하면 되는 법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심지어 명의 대여자가 복수 회사의 임원이 되더라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블랙리스트와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록 제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억울해했다. 이 관계자는 “원래 정부가 만든 원안에는 등록 요건이 2년이었으나, 기존 대형 연예기획사 및 관련 단체들이 4년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해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미란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사무관은 “요구 경력을 낮추거나 교육과정 및 전공 인정 등 다양한 등록 요건 완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미등록으로 인해 과태료 등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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