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른 봄 잔설이 산야에 가득한데 잎이 나기도 전에 먼저 노란 꽃을 터뜨려 봄소식을 일찍 전하는 봄의 전령 생강나무.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듯이 왼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의 ‘동백꽃’ 중에서
이른 봄 생강나무 꽃을 볼 적마다 생각나는 단편 소설의 한 대목이다. 30세로 요절한 천재 문인 김유정은 강원도 금병산의 들머리인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5년밖에 안 되는 작가 생활 동안에 그는 ‘동백꽃’, ‘만무방’, ‘금 따는 콩밭 길’, ‘봄봄’ 등 30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동백꽃’에서 말한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나는 노란 동백꽃’은 실제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이다. 이 소설은 생강나무 꽃 핀 봄날 어느 산골, 사춘기에 이른 소작인의 아들인 ‘나’와 마름의 딸 ‘점순’ 사이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담아낸 소설이다.
김유정이 자란 강원도에서 동백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동백꽃은 생강나무를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이다. ‘동박’이라고도 한다.
찬 바람이 채 가시기 전 이른 봄날 어느새 고운 꽃망울을 부풀려 키웠는지 톡톡 터지는 해맑은 생강나무 꽃망울이 참으로 곱다. 푸근한 봄기운이 전해 오는 듯하다. 생강나무 꽃망울이 터져 산야가 노랗게 물들고 맑은 향이 골골이 퍼져 나가면 봄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생강나무는 노란색의 작은 꽃들이 여러 개 뭉쳐 산형꽃차례를 이룬다. 생강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나 색깔이 산수유와 비슷하여 서로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생강나무는 산수유보다 꽃이 먼저 핀다. 자세히 보면 꽃 모양과 수피가 사뭇 다르다. 생강나무 꽃은 꽃자루가 짧아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핀다. 꽃잎이 6장이며 수술은 9개, 꽃잎과 수술의 길이가 거의 같다. 또 수피가 매끈하다.
반면에 산수유는 중국 원산이며 주로 약용 재배하므로 야생의 산수유는 거의 없고 민가 근처나 밭둑에 심어 가꾼다. 꽃자루가 길고 꽃잎이 4장이며 수술도 4개, 수술이 길어 꽃잎 밖으로 튀어나온다. 수피는 너덜너덜하게 벗겨진다. 산수유 열매는 빨갛게 익지만, 생강나무 열매는 검은색으로 익으며 장과이고 둥글다.
산수유 꽃은 암수한그루이지만 생강나무 꽃은 암수딴그루이다.
수꽃은 수술이 풍성하고 암꽃보다 크고 꽃도 빽빽하게 많이 달린다. 반면에 암꽃은 수꽃보다 개체 수가 매우 귀하며 꽃도 암술머리 한 가닥만 위로 약간 나온 모습이라서 꽃 자체가 빈약해 보인다. 수꽃은 화피 조각 6개와 9개의 수술이 있고, 암꽃은 화피 조각 6개와 1개의 암술, 그리고 헛수술 9개가 있다.
생강나무는 전국의 해발 고도 100~1600m 산지의 계곡이나 숲속의 냇가에서 자란다. 높이는 3∼6m이고, 나무껍질은 회색을 띤 갈색이며 매끄럽다. 윤택이 나는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며 윗부분이 3∼5개로 얕게 갈라진다. 3개의 맥이 있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이나 가지를 잘라 비비면 생강 냄새가 난다. 생강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이다.
어린잎은 식용할 수 있으며 나물이나 차로도 이용할 수 있다. 꽃은 관상용이고, 열매에서는 기름을 짠다. 한방에서는 나무껍질을 ‘삼첩풍’이라 하여 약재로 쓰는데, 타박상의 어혈(瘀血])과 산후에 몸이 붓고 팔다리가 아픈 증세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열매에서 나오는 기름을 등불이나 머릿기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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