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3월 개강이 엊그제 같은데 순식간에 4월이다. 수업이 가장 많은 월요일이 지나면 화요일이 오고, 수업 듣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금방 목요일이었다. 주말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시간은 점점 바스러지는 것 같은데 팀플과 과제와 시험은 무겁게 쏟아졌다. 이는 곧 빡침과 원망과 벼락치기의 날들을 의미한다.
수강신청 할 때의 내가 밉다. 마지막 학기를 보람차게 보내보겠다고 신청했던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 진짜 대학 강의’ 혹은 ‘빡센데 얻어가는 것이 많은 수업’들은 마지막 학기에 들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박명수가 말하지 않았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은 거라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팀플이다. 개인적으로 성격상 팀플에서 독재를 하면 했지, 참여를 안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저주받은 성격 덕분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나 보다. 언제나 팀플은 프리라이더들의 향연과 독박 쓰는 자들의 분노로 현란하다.
“너무 참여하고 싶은데 아는 게 없어요.”
“제가 너무 바빠서…. 다음부터 열심히 할게요.”
“폰이 꺼져서 지금 카톡 봤어요.”
“자료 조사해서 보내드리면 돼요?”
보기만 해도 열받는 문장들이 카톡방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제일 짜증나는 말은 바로 이것.
“고생하셨어용 ㅠㅠ”
아니 제발 너도 고생 좀 하라고. 울고 싶은 건 난데 왜 니가 울고 난리야. 아오!
예상보다 바쁜 학기를 보내면서 알바하랴, 취준하랴, 이것저것 하다 보니 놓치는 것들이 많다. 그럴 때 ‘한심 정도’가 수치 1만큼 상승하는 기분이라 침울하다. 예를 들면,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들의 정보통 다음 카페 ‘아랑’은 정회원이 되어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스터디그룹에 참여하는 글을 쓸 수 있다.
정회원 등급을 올리려면 자기소개 등록이 필요한데 문항마다 200자 이상 써야 하고 글을 올릴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한 번이다. 달력에 등업 가능 날짜를 표시까지 해놨음에도 놓쳤다. 달력을 보니 이미 등업 날짜가 지났다. 그렇게 또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취업준비에 한 발 또 늦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다. 마치 우주먼지 같은…. 뭘 놓쳤다, 싶은 자각은 나를 푹 젖은 빨래처럼 무기력하게 만든다. 요즘은 참 생각을 많이 한다.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떠나고 싶다.’
지난해 이맘때 덴마크에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파견돼 덴마크의 남쪽 도시, 오덴세에서 살았다. 내가 공부하던 남덴마크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는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학교였다. 학생들로 북적인 적도 없고 학교 가는 길도 휑했다. 대신 숲, 호수, 정원으로 이어져 있었다.
4월 초니 자주 비바람이 몰아치고 춥겠지만 어떤 날은 꽤나 따스할 것이다. 5월이 되어야 정말 봄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확실한 건 미세먼지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는 점이다. 수도인 코펜하겐도 마찬가지였다. 문명화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는 선진국이었는데도, 깨끗했고, 자유로웠고, 밝았다. 하지만 정말 추웠다.
그 추억이 요즘 내 주위를 돈다. 서울 어느 자락에서 유럽을 연상하곤 한다. 모양새나 느낌 등에서. 그러나 1분도 안 돼 깨닫는다. ‘여기는 서울이지.’ 충청도 작은 도시 출신이라 그런지, 나는 자주 향수병에 걸리곤 했다.
서울 디톡스가 필요한 날들이 한 번씩 있었고, 그럴 때면 우울했다. 그런데 향수병의 대상이 더 이상 시골집이 아니다. 덴마크 시골마을, 오덴세의 향기가 갈수록 진해진다.
당시 수업을 거의 안 듣고 2주에 한 번 유럽 내를 여행했다. 혼자 갈 때도 있었고, 한국 친구들과 갈 때도 있었다.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자유로운 시절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답답한 생활 탓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나는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취준 생활을 도피하고 싶은 게 분명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유는 많았다. 나라에 대한 불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문화, 여유가 없는 생활. 유학이나 이민을 수십 번 고민했던 이유다.
지금도 떠남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야겠지만, 익숙한 곳에서 살기 위해 익숙해지지 말아야 하는 것들까지 감내하고 있다. 스트레스에 오는 일시적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나도 배운 것들이 많다.
혼자 여행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은 날도, 슬픈 날도 많았다.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분명 있었다. 다만 얻은 게 더 많았다. 시야도 얻고, 여행병도 얻고. 다 그립다. 탁 트인 풍경도, 정감 있던 마을도, 사람들 간의 배려도.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지만 나는 왜 여기가 힘들까. 그냥 견디는 게 답일까.
나에게는 원대한 계획이 있다. 취직한 다음 3년 뒤, 아니 구체적인 햇수는 모르겠고 서른 전에는, 무조건 회사를 그만두고 떠날 것이다. 사회가 나에게 준 기준을 벗어 던지고 싶다. 매일매일 즐겁게 살고 싶다. 포르투갈 해변에 식당도 차리고 싶다. 비현실적이라고 비웃겠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행 전 나는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원하는 것도 말 못하는 그런 사람. 그런데 여행을 떠나 떨리는 감정을 가지고,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내가 뭘 원하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꼭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아쉬워하고, 애타고 그런 것들이 너무 감사했다.
인생이 무채색이었다면, 여행을 통해 ‘빨강’이라는 색을 하나 얻은 것 같다. 인생의 교훈 하나를 얻었다. 내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 색은 없다고. 이런 가르침을 준 여행에 진한 상사병을 앓는 중이다.
하지만 현실은 도서관…. 잠깐 여행사진들을 보다 추억에 잠겼다. 꿈에서 깨라는 듯 팀플 조원 중 하나가 단톡방을 나갔다. 너도 고민 많았겠지…. 그래, 행복해라…….
오늘도 도서관의 밤은 깊어간다.
※필자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거둬갈 기업 관계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이상은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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