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서비스는 이틀 만에 만들 수 있다.”
20개 팀이 정치, 선거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하는 서비스 개발의 막이 오르는 순간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외친 말이었다. 이 대표의 말을 시작으로 20개 팀은 각자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다. 몇몇 팀은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1박 2일로 구글코리아, GEN(GLOBAL EDITORS NETWORK), ‘미디어오늘’이 공동 주최한 ‘서울 에디터스 랩’이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열렸다. 서울 에디터스 랩은 글로벌 해커톤 ‘GEN 에디터스랩’의 한국예선으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가 3인 1조로 참가해 선거와 관련한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대회다.
이번 행사는 해커톤(Hackaton)의 일종이다. 해커톤은 ‘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로 마라톤을 하듯 쉬지 않고 24시간 이상, 길면 48시간이 넘는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행사다. 보통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의 프로그래머나 관련된 그래픽 디자이너,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으로 구성된다.
이번 대회 우승팀은 오스트리아에서 개최되는 글로벌 에디터스 랩 결선에 출전하게 된다. 참가비, 항공권, 체류비도 모두 지원한다. 우승팀은 행사 이후에도 GEN 전문가들의 멘토링과 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2등부터 아무 것도 없다. 말 그대로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이었다.
‘비즈한국’도 이번 대회에 팀으로 등록해 참가했다. 기자(기획자)와 이세윤 콘텐츠 디자이너, 이세윤 디자이너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1기에서 협업한 김동관 씨가 한 팀을 이뤘다. 비즈한국은 이번 해커톤 대회에 ‘실시간 팩트체킹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기획으로 출전했다. 가짜뉴스의 시대. 토론 청문회 등에서 실시간으로 정치인 관료의 발언의 사실 여부를 판명하겠다는 목표였다.
이 기획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비롯됐다. 가장 중요한 증인이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무너트린 결정적 한 방은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아닌 디씨인사이드 주식갤러리 누리꾼의 제보로 비롯됐다. 크라우드(Crowd) 시스템을 구축해 집단지성의 힘으로 팩트를 검증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팀 이름도, 서비스의 이름도 ‘바이 더 피플(By the People)’로 정했다.
구체적인 서비스 목표는 이렇다.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대선 토론을 불러들인다. 이 영상을 구글 서비스를 이용해 텍스트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텍스트를 사람들이 참여해 사실 여부를 가린다. 진실이 아닌 경우 그 근거를 제시한다.
최소한의 전문가가 투입돼 진실 여부를 확정하게 되는 구조다. 이렇게 확정된 진실과 거짓이 모여 후보자의 진실 비율이 늘어나고 줄어든다. 게임 요소도 첨가했다. 거짓을 밝혀낸 사용자는 레벨이나 훈장으로 보상 받는다. 예를 들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증언을 뒤집은 ‘주갤러’의 경우에는 ‘비서실장 킬러’ 호칭을 쓸 수 있는 식이다. 단어 하나 놓치지 않으면 ‘셜록’, 건강 정보를 잘 알면 ‘허준’ 등으로 확장도 가능하다.
행사는 전문가 특강으로 시작했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 강규영 박스앤위스커 대표, 아이린 제이 류(Irene Jay Liu) 구글뉴스랩 팀장, 사라 토포로프 GEN 매니저 등 명사의 강연이 이어졌다. 특히 사라 매니저는 “우승팀은 있겠지만 끝나고 나면 우리 모두가 우승자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속으로 ‘우리 모두를 오스트리아로 보내 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본격적인 개발 시작 전 각자의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짧은 발표 시간도 있었다.
드디어 개발이 시작됐다. 화면 구성부터 선택의 연속이었다. 어떤 화면을 처음에 보여줄지, 어떤 사용자 인터페이스(UI)로 구성할지 모든 게 어려웠다. 비치된 화이트보드 대용 종이에 그려가면서 짜기 시작했다. 화면이 더 커야한다, 작아야 한다 등의 의견충돌이 시작되자 3인 1조라는 최소한의 인적구성으로 꾸려진 팀이라는 점이 다행으로 다가왔다. 의견 충돌은 있었지만 빠른 대화로 의견을 모아 나갔다.
기본적인 뼈대를 잡고 보니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주최 측에서 맥주를 준비했다. 이때부터 자율이었다. 집에 가도 되고 밤샘 개발도 가능하다. 개발 단계에 들어선 ‘비즈한국’ 팀은 밤샘을 다짐했다.
본격적인 어려움은 기획 단계를 넘어 개발 단계에서 시작됐다. 이세윤 디자이너는 서비스에 들어갈 캐릭터를 그리고 각 화면을 구성했다. 김동관 씨는 개발에 돌입했다. 이 서비스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컸다.
자정을 넘기면서 기획자가 할 일은 더욱 사라졌다. 이제는 제출 시간에 맞춰 개발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문외한인 기획자는 개발자가 눈이 빠져라, 손목에 터널증후군이 올 듯 키보드를 두들기는데 이래라, 저래라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5시쯤 소파에 불편하게 누워 잠을 청했다. 일어나보니 개발도 종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해커톤은 꼭 완성된 결과물을 낼 필요는 없다. 시간이 주어지면 구현할 수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충분한 설명만 되면 된다. ‘바이 더 피플(By the People)’ 팀은 기술적 문제로 구현할 수 없던 부분, 시간이 없어 미처 끝내지 못한 부분을 제외하고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발표 자료와 서비스에 대한 영문 소개를 작성했다. 마지막 문장은 팀 이름을 고려한 중의적 의미를 담아 ‘더 트루스 윌 윈 바이 더 피플(the truth will win By the People: 국민의 힘으로 진실이 승리할 것이다, 발표 자료는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이라고 적었다. 제출이 끝나자 욕심도 났다. 참가자가 직접 스티커를 붙여 뽑은 최고의 서비스에서도 2등을 차지했다. 1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없기에 특히 아쉬움이 컸다.
20개 팀의 모든 발표를 들었을 때는 욕심이 좀 줄어들었다. 탁월한 팀이 많았다. 짧은 시간에도 완성도가 높았다. 모든 팀의 발표와 제출 자료를 들고 심사위원들의 검토가 시작됐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드디어 시상식이 시작됐다. 스타트업 미디어 ‘디퍼’ 소속 ‘프라이어’ 팀이 오스트리아 비엔나 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전날 밤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팀이었다. 발표할 때 단상에 올라가면 서로 응원해주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프라이어 팀은 20대의 뉴스 접근이 어렵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크라우드 소싱 기반으로 정치 단어의 의미를 쉽게 해석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아쉽지만 끝났구나’ 싶을 때 주최측에서 “우승은 아니지만 구글을 포함한 주최측이 인정해주는(Recognize) 팀을 꼭 불러주고 싶다”고 했다. 제이 류 팀장은 “비즈한국”을 호명했다. 선정 이유로 가짜뉴스가 화두인 때 실시간 크라우드 검증을 들고 나왔다는 점과 실시간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기술을 적용했다는 부분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뛸 듯한 기쁨도 잠시, 생각해 보니 받은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받은 것은 구글의 인정뿐. 그래도 ‘그거라도 어디냐’는 생각에 짐을 챙겼다. 대회장을 나오자 피로가 엄습했다.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허리도 아팠다. 그래도 뿌듯했다. 묘한 성취감도 있었다.
돌이켜 보니 에디터스 랩은 좋은 기회였다. 기자는 디자인을 모른다. 개발은 더 모른다.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본다는 경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모르는 영역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서점에 들러 책 ‘점프 투 파이썬’을 샀다.
스마트폰 잠금화면으로 적립금을 모으는 애플리케이션 ‘캐시 슬라이드’를 만든 스타트업 소속 엔비티 팀은 한 해 모이는 정치후원금 총액보다 많은 소액 후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국민의 혈세인 예산을 감시하겠다는 팀도 있었다. 각각의 서비스가 실제로 론칭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행사가 열린 구글 서울캠퍼스의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이번 행사 의미를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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