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크래프트는 예술이었고 문화였으며 우리의 학창 시절이었다.’
지난해 아프리카TV 스타리그 시즌2 4강전, 한 관람객이 써온 응원 문구에 많은 시청자들과 관계자들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이는 전설이 되어버린 프로게이머들이 만들어 낸 숱한 명 경기에 모두가 환호하고 즐거워했던 추억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지난 1998년 출시돼 대한민국 민속놀이 반열에 오른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19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래픽을 4K 해상도에 맞게 전면 개편하고, 각종 불편 요소를 최신 게임 환경에 맞게 재정비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올 여름 출시되는 것.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게이머가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회사다. 그래픽은 크게 향상됐지만 게임 그 자체는 조금도 손대지 않았다. 어설프게 게임을 손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는 결코 블리자드 혼자 만든 게임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한결같이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 해온 한국 게이머들에 의해 끊임없이 갈고 닦인 그야말로 시대가 낳은 걸작이다.
리마스터 발표 직후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게임 역사상 명작은 숱하게 꼽을 수 있지만, 스타크래프트와 같이 20년간 꾸준히 현역 게임으로 사랑 받은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 인구가 10대에서 40대까지 폭넓게 걸쳐져 있음을 의미한다. 직접 해보지는 않았어도 e스포츠 방송 중계를 통해 게임의 룰을 알고 있는 사람까지 감안하면 그 저변은 섣불리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부활로 모아진다. 임요환, 홍진호, 강민과 같은 전설적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블리자드도 내심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가 다시 부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부활에 대한 각계각층의 전문가 전망을 들어봤다.
# 달라진 미디어 환경...성공 조건도 다르다
정재욱 아프리카TV e스포츠콘텐츠팀 차장은 e스포츠 전문 매체 파이터포럼 기자 출신으로 곰TV, 온게임넷, 스포티비게임즈 등을 거친 국내 최정상 e스포츠 전문가다. 한때 워크래프트3 경기 해설을 맡을 정도로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도 역시 뛰어나다. 그에게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에 대한 소감과 e스포츠 시장 전망을 들었다.
정 차장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의 e스포츠 흥행에 대해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까지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심 기대는 되지만, 미디어 환경이 크게 변했기 때문에 성공이라는 정의 자체를 달리 가져가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어쩌면 부활이나 복귀라는 단어보다는 새로운 성공 신화를 쓸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예를 들어서 과거 모래시계와 같은 인기 드라마는 시청률 50%를 기록하기도 했죠. 지금 방송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최근에 흥행한 드라마가 없는 것은 아니듯이,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흥행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거죠.”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게임성도 e스포츠 흥행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했다.
“리마스터 테스트 버전을 해본 프로게이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오리지널과 하는 느낌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해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야구로 예를 들면 공인구와 배트가 똑같아서 선수들이 새로 연습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죠.”
그렇다면 불안 요소는 없을까. 사실상 스타크래프트 독주 체제였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리그오브레전드’를 비롯해 ‘오버워치’, ‘피파온라인3’ 등 다른 인기 게임들이 이미 e스포츠 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과연 ‘스타크래프트’가 다시 낄 자리는 남아있을지 물었다.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다른 경쟁 프로그램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로 재충전 시간을 가졌듯, 결국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자체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저변과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만 보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 광안리 10만 관중 신화를 재현하라
권오용 일간스포츠 J비즈팀장은 e스포츠 초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취재를 도맡아오며, e스포츠 산업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늘 현장을 지켜왔다. 한때 e스포츠 기자단 간사를 맡기도 하며 산업 부흥과 건전한 성장에 대해 균형감 있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과연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부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기자답게 산업적 관점에서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부활의 가능성을 풀어나갔다. 결국 e스포츠도 스포츠이기 때문에 관중 동원 능력을 보고 기업들의 후원이 이뤄져야 선순환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때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프로게임단을 창단하던 시절은 확실히 아니다. 결국 기업 후원 없이는 대회 상금도, 번듯한 경기장도 마련하기 어렵다.
“스타크래프트2 초창기 LG전자가 후원한 이유는 3D로 만들어진 스타크래프트2와 3D 기술력을 홍보하고 싶었던 LG전자의 니즈가 잘 맡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는 올드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기업들도 후원을 망설였던 것이죠. 다시 새로운 게임이 됐으니 기업들의 관심도 어느 정도 생길 수는 있겠죠.”
그렇다면 기업이 다시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대회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권 팀장은 무엇보다 새로운 게이머 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게이머들만 가지고는 기업들이 대회에 매력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직까지 스타크래프트를 접해보지 않은 10대 들이 다시 게임을 즐기기 시작해야 합니다. 또,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모객 파워도 증명할 수 있어야겠죠. 예를 들어서 예전처럼 스타크래프트가 광안리에서 10만 명을 다시 운집시킬 수만 있다면 언론이 먼저 반응할 것이고, 결국 기업들은 다시 관심을 가질 것으로 봅니다.”
# 모든 것은 팬에게 달렸다
이제는 전설이 돼 버린 임요환, 홍진호, 강민, 김정석과 같은 1세대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 수많은 후배 프로게이머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현재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계에는 ‘택배리쌍’이 버티고 있다. 김택용, 송병구, 이제동, 이영호를 일컫는 택배리쌍 4인방 중 역대 최강 프로토스로 인정받고 있는 송병구 선수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송 선수는 일단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에 대해 합격점을 줬다. 조작감에 관한한 아무리 미세한 차이라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프로게이머의 이 같은 평가는 극찬에 가깝다.
“한글화라거나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 무료 배포 등은 발표 현장에서 저도 처음 들은 소식인데요. 블리자드가 은근히 고집이 있는 기업인데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 게이머들을 배려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리마스터가 출시되면 세간의 관심은 당연히 전설적인 프로게이머들의 귀환에 모아진다. 송 선수는 결국 모든 것은 팬에게 달려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팬이 있어야 프로게이머도 있고, e스포츠도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인기 프로게이머들이 현재 개인방송 등을 통해 적잖은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과거 소속팀과 계약했던 연봉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팬들이 스타크래프트에 다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그 누구보다 기대하는 것은 블리자드나 방송국 보다 오히려 프로게이머 일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긍정적인 분위기인 것은 분명해요. 방송국들도 서서히 관심을 보이는 것 같고요. 다만 예전처럼 프로게임단도 없고, 대부분 선수들이 병역 문제도 걸려있기는 합니다. 만약 군 제대 후에도 계속 스타크래프트가 인기를 얻는다면 더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함께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팬이 있어야 프로게이머도 있는 거니까요.”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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