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의 한 조기축구 경기장. 센터서클에서 공을 잡은 ‘노원구 베론’이 단박에 전방을 향해 스루패스를 찌른다. 대지를 가른 패스는 어느 틈엔가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며 쇄도한 ‘서둔동 인자기’의 발에 안착했다. 노마크 상황에 골키퍼가 튀어나오지만 ‘서둔동 인자기’의 발을 떠난 공은 어느새 골망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를 상공에서 드론이 촬영하고 있다.
2015년 12월 시작된 ‘고고고알레알레알레(고알레)’는 아마추어 축구 경기를 드론으로 촬영·편집해 제공하면서 색다른 영상으로 축구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고알레는 트레인위드알레, 게릴라풋볼 등을 기획하며 생활축구에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아마추어 축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 고알레의 공동 창업자 윤현중·이병욱·박진형 대표를 지난 22일 서울 장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 분은 고등학교·대학교 친구 사이라고 들었다. 고알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박진형 대표(박): “윤현중 대표의 사연을 빼고 논할 수 없다. 듣고 또 들어도 눈물이 난다. 윤 대표는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하고 잘 했다. 20대 후반 십대인자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의사가 ‘축구는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하더란다. 윤 대표는 그 말을 듣고 ‘언제든 축구를 계속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기억 속에만 있는 인생슛·인생패스·인생경기는 어디도 남아있지 않구나’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다 ‘내 축구경기를 찍어주는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닿았다. 그렇게 고알레 기본 개념이 착안됐다. 당시 나는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윤 대표가 사업을 시작하자며 계획을 알려줬고, 거기에 공감해 유학 생활을 접고 합류했다.”
이병욱 대표(이): “나는 당시 외국계 글로벌 광고대행사를 다녔다. 그곳에서는 다른 기업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러던 중 ‘이런 시간과 젊음을 내가 원하는 일에 투자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결과물을 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 마침 윤 대표가 사업제안을 했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일을 시작했다.”
―고알레를 시작하기 이전 드론을 사용해봤나.
박: “셋 다 아무도 만져본 적 없었다. 윤 대표가 인터넷에서 외국인들이 드론으로 자신들 경기를 찍는 영상을 우연히 봤다. 드론이라는 디바이스가 나오면서 아마추어 축구인들도 자신들의 플레이를 프로선수와 같은 앵글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드론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윤 대표는 드론을 한 대 사서 연습을 시작했다. 나 역시 영국에서 돌아와 드론을 처음 만졌을 때, 어떻게 날리는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겠다.
윤현중 대표(윤): “정말 많았다. 요즘은 운동장에서 드론을 띄우면 ‘고알레다’라고 알아보시는 분들도 계신다. 초창기에는 드론으로 뭔가 하려 하면 ‘쟤들 뭐야. 빨리 내보내’라며 쫓겨난 적도 있었다. 조작미숙으로 드론이 떨어진 적도 있다. 나무에 걸리고, 국기 게양대에 부딪혀 떨어지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촬영기법을 개발하면서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안전이어서, 경기장 안 선수들 머리 위를 날지는 않는다.”
―고알레 영상은 촬영구도 못지않게 편집이 인상적이다. ‘노원구 베론’ ‘도곡동 반 페르시’ 등 별명을 붙이며, 특색에 맞는 플레이 포인트를 잡아준다.
이: “촬영분을 편집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이들은 아마추어라는 사실이다. 실수도 많고, 경기 내내 잘 뛰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분들에게는 소중한 순간이다. 어떻게 돋보이게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다양한 포지션별로도 편집했고, 동경하는 축구선수의 별명도 붙여줬다. 자신들의 플레이 영상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게끔 영상을 만들었다.”
―아마추어 축구 드론 촬영에 그치지 않고 트레인위드알레(트레이닝 프로그램)과 게릴라풋볼(축구 매칭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박: “셋 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선수 출신도 아니고, 엘리트 축구를 경험해본 적은 없다. 그게 장점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일반 대중의 시선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부분과 대중의 필요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트레인위드알레나 게릴라풋볼도 그 지점에서 시작됐다.”
“게릴라풋볼의 경우 축구라는 종목은 나를 제외한 우리팀과 상대팀 21명이 모여야 한다. 축구가 하고 싶은데 이 같은 불편함에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 우리가 경기장을 잡고, 사람을 모으고, 축구를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준다면, 그 사람들은 그냥 와서 재미있게 축구를 할 수 있다. 거기다가 플레이를 촬영까지 해주고. 그런 생각에서 기획하게 됐다.”
“트레인위드알레 역시 마찬가지다. 엘리트 축구 교육까지는 아니라도, 축구를 배우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트레이닝의 장을 마련해주기 위해 시작했다. 트레이닝은 월 4회 진행하고, ‘청춘 FC’에 뛰었던 김동우 감독과 그의 친동생 김동훈 감독의 지도하에 30명씩 두 팀이 운영되고 있다.”
―지원자들은 많이 있나.
윤: “1기 때는 얼마나 지원할까 반신반의했다. 근데 300여 명이 지원했다. 2기는 500명이 넘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다. 다 해드리고 싶은데 우리의 여력이 안 돼 죄송스러웠다. 2기는 한 팀을 늘려 두 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참여하시는 분들 중 기억에 남는 이가 있나.
윤: “생각나는 분들이 너무 많다. 그중 거제도에서 매주 서울까지 오가는 친구가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더라. 우리는 ‘엄청 금수저인가보다. 여자친구는 분명히 없겠다’ 생각했다. 알고 보니 비행기 티켓 값은 아르바이트한 돈이고, 여자친구도 있었다. 처음에는 여자친구가 ‘제정신이냐. 주말에 데이트 안하고 축구하러 서울에 가게’라며 반대했다고 했다. 그런데 트레인위드알레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여자친구가 나중에는 ‘잘했다. 또 해라’라고 격려했다고 하더라.”
박: “지방에서 오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다. 한 명은 군인이었다. 대구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는데, 주말마다 외박을 받아서 서울에 올라와 공을 차고 다시 내려갔다. 이해가 안 됐다. 부대 내에서도 축구 지겹도록 할 텐데, 피 같은 외박을 받아 또 축구를 하러 먼 길을 오다니. 그래서 ‘안 피곤하냐’고 물었더니 ‘피곤해도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하더라.”
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준 유부남도 있었다. 본인은 어릴 때 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축구를 가슴에 묻고 결혼도 하고 바쁘게 살았는데, 트레인위드알레를 보고는 어릴 적 꿈을 이뤄보고 싶어 지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훈련을 받는 동안 너무 즐거웠고, 여한을 푼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가 헛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전술 관련 방송도 하고 있다.
박: “축구를 뛰고 나면 보통 맥주 한잔하면서 경기의 잘잘못을 복기한다. 기록이 없기 때문에 설전에 가깝다. 그걸 방송으로 해볼 수 있겠다 싶더라.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듯 우리가 찍은 아마추어 축구 영상을 보며 전술을 논해보는 것이다. 함께 방송을 하고 있는 풋살 국가대표 출신 최경진 선수가 말을 잘해서 잘 되는 것 같다.”
윤: “우리가 축구 영상으로 방송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한국 아마추어 축구도 누군가 조금만 더 가르쳐주면 훨씬 재미있게 할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한다.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두 번째로 더 큰 이유는 일반인들은 축구를 할 때 실수를 지적하기 바쁘다. 하지만 프로선수들도 90분 동안 골이 나오는 장면은 패스, 트래핑, 슈팅 모든 것이 잘 들어맞은 몇 장면뿐이다. 실수를 들추기보단 잘한 장면을 찾아내 칭찬하고, 더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려고 방송하는 거다.”
―고알레는 처음에 ‘아마추어 축구 촬영업체’라고 소개했다. 지금은 촬영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고알레를 뭐라고 정의 내리는 게 좋을까.
윤: “이제 와서 ‘고알레가 뭐하는 회사야’라고 한다면 콘텐츠기업이라고 할 것 같다. SNS에 아마추어 축구 영상을 멋있게 촬영·편집해서 올리고, 축구팬들이 아마추어 축구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공급하는 회사.”
박: “고알레의 슬로건이 ‘아마추어 축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중들이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고알레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박: “한국에서 생활축구는 아직까지 남자들의 영역이다. 조기축구를 즐기는 많은 남자들은 여자친구나 아내의 반대에 부딪힌다. 데이트 시간을 뺏기고, 육아나 가정일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축구문화를 만들고 싶다. 함께 축구장을 찾는다던지, 같이 축구를 배워보는 등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다.”
이: “한국은 아직까지도 외국에 비해 생활축구 문화나 산업기반이 약하다. 안타까운 현실이면서도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축구는 바디랭귀지고, 전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콘텐츠다. 우리 역시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계획으로는 올 하반기에 여러 국가에서 재밌는 서비스를 진행할 구상을 하고 있다.”
민웅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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