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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일기] 외로운 취준생에게 닥친 아주 사소한 시련

큰일이다, 외로움을 깨달아버렸다.

2017.03.22(Wed) 20:26:31

[비즈한국] 집에 불이 나갔다. 정전 사태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지난 월요일이었나, 갑자기 불이 확 꺼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순간에 꺼진 모든 불. 당황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아직 휴대폰이 켜져 있었고, ‘두꺼비 집을 여기저기 만지면 될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집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관리인 아저씨께 말씀 드리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각이라 퇴근하셨으려나…. 애써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연락을 하자 아저씨가 이미 퇴근했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몹시 곤란해 하셨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을 알아봐서 해결해줄 수 있는지 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말씀하신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때 처음 느꼈다. 어둠 속에서 있는 5분이 얼마나 긴지. 내가 아무리 밤을 좋아하고 야행성이라 해도 어둠은 싫은데. 잘 때에 조그마한 빛이 있는 건 싫어하지만 아직 자고 싶은 건 아닌데. 그 캄캄함 속에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언제나 두려움은 인식하는 순간 시작된다.

 

어둠은 나 몰래 와야 한다.


조금 더 기다리니 드디어 연락이 왔다. 다른 분이 와서 조작을 해준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후 다시 불이 들어왔고, 다음날 우리 집을 포함한 밑 세대, 그 밑 세대 이렇게 세 집의 전기가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큰 공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오늘은 잘 들어오겠지. 긍정적인 마음으로 학교를 다녀왔다. 그런데, 또! 픽-하고 전기가 꺼져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한 이틀 정도, 꺼지고 밑에서 조작하면 켜지고, 이를 반복했고 나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불이 들어와도, 이거 곧 꺼지는 거 아닌가 불안함이 스멀스멀 생겼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넣어두는 반찬이나 과일 등 음식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휴대폰 충전은 또 어떡하지? 보일러 전원이 나가 샤워에 대한 걱정도 생겼다.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이었다.

 

다행히도(?) 불이 완전히 꺼졌다. 나는 적어도 또 불이 나갈 거라는 불안에는 휩싸이지 않아도 되었다. 아저씨는 정말 미안하다며 며칠만 참으라고 했고, 나는 편의점에 가서 주섬주섬 촛불과 라이터를 사왔다. 

 

어둠 속에 너무 있다 보니 우울해서 이왕이면 기분 좋아지라고 향초를 샀다. 바닐라 향이 나는 작은 향초 여러 개. 스스로를 위한 촛불 길을 만들어 본 적 있는가. 나는 때 아닌 촛불 이벤트로 사뭇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말았다. 책상에 하나, 화장대, 싱크대 그리고 욕실에 하나. 은은한 불로 빛나는 촛불들을 보자니 나름 오붓했다. 

 

돈 몇 냥을 쥐어주고 방을 채워보라고 했더니 슬기롭게 초 하나를 사서 방안을 빛으로 ‘가득’ 채웠다는 고사를 들은 기억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도 잠시뿐, 오붓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을 틈이 없었다. 나는 당장 냉장고에 든 음식과, 20퍼센트가 남은 휴대폰과, 아직 씻지 않은 나 자신을 챙겨야 했다. 급한 대로 이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생각해보았다. 

 

젠장, 다 남자애들뿐이다. 근처에 남자친구들이 살아서 든든해서 좋다, 뭐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이럴 때 보니 온통 쓸모없는 술친구들일 뿐이었어…. 친하긴 하지만 너네 집에서 음식 좀 보관하고 휴대폰 좀 충전할 수 있겠냐. 도움을 청하기 미안했다. 그럴 일 없겠지만, 샤워 좀 하고 어두워서 무서우니 잠시 같이 좀 있으면 안 되냐는 말이 유혹으로 들릴 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어휴. 결국 나는 근처 24시간 카페에 가서 휴대폰을 충전하고, 양치질을 했다. 이는 도저히 시리데 시린 물로 닦을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불을 켤 필요가 없다는 게 신박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촛불을 켰다. 여러모로 2017년은 촛불을 켤 일이 많은 게 분명해…. 무서워서 잠이 안 올 까봐 맥주를 사왔는데, 무심코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 놓으려다가 쓸 데 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맥주와, 또 역시나 잠이 안 올까봐 카페에서 다운 받은 영화 한 편. 그리고 나만을 위해 빛나던 우리 촛불 형제들, 이렇게 오순도순 하룻밤을 보냈다. 결코, 편한 밤은 아니었다. 두렵고, 무섭고, 불편한, 무엇보다 전기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 밤이었다.

 

24시 카페인 줄 알았는데, 24시에 마감이었다.


금요일쯤 되자 전기 기사분이 오셔서 전기의 맥을 짚어보고 가셨다. 프로페셔널한 그 분의 모습에 잠시 리스펙을 드렸는데, 다음 날에도 전기가 또 꺼졌다! 급한 대로 건물의 공용전기를 이용해서 쓰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공사는 한 달이 걸릴 거라나. 

 

공용 전기를 끌어다 쓰는 거니까 공짜로 맘껏 쓸 수 있는 거라며 아저씨는 무안한 듯 정말 아무 위안도 되지 않는 말을 계속 하셨다. 전기료는 둘째 치고 무엇보다 걱정인 건, 언젠가 또 갑자기 불이 꺼질 수 있다는 것. 촛불은 당분간 서랍 속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전기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이번에 정말 제대로 알았다. 

 

이 사건으로 내가 느낀 점은, 첫째, 룸메이트가 필요하다. 둘째, 혼자는 외롭다. 셋째, 혼자 집에만 있으면 안 된다. 넷째, 혼자 있다가 정전이 되면 매우 무서움으로 혼자 살면 안 된다. 다섯째, 가뜩이나 우울한 취준생은 무조건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 여섯째, 결국은 무지하게 외롭다는 얘기. 가뜩이나 힘겨운 취준 생활에 ‘외로움’을 깨달아버렸다. 큰일이다.

 

※필자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거둬갈 기업 관계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 

이상은 취업준비생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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