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짧은 말만 남긴 채 검찰청사로 들어간 박근혜 전 대통령. 13가지 혐의와 검찰 수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송구’, ‘성실하게 조사’ 등의 ‘뻔한’ 표현을 썼는데, 검찰의 심기를 건드리기보다 ‘피의자용 모범답안’을 언급하며 사실상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정치인’이 아니라 ‘민간인’ 신분에서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점, 정치의 영역으로 논란을 확산시키지 않으려 한다는 풀이를 내놓고 있다.
50걸음 가까이 걸어 서울중앙지검 중앙현관을 통해 검찰청사에 들어간 박근혜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은 1층 로비에서 대기 중이던 변호인단과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사실이 있는 10층으로 향했다.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검사장)이 13층 사무실에서 내려와 10층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맞이했는데, 노 차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영상녹화 조사 동의 여부를 물었고,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의사를 고려해 일반 조사실에서 수사를 진행했는데, ‘예우’를 해줬다는 풀이가 나온다.
법무부의 고위 관계자는 “민간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전직 대통령이지 않나”며 “전직 대통령에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예우 중 하나가 영상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 역시 “박 전 대통령은 현재 혐의를 다 부인하고 있지 않느냐”며 “영상 조사는 혐의를 자백하는 사람이 나중에 재판에 가서 말을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일종의 ‘보험’인데 박 전 대통령이 혐의를 부인하기 때문에 굳이 영상 조사를 할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호칭을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며 조사를 하고 있는데, 검찰은 10층 특수부 검사실을 박 전 대통령 대통령 조사에 활용하기 위해 살짝 ‘손’을 보기도 했다. 1001호 조사실에서는 박 전 대통령과 검사들이 책상에 마주 앉은 상태에서 조사가 진행됐는데,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 등뒤 1명, 바로 옆에 1명이 앉아 법률적인 조언을 했다. 바로 옆 1002호에는 응급침대 등이 있는 휴게실도 마련됐다.
하지만 전례를 봐도 이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때 베푼 ‘예의’는 대단한 예우는 아니라는 게 법조계 내 중론이다. 지난 2009년 4월 30일,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중수부장과 티타임을 가진 뒤 조사실로 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티타임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와 티타임 후 조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예우의 격이 낮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검사장급인 노승권 1차장이 조사실로 찾아가 티타임을 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박 전 대통령을 예우했기 때문에 ‘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검찰청 조사 때 검찰총장 대신 수사 실무 지휘자가 티타임을 하듯, 서울중앙지검 조사 때도 수사 실무를 지휘하는 검사장급 1차장검사가 티타임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영렬 지검장과 노승권 1차장의 사무실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점과 동선 등을 고려해 노승권 차장이 직접 조사실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도 한웅재 부장검사를 ‘검사님’이라고 호칭하고, 검찰 조사에 진술 거부권을 활용하지 않는 등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도중 진행된 백브리핑에서 “박 전 대통령이 역정을 낸 적도 없고 수사를 잘 받고 있다. (오후 3시 30분 기준) 현재 3분의 1 이상 조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준비했다’며 뻔한 얘기만 내놓은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는 전망이 이어졌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29자의 매우 짧은 코멘트로 메시지라고 할 것도 없지 않았느냐”며 “파면 후 자택으로 돌아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이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최순실 씨 혼자서 한 범행이라고 선을 그을 게 눈에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수사 변수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구속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찰은 정권이 바뀌면서 위기에 놓인 검찰 조직을 살리기 위해 권력을 뺏긴 박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며, “향후 검찰 조사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와 구속 이후 태도가 바뀜에 따라 수사 흐름과 속도가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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