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월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28일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 팀장 전원 사임과 전직 임원 예우 배제, 3월 6일 홍라희 홍라영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및 부관장 사퇴,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 18일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사퇴 등 ‘최순실-박근혜-이재용 게이트’를 관통하는 심상치 않은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 홍석현 사퇴, ‘황제’의 저격인가
최근 일부 언론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홍씨 집안과의 갈등설이 보도된 가운데, 홍석현 회장 사퇴가 발표되었으나 그 주변 상황이 매끄럽지 않다. 토요일 밤 시간에 사내 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 형식이다. 시간에 쫓겨 공개적으로 발표한 모양일 수 있다. JTBC의 시청율은 9%대로 KBS 9시 뉴스를 제외하고, MBC, SBS 시청률을 앞선다. 그러한 언론사의 사주가 사퇴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구심은 19일 일요일자 ‘중앙SUNDAY’ 홍석현 회장 인터뷰에서 모양새를 갖추어 적당히 거둬들이고 있다. 편집자는 기사 모두에서 8일 오후 2시간 30분 동안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16일 추가 질문이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인터뷰에서 홍 회장은 사퇴를 밝히고 있다.
인터뷰어인 기자들은 “올 들어 리셋코리아 활동에 몰두하면서 정치적 오해도 사고 있다”고 전제한 뒤, “독자들은 물론 우리 기자들도 궁금해 하고 있다. 확실한 입장을 어느 선까지 밝힐 수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홍석현 회장은 “거기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하고 있다. 중앙일보‧JTBC 회장직도 사퇴하고 경영에서 손을 뗄 생각이다. 열심히 고민을 해서 할 일을 한두 가지 할 일을 찾았다”고 말하고 있다. 16일만 하더라도 사퇴 결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식적으로 사퇴가 알려진 처음 시간은 18일 저녁 9시경이었다.
많은 언론에서는 홍석현 회장의 대선 출마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렇다면 유력한 보수 후보로 거명되던 홍 회장에 대해 사퇴 다음날쯤엔 환영 액션이 있었어야 하나 전혀 없다. 사퇴 후 정계 진출에 대한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홍 회장 주변에서는 대통령 출마 시 경선이 아닌 추대에 의한, 소위 아이젠하워 방식이 논의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보수 후보로 대통령 출마가 유력시되던 황교안 총리의 불출마 선언, 대통령의 파면으로 여당의 지위를 잃은 자유한국당은 고만고만한 대선 후보들의 1차 컷오프 발표 등 외부 인사 영입 방식의 추대에 의한 대통령 출마 분위기는 충분하다. 이러한 정황들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 홍라희 관장의 사퇴를 ‘이재용의 찍어내기’로 보도했듯이 홍 회장의 사퇴도 곧이곧대로 보이지 않는다.
# 홍라희 사퇴, 찍어내기 논란
이재용 부회장과 홍씨 집안의 갈등설은 ‘한겨레’의 연속 보도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3월 17일, 자사 홈페이지에 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한겨레신문이 3월 18일자에 게재한 ‘리움 홍라희 퇴진은 이재용의 찍어내기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전혀 근거 없는 허위입니다. 한겨레신문은 같은 내용을 온라인에는 ‘어머니 내친 이재용…삼성가 내홍 불거진 리움 앞날은?’이라는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게재했습니다. 삼성전자와 삼성문화재단은 사실무근인 내용을 기사화한 한겨레의 보도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합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3월 7일자 지면에서도 ‘홍라희 삼성미술관장 사퇴…일신상 이유 뭘까’ 제목의 기사에서 근거 없는 갈등설을 기초로 홍 관장과 이 부회장의 불화설이 제기된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전혀 사실무근인 설들을 기초로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관계마저 왜곡하는 보도행태를 중단하고 언론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줄 것을 촉구합니다.
한겨레의 두 번에 걸친 연속 보도 기자 중에는 미술 및 문화 담당 기자가 포함되어 있어 리움의 입장, 즉 홍라희 홍라영 자매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장인 삼성문화재단 소속이다. 홍라희 전 관장은 이건희 회장 체제에서 삼성문화재단 등기이사에서 배제돼 있었다. 리움의 소유 자산은 이건희-이재용 체제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구속 이후 이재용의 불안감
이건희 회장은 여전히 삼성그룹의 회장이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3.4%와 삼성생명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4%를 삼성물산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 구조는 불안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최순실 게이트 및 박근혜 파면(물론 헌재에서는 특검의 자료가 늦게 넘어와 합병 건은 반영하지 않았다)의 핵심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또는 유죄 판결 이후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 그 즉시 상속이 개시되고, 현행법상 배우자인 홍라희 전 관장이 삼성그룹의 최대 지배주주로 등장하게 된다. 40대 후반으로 들어섰고 경영전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모친의 이러한 포지셔닝이 달가울 리 없다.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없었다면 결과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태블릿PC 보도가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의 결정적인 ‘스모킹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 JTBC의 사주인 외삼촌 홍석현 회장 또한 달가울 리 없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이씨 가문의 유대감 균열” 우려에 대한 홍석현 회장의 답을 보자.
Q 홍라희 여사가 이 부회장 구속 후 홍 회장과 삼성의 실권을 쥘 것이란 보도도 나왔다.
A 확인해 봤더니 최순실이 그런 얘기한 건 사실이더라. 그런 사람이 대통령 옆에서 (국정 개입을) 했다는 게 슬픈 일이다. 사람 심리를 몰라서 그러는데 아들은 후계자이기 때문에 더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이건희 회장도 홍 여사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끔찍하다. 그런데 나는 왜 등장시켰는지, 유명세라고 봐야겠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누이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누이가 카톡 보냈는데 가슴이 찢어진다고 하더라. 그게 모성이다(중앙SUNDAY 3월 19일).
자신의 삼성그룹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 유명세로 치부하고 있다. 달리 무어라고 답하겠는가.
삼성의 알려진 미술품 컬렉션은 호암미술관, 리움 소장품들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유럽과 미국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리움이 관리하는 현대미술품 위주의 해외 컬렉션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건희 회장 유고 상황에서 리움 관장이라는 자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2008년 ‘삼성특검’으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났을 때 홍라희 씨도 관장직에서 같이 물러났다. 유고 상황이긴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여전히 삼성의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에 홍라희 관장이 물러났다. 언론에서 보도되듯이 자식이 구속되었기에 그냥 ‘참담해서’ 물러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지성 부회장, 사장이나 부사장급인 미래전략실의 7명 팀장들을 사퇴시켰다. 그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들도 사퇴시켰기 때문이다. 어쩌면 홍석현 회장은 이러한 이재용 부회장의 분노를 잠재우면서 정계 진출 쪽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하는지도 모른다.
# 홍석현-정운찬-반기문-이광재
최근 이명박(MB)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창당을 언급했다. 정 전 총리는 3월 15일, 공식 입장문에서 ‘동반성장의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과 함께 창당까지 고려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입당을 타진해 온 정 전 총리의 입장 변화가 경기고 후배이면서 평소 교류를 다져온 것으로 알려진 홍석현 회장과의 연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홍석현 회장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과의 연대도 모색할 듯하다. 반기문 전 총장은 후보 사퇴 후 재단을 출범시킨다. 반기문 전 총장이 홍석현 회장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다.
홍석현 회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은 2015년 12월 민간 싱크댕크인 ‘여시재’가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후 그가 등기이사로 참여한 게 알려지면서부터 회자되기 시작했다. 여시재의 자금은 홍석현 회장의 친구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출자했지만, 여시재의 주요 멤버들이 홍석현 회장의 경기고 선배인 이헌재, 홍석현 회장이 몇 개월 주미대사를 지낸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등의 면면으로 그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므로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홍석현 회장이 얘기한 또 다른 싱크탱크는 회장 사퇴 이후의 자신의 포지셔닝에 대한 명분으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선을 목전에 두고 싱크탱크를 만드는 건 그 실효성과 상관없이 어떤 방식으로든 대선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다. 정책을 만들고 특정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홍 회장이 참여정부 때 주미대사를 지냈고 남북대화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삼성가의 구성원이자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기업인이라는 점에서는 보수정당을 지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와 JTBC의 논조도 일관되지 않았다(‘미디어오늘’ 3월 19일)
그러나 그의 관심은 지리멸렬한 보수 쪽보다는 더불어민주당으로 기우는 것 같다. 유력대선 후보 문재인 의원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향후 이재용 부회장이 유죄를 받을시 사면 불가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인 2005년 삼성 엑스(X)파일 사건의 주연은 홍석현 회장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다. 문 의원과 안 지사는 노무현 정권의 실세였다.
홍석현 회장은 ‘리셋코리아’를 출범시키면서 촛불 민심을 언급했다. 홍 회장은 지난 1월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리셋코리아: 내가 바꾸는 대한민국’ 행사 환영사에서 “광화문 광장의 촛불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며 “어떻게 하면 촛불에서 확인된 민심이 하나로 모여 희망찬 나라가 다시 설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이후 홍 회장 및 중앙미디어네트워크는 태극기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중앙SUNDAY의 경우, 집회 규모면에서 촛불에 비해 훨씬 비중이 약했던 태극기 집회 시위 사진을 촛불 사진 상단에 배치한 것 등이다. 촛불 민심으로 향했던 그의 관심은, 발언의 뉘앙스가 바뀐다. 사퇴의 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몇 개월, 탄핵 정국을 지켜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광화문광장의 꺼지지 않는 촛불과 서울광장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며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깊은 고뇌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비록 발 디디고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그 속에 담긴 열망과 염원은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우리 사회는 오랜 터널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과 혼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생과 공멸의 갈림길, 그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저는 안타까움을 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략)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상처를 치유하는데 매진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와 정신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진정한 미디어그룹으로 또 한 번 도약할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홍석현 회장의 사내 이메일 3월 18일).
홍석현 회장이 대선 출마를 하든, 킹메이커가 되든, 그에게는 최고의 가치가 있다. 중앙일보와 JTBC의 세습적 경영체제 구축이다. 그의 아들 홍정도 사장의 세습 경영 성공 여부는 삼성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홍석현 회장은 당분간 자신의 세습경영 체제 구축을 위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심정택 ‘삼성의 몰락’ ‘이건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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