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 연출 나진환 “흥행 예상 못해, 9시간짜리로 재공연 하고파”

[비즈한국] 지난 3월 4일 막이 오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하루에 7시간 동안 펼쳐지는 연극으로 유명세를 탔다(관련기사 [왱알앵알] 7시간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관람기). 그 자체로 위대한 도전이라 여겨졌던 공연이 흥행에도 성공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공연은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다 오는 19일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난 14일 ‘비즈한국’은 화제의 공연을 연출한 나진환 연출에게 직접 공연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모든 게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왜 7시간에 걸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기획했나.

“개인적으로 인간의 내면 심리를 잘 통찰하고 분석한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좋아한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의 역작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인간이 행복해져야겠다’는 마지막 대사처럼 이 작품을 통해 혼란의 시기에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성찰해주는 작품이라 고르게 됐다.”

―언제부터 작품을 준비했나.

“원래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를 기획했다. ‘악령’은 3시간 45분, ‘죄와 벌’은 3시간 30분을 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3시간에 녹이려고 하니까 답이 없더라. 그때 의료사고로 거의 죽을 뻔해 세 달 정도 입원하면서 결심했다. 아프거나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니 현실보다 본질을 보게 됐다. ‘내 연극의 본질이 뭐냐’ 이런 생각에 빠졌다. 본질을 얘기하려면 7시간도 부족하다. 말하자면 미친 짓이고, 연극은 미친 짓을 해야 된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거다.”

―시간 자체에 부담감을 느끼는 관객도 많을 것 같다.

“7시간이라는 게 만만치 않다. 이 작품을 올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2~3시간 정도로 줄이면 이유가 없더라. 줄여 놓으면 존속 살인으로 끝이다.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 오만함, 갈등,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쟁이 따라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걸려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관객보다 배우들이 더 힘들 것 같다. 분량을 본 배우들은 어떤 반응이었나. 

“도전을 좋아하는 배우들이 이번 연극에 모였다. 모이기 힘든 배우들이다. 52세 나이에 20대 드미트리 역을 소화한 김태훈 배우는 세종대 교수로 학회에서 만나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고 러시아 문학을 사랑해 함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을 뿐 분량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배우들이 공연도 많은데다, 연습 한 번 지나가면 4~5일 후에나 연습 할 수가 있었고 7시간 분량이라 연습도 하루에 간신히 끝나 연습을 서로 먼저 하겠다고 하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배우들이 중간에 대사를 잊을 수도 있다는 고민은 하지 않았나.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동을 만나면 아동극을 해야 한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대중과 만나고 싶었다. 어려운 대사임에도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이 이해하리라 믿었다. 그러니까 배우들의 연습량이 엄청나게 필요하다.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 암기가 아니라 다 이해를 해야 된다. 엄청난 싸움이었을 것이다. 특히 25분을 한 번에 쏟아 내야하는 대심문관은 각색하는데 석 달이 걸렸다. 정동환 선생과 같이 호흡을 맞춰가며 연습 내내 대사를 수정했다. 정 선생도 고생을 많이 하셨다. 주변에서도 반신반의했다.” 

―말씀하신대로 52년차 배우 정동환 씨의 도전이 화제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실험에 도전할 수 있는 연륜 있는 배우를 찾았다. 그러다 정동환 선생이 평소 어려운 작품도 많이 보고 새로운 작품에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봤다. 그분을 염두에 두고 각색을 했다. 감사하게도 정 선생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 공연이 창작산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1차 서류심사, 2차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3차에 20분 동안 시범공연을 해야 한다. 붙을지 떨어질지도 모른다. 붙으면 당연한 거고, 떨어지면 흠이 된다. 뭐가 아쉬워서 그 분 같은 명성을 가진 대배우가 지하 연습실에서 시범공연을 하겠나. 그럼에도 흔쾌히 해주셨다.”

―정동환 씨와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작품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그것이 그 분을 여태까지 있게 했구나 싶다. 끊임없이 작품을 연구하고 작품에 대해 대화를 했다. 내가 힘들어서 쉬려고 하면 연습을 더 하겠다고 했다. 정 선생도 석 달 동안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대사량이 엄청나고 어려우니까 잘 안 외워져 스스로 짜증도 냈다.”

―9~10시간에서 2~3시간 분량을 덜어냈다고 했는데 그 분량은 무엇인가.

“2부 쪽 법정 드라마에서 재판관 장면이 있다. 법정 장면에서 검사와 변호사와의 싸움이 템포도 빠르고 흥미롭다. 천국의 일화 얘기도 재밌는 게 많다. 그런 모습을 더 넣어서 어느 주말에 1시부터 시작해서 9시간 버전으로 해보고 싶다.”

―1, 2부를 동시에 하는 주말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런 분위기라면 9시간 연극도 곧 가능하지 않겠나.

“가능은 하다. 문제는 제작 여건이다. 이번에는 창작산실에서 지원을 받았음에도 예산이 많이 부족했다. 9시간으로 만든다면 지금 배우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 연습실도 더 좋은 곳에서 해야 한다. 더 나은 제작 여건이 필요하다. 어디서 지원받나가 고민이다.”

―배우 이순재 씨도 왔다. 평은 어땠나.

“이순재 선생이 정 선생과도 잘 아는 사이기도 해서 보러 오겠다고 했다. 끝나고 내 손을 꼭 잡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 배우들도 매우 좋았고 작품도 좋았다’고 말했다. 재미도 필요하지만 그게 주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본질과 부수적인 것들이 뒤바뀌면 안 된다. 연극이 갖고 있는 문학적 두께, 인간 영혼을 깨우는 힘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도전만으로도 대단한데 흥행도 잡았다. 예상했나.

“흥행 여부를 떠나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못 했다. 창작산실에서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우리의 뜻에 움직여 주는 관객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관객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너무 길다거나 정제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완벽한 공연은 없다.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재공연이 필요하다. 반드시 재공연이 이뤄져야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7시간이라는 긴 호흡을 통해 마지막 화해 장면이 관객에 전해졌다면 성공했다고 본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예매한 관객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마음을 비우고 졸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오라. 기차타고 여행 가듯이, 편안히 풍경 보듯이 보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무 생각 없이 떠나보면 생각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지 않나. 편히 생각하면 된다. 또한 연극은 ‘나’를 돌아보기 위해 본다. 나를 만나기에 적합한 몸 상태였으면 더 좋겠다.”

―7시간 중 주목할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는 다 상처투성이 영혼을 가진 아픈 존재다. 마지막 정 선생님이 유언처럼 하는 말, 마지막 에필로그 장면을 꼭 주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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