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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꽃은 필 때를 어떻게 알까?

추운 겨울을 견뎌야 꽃이 핀다, 우리도 겨울을 이겨내고 민주주의 꽃을 피웠다

2017.03.15(Wed) 10:37:55

[비즈한국] 2017년 3월 15일은 봄일까? 봄이 아닐까? 입춘(立春)이 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마 안 계실 거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님은 3월 21일 춘분(春分)이 되면 봄이 시작했다면서 맥주 한 잔씩 사주시곤 했다. 그런데 대개 그날은 무지 추웠다. 봄은 개뿔…. 박근혜 씨가 탄핵되었으니 자신의 마음에 봄이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같은 이유로 빙하기를 겪고 있는 분들도 계시다. 내 기준은 간단하다. 꽃이 피었으면 봄이고 꽃이 안 피었으면 아직 아니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 벚꽃, 목련 따위가 흐드러지게 피면 봄이고 아니면 아직 겨울인 것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입춘에는 길운을 기원하며 이런 문구를 대문에 붙인다. 사진=비즈한국DB


꽃을 봄의 기준으로 삼게 된 데는 서대문에서의 직장 생활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내가 5년간 일했던 서대문의 홍제천과 안산(鞍山)에서는 해마다 벚꽃축제가 열린다. 아름다운 벚꽃 아래를 산책하고 또 초대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도시락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꽃 아래를 걷노라면 눈이 밝아지고 마음도 넓어져서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다. 

 

그런데 정작 이 벚꽃축제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은 노심초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춘객이 몰려들 때 생기는 교통과 안전문제 때문이 아니다. 이 정도는 공무원들이 깔끔하게 처리한다. (지난 20주 동안 주말마다 촛불시위가 열렸지만 교통난과 안전사고 하나 없었다. 서울시 공무원 만세!)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공무원이라도 자신의 지혜와 노력으로 해결 못 하는 게 있다. 바로 꽃이 피는 시기와 메인 행사날의 날씨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서대문 홍제천과 안산의 벚꽃은 매년 4월 첫째 월요일에 피기 시작해서 토요일에 만개한다”라고 법에 나와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것은 국회도 못 하고 헌법재판소도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다. 또 “4월 첫째 주에는 벚꽃이 필 예정이니 비가 내리지 않고 청명한 날씨를 유지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라고 기상청에 협조공문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

 

단풍이 북쪽부터 지기 시작해서 점차 남쪽으로 번져가는 것과 반대로 꽃소식은 당연히 남쪽으로부터 올라온다. 올해 벚꽃은 제주에서는 3월 21일에 피고, 부산 3월 26일, 대전 4월 2일 그리고 서울은 4월 6일에 핀다. 한편 춘천에서는 4월 9일이나 돼야 벚꽃이 피기 시작하니 때를 놓쳐서 벚꽃을 못 봤다는 말은 하면 안 된다. 제주에서 춘천까지 무려 3주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벚꽃의 절정 시기는 꽃이 피기 시작한 후 일주일 후다. 그러니 서울에서는 4월 13일 정도에 만개(滿開)한다고 보면 된다.

 

춘래불사춘? 탄핵 전에는 봄이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만간 꽃들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사진-비즈한국DB


그런데 궁금하다. 꽃은 어떻게 자기가 필 시기를 아는가? 어떤 꽃은 봄에 피고, 어떤 꽃은 가을에 핀다. 꽃마다 계절이 바뀌어 최적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꽃을 피우는 정교한 메커니즘이 있는 게 분명하다. 과학자들은 꽃을 관찰했다. 낮의 길이에 따라 꽃이 피는 게 결정되었다. 낮의 길이가 길어질 때 피는 장일식물이 있고, 낮의 길이가 짧을 때 피는 단일식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낮의 길이와 상관없는 꽃들도 있다.)

 

그렇다면 개나리와 진달래는 장일식물일까, 단일식물일까? 제주시에서는 개나리는 3월 13일, 진달래는 3월 16일에 개화할 예정이다. 이때는 아직 춘분 전으로 밤의 길이가 더 길 때다. 중요한 것은 낮의 길이가 기냐, 밤의 길이가 기냐가 아니다. 그 변화의 추이다. 봄에 피든 여름이나 겨울에 피든 낮 시간이 12시간 이하로 짧은 계절을 경험한 다음에야 꽃을 피운다. 잠을 길게 자야 한다는 뜻인데, 토막잠이 아니라 일정 시간 이상 암흑이 지속되어야 한다.

 

꽃을 피우는 데 햇빛만큼이나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온도다. 기온이 따뜻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봄꽃이 피려면 오랜 기간 추위를 제대로 견뎌야만 한다. 겨울에 얼어 죽을까봐 걱정이 돼서 방 안에 들여다 놓은 화분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정작 발코니나 장독대에 방치해 놓은 화분의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을 다들 경험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일식물과 장일식물을 접붙이면 어떻게 될까? 100년 전 과학자들도 같은 궁금증을 가졌다. 단일식물 몇 그루를 꽃을 피우지 못하게 낮을 길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꽃이 핀 다른 그루와 접붙였다. 그러자 식물 전체에 꽃이 폈다. 이것은 꽃이 핀 식물에 있던 개화호르몬이 접붙인 꽃을 피우지 못한 부분으로 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봄에 일찍 피는 꽃을 떠올려 보시라. 개나리, 진달래, 생강나무꽃, 벚꽃….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목련을 제외하면 다 꽃들이 자잘하다. 자잘하기 때문에 일찍 피는 것이다. 큰 꽃과 같이 피면 어떻게 되겠는가? 벌과 나비는 큼직하고 화려한 꽃으로 가지 작고 보잘것없는 꽃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크고 멋진 꽃이 피기 전에 펴야 수정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또 이런 꽃들은 같은 이유로 무리지어 핀다. 함께 펴야 멀리서도 잘 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많은 나무들 가운데서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를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은 없다.

 

촛불이 꽃이다. 우리는 촛불로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바야흐로 진짜 봄이다. 사진=고성준 기자


바야흐로 봄이다. 아마 오늘쯤 제주도에서는 개나리가 폈다는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봄꽃은 무더기로 펴야 한다. 봄꽃이 피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과 추운 겨울을 나야 했다. 그렇다. 지난겨울을 우리는 이겨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민중이다. 우리의 개화호르몬을 꽃피우지 못하는 그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 그래야 봄이다.

 

우리나라 대선은 아주 추울 때 치러졌다. 그런데 탄핵 사태로 보궐선거를 봄에 치르게 됐다. 한때 4월 26일에 치를 것이라고 예상할 때는 ‘벚꽃 대선’이라며 좋아했다. 아마도 대통령 선거는 5월 9일에 치러질 것 같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미 대선’이라고 한다. 미안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장미는 6월이 되어야 만개한다. 5월 대선은 ‘철쭉 대선’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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