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51.6%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지 않아 국민의 신임을 잃었으며 이로 인해 탄핵당했다.
탄핵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로 대표되는 1960~1970년대 권위주의 세력의 몰락을 의미하며, 시민이 대통령을 몰아낸 정치적 승리를 의미한다. 삼성, CJ, SK 등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해 기회의 평등을 해친 자에 대한 응징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대표하는 정치세력과 경제세력의 유착에 대한 응징이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을 만들고, 책임지지 않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파면이다. 시대 교체를 바라는 선고다.
지난 겨울, 광장은 촛불로 가득했다. 탄핵을 이룬 지금, 광장은 정치적 진공상태다. 구시대를 끝낸 촛불은 새로운 시대를 논한다. 탄핵과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광장은 벚꽃 대선 뒤에 올 새 시대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담론이,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담론이 광장을 채워야 할까.
비슷한 사례가 하나 있다. 2012년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이다. 당시 올랑드는 자신에 대한 기대와 지지보다는 사르코지를 등진 많은 유권자가 극우인 마른 르펜을 지지해, 보수 유권자가 분열되며 어부지리 승리를 얻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5년 뒤 올랑드는 마른 르펜이라는 극우 대통령 후보를 낳았다. 수많은 경제정책이 실패했으며, 난민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실업문제 역시 해결하지 못했다.
25세 미만 청년실업률은 25%에 달하며, 신규 일자리 중 80%가량이 계약기간 1달도 안 되는 단기직이었다. 분노한 많은 청년은 마른 르펜이라는 극우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실제로, 마른 르펜 지지자의 대부분은 실업문제가 심각한 구 공업지역의 유권자들이다.
마른 르펜은 사르코지에 대한 분노를 새 시대의 희망으로 바꾸지 못한 올랑드의 사생아다. 박근혜 탄핵 이후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담지 못하면 한국 역시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벚꽃대선이 불온한 겨울로, 겨울공화국으로 바뀌는 건 순간이다.
그렇다면, 진공 상태의 광장에 누구의 목소리를 담아야 할까. 주변부, 모서리, 외곽이라 불리는 곳에 산재한 수많은 빈곤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대학진학률 80%에 육박한다는 기사 뒤에 숨겨진 나머지 20%, 비서울 지역, 대기업과 공기업 및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아니라 공장과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청년, 시험을 준비할 비용이 없어 생계에 뛰어드는 청년들, 매년 학업을 중단하는 6만여 명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대개 보이지 않는다. 일하느라 바빠 광화문에 가지 못하고, 거리가 멀어 서울에 가지 못하고, 비용이 없어 노량진에서의 시험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들의 삶은 비참하다. 청년 세 명 중 한 명은 일해도 빈곤하거나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청년시기 빈곤이 생애 전체 빈곤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수치는 매우 불온하다.
불온한 겨울을 피하고자, 이번 탄핵은 박근혜 개인에 대한 탄핵이 아니어야 한다. 탄핵은 기득권이 만든 시대에 대한 탄핵이어야 한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가져가고, 노인 10명 중 7명이 빈곤하고, 청년 10명 중 3명이 저임금 근로자인 시대에 대한 탄핵이어야 한다.
새 시대를 담지 못하는 광장은 불온한 광장이 될 수밖에 없다. 8년의 민주당 집권이 트럼프를 낳았고, 노동당 정부 이후 대처가 당선됐다. 박근혜가 없는 세상에 새로운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희망을 담기 위해, 광장에 수많은 주변부의 목소리를 담자. 박근혜라는 기표 뒤에 구시대라는 기의마저 걷어내 새시대를 짓자.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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