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파면)으로 재계는 한 숨 돌리는 분위기다. 주식·채권 등의 시장참여자들은 악재보다 불확실성을 더 싫어한다. 악재는 털어버리고 바닥에서 새로 시작하면 되지만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재계는 보수정부의 눈치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란 산을 넘어야 한다. 탄핵 인용 후 60일 이내 대통령이 선출되기 때문이다. 경제계 입장에서 ‘60일 이내’라는 점은 비교적 다행인 부분이다. 그러나 대선 결과에 따라 또 한 번의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①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확대될까
대통령 탄핵 이후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자연인 박근혜에 대한 수사 여부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를 거부했다. 그러나 자연인으로서는 체포영장을 통한 구속수사도 가능하다. 이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었으므로 구속에 대한 법리적 요건은 충분하다.
재계는 박 전 대통령 수사가 재개될 경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그룹 전체로 수사가 확대될지 주시하고 있다. 그간 검찰과 특검은 수사 자원과 기간의 제한 등으로 삼성그룹에 화력을 집중해왔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주요 수사대상인 경우는 모든 범죄사실에 대해 조사해야 하므로 수사 대상이 주요 그룹으로 확대될 수 있다.
재계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겠지만,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도 이재용 부회장이 특검 수사에서 겪은 과정을 동일하게 반복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탄핵 직후 대선에 돌입하는 만큼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가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 본격적으로 수사가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과 대선에서 진보정당의 집권 시 ‘보복 논란’을 우려해 수사가 유야무야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애초 대통령 탄핵에 미온적이던 정치권을 움직인 것이 촛불민심인 만큼, ‘박근혜 구속수사’라는 요구가 거세진다면 재계 전체로 수사가 확대될 수도 있다.
② ‘반재벌법’ 통과 가능성 높아지나
소위 김영란법 시행 이후 청렴도에 대한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정권의 요구를 거부하면 그룹이 망한다’는 논리가 통할 수 있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는 재벌에 대한 공동책임론도 거세다.
올해 들어 야당을 중심으로 ‘반재벌법’ 발의가 쏟아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임’ ‘전자투표제 의무화’ ‘집중투표제’ 등의 도입을 담은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에서 반박 보고서를 직접 내는 등 반발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그 중 인적분할 시 ‘자사주의 마법’을 막는 다수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순환출자 해소를 과제로 두고 있는 삼성, 현대차, 롯데 등의 그룹은 지주사 전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자사주를 통해 비교적 쉽게 오너가의 지분율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자사주의 마법’이 없다면 자사주만큼의 지분을 직접 매입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여야가 합의하지 않은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지만, 이 역시 정치적 상황과 촛불민심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장담할 수 없다.
③ 진보 정부 출범 시 기업 규제 강화될까
보수 정권 하에서의 기업활동은 생산성 향상, 수출경쟁력 강화 등이 목적이었으나, 진보 정권 아래에의 기업활동은 노동자 권익 강화, 기업이익의 민주적 배분 등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크다. 그간의 정부 정책이 고환율, 자유무역, 규제완화에 중점을 뒀다면 진보 정부가 출범한다면 적정 환율, 국내산업 보호, 규제강화로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이 경우 기업들로서는 윤리경영 강화, 오너가의 경영참여 제한, 기업 내부거래 제한, 주주 배당 확대 등 챙겨야 할 것이 많아진다. 국내 주요 상장기업의 10% 이상 대주주가 된 국민연금을 통한 직접적 압박도 가능한 만큼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커질 것이다.
④ 한국의 투명성 높일 계기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때 재벌총수들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 출연에 대해 “정권이 요구하면 거부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이런 관행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사정기관을 재력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한 처벌도 엄격해졌다. 편법으로 재벌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비난의 수위도 높아졌다.
재계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편법보다는 실력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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