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힙합은 논란이 많은 음악 장르 중 하나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혁신이 시작되어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흑인 사회에서 시작된 만큼 미국 흑인사회의 맥락을 알지 못하면 오해하기 쉬운 장르기도 하지요.
‘힙합은 사회를 비판한다.’
‘힙합은 여성을 비하한다.’
‘힙합은 거친 말을 쓴다.’
‘힙합은 노래하면 안 된다.’
힙합에 대한 다양한 고정관념들입니다. 최근 가장 성공한 힙합 뮤지션 드레이크는 이런 고정관념을 부수며 성공했습니다. 가장 힙합답지 않은 랩 스타라고 할까요.
지난해 가장 성공했던 싱글 중 하나인 드레이크의 ‘핫라인 블링(Hotline Bling)’. 애매한 관계에 놓인 여성에 대한 감성적인 가사. 멜로디컬한 랩 등 드레이크 음악의 특징이 잘 나타났다. 드레이크의 어설픈 춤사위는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기도 했다.
드레이크의 음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힙합과 아주 다릅니다. 힙합 치고 감성적입니다. 멜로디가 강합니다. 거친 욕설이 나오기는 하지만 흑인 갱스터, 길거리 느낌이 크게 들지는 않습니다. 한국 발라드가 연상되는 감성이 나오기도 합니다.
드레이크의 음악에 대중은 환호했습니다. 그는 30세의 나이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비틀스보다 많은 곡을 올렸습니다. 2015년 3월 빌보드 핫 100 차트에 14개 곡을 동시에 올려 비틀스와 함께 ‘핫 100에 가장 많은 곡을 동시에 올린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차트 성적을 통해 보이는 임팩트와 꾸준함에서 비틀스와 비견할 수 있는 엄청난 인기입니다.
SNL의 핫라인 블링 패러디 연상.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될 만큼 드레이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오늘은 드레이크가 부순 힙합의 4가지의 고정관념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힙합의 현재를 상징하는 최고의 랩 스타 드레이크. 그의 힙합은 어떤 모습일까요?
힙합은 남성적이다.
힙합 하면 마초적인 느낌이 떠오릅니다. 힙합은 ‘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힙합 정신’이 거칠고 남성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만 해도 가요 감성과 결합한 랩 노래를 ‘발라드 랩’이라고 격하하는 힙합 팬들이 많지요.
신인 시절 믹스테잎에 수록되며 드레이크를 대중에게 알린 곡 ‘베스트 아이 에버 해드(Best I ever had)’. 드레이크의 상징인 감성적인 랩과 로맨틱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 곡은 힙합 팬들 사이에서 ‘드레이크의 계집애같은 랩은 힙합이 아니다’라는 류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드레이크는 다릅니다. 그의 음악에는 감성이 가득합니다. 여성 취향의 부드러운 음악이 많습니다. 로맨틱한 감정뿐만 아니라 이별을 그리워하는 센티멘털한 감성까지 건드리는 음악을 만들지요. 힙합에 잘 활용하지 않는 감성입니다.
드레이크의 곡 ‘마빈스 룸(Marvins Room)’. 헤어진 애인에게 미련이 남아 전화하는 자신의 ‘찌질한’ 감성을 담았다. 한국 가요 발라드에서 흔히 활용되는 감정이지만 마초적인 힙합에서 이런 감성이 등장한다는 게 새롭다. 힙합은 ‘너 따위 필요 없어’ 식의 감성을 강조하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힙합에는 노래가 없다.
힙합은 보컬에 멜로디를 거세하고 리듬을 극적으로 강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멜로디가 강한 훅을 사용하는 건 힙합의 매력보다는 다른 매력을 활용한다는 이유로 ‘힙합답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 적도 많지요. 보컬 훅이 있으면 진실하지 못하고 대중과 타협한 힙합이라는 겁니다.
드레이크가 리하나와 함께 발표한 ‘테이크 케어(Take Care)’. 인디 밴드 the xx 출신의 Jamie XX가 만든 감성적인 인디 일렉트로닉 비트가 인상적인 댄스 음악이다.
드레이크는 적극적으로 멜로디를 사용합니다. 심지어 노래만으로 이루어진 곡도 많습니다. 한술 더 떠 힙합 외에 다른 음악을 주력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일렉트로닉 댄스부터 알앤비, 심지어 레게까지 말이죠. 그에게 ‘힙합의 순수성’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드레이크의 곡 ‘홀드 온 위어 고잉 홈(Hold On, We’re Going Home)’. 랩은 전혀 없다. 한없이 부드러운 알앤비 곡이다.
힙합은 흑인 하층민의 음악이며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있다.
힙합 음악이라고 하면 거친 뒷골목이 떠오릅니다. 마약과 총이 난무한 갱스터도 생각나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투팍, 우탱 클랜, 제이지 등의 힙합 아이콘들은 슬럼가 출신이었고, 슬럼가를 깊게 다룬 음악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래퍼는 고등학교 중퇴자에 마약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갱스터의 어두움을 비장하게 다루는 것이 힙합의 멋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지요.
드레이크의 ‘스타티드 프럼 더 바텀(Started From The Bottom)’. 자신이 힙합 세계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자수성가, 크루, 자기증명 등 힙합의 에너지가 느껴지지만 뒷골목의 느낌은 아니다. 그는 중산층 출신이기 때문이다.
드레이크는 달랐습니다. 그는 캐나다 출신입니다. 어머니는 좋은 교육을 받은 유태계 백인입니다. 심지어 ‘데그러시: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Degrassi: The Next Generation)’라는 하이틴 드라마에서 배우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요. 본인은 힙합 특유에 스웩(SWAG)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뒷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지는 않습니다. 드레이크 자신이 그런 세계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드레이크의 곡 ‘헤드라인즈(Headlines)’. 자기 증명 서사와 남들의 의견보다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전통적인 힙합적 태도를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표출한다.
대신 그는 ‘배우 출신이었던 자신이 힙합 실력을 증명하는’ 모두가 알고 있는 개인사를 다룹니다. 감옥에 간 친구, 죽음을 맞은 크루 멤버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던 여타 래퍼들의 음악에 비해서는 ‘범생이 힙합’의 느낌이 들지요.
힙합은 자신의 진심을 담은 가사를 직접 써야 한다.
드레이크를 공격하는 래퍼들의 단골 메뉴는 ‘그가 가사를 직접 쓰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대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요. 이런 공격을 받을 때마다 그는 맞대응 디스곡을 냈습니다. 강렬한 가사와 완성도로 힙합 아티스트 드레이크를 증명했습니다.
래퍼 믹 밀(Meek Mill)이 자신이 ‘가사를 대필가에게 맡기는 가짜’라고 공격하자 낸 대응곡 ‘백 투 백(Bakc To Back)’. 훌륭한 랩 퀄리티로 드레이크의 래퍼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비공식 디스 곡으로는 최초로 그래미에서 ‘최고의 랩 퍼포먼스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드레이크에게 가사 쓰기를 도와주는 고스트라이터들이 있음은 사실로 보입니다. 팬들은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없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드레이크의 랩 테크닉과 가사는 훌륭합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걸 리딩하는 것도 재능으로 볼 수 있겠지요.
드레이크 이전에도 암암리에 대필 작가, 혹은 서로의 랩을 고쳐주는 관행은 있었습니다. 대중음악에서 유명 작곡가들을 뒤에서 돕는 작곡가 그룹이 있다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진심을 담은 가사’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힙합에서조차 그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새로운 흐름을 상징하는 게 바로 드레이크입니다.
드레이크의 ‘에너지(Energy)’. 2015년에 기습 발매한 믹스테입에 발매되었다. 강렬한 가사와 음악을 담은 이 믹스테잎을 통해 드레이크는 자신이 부드러운 곡을 잘 만드는 음악가뿐만 아니라 강력한 ‘힙합 뮤지션’도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드레이크가 이런 조류를 처음 시작한 건 아닙니다. 부드러운 음악은 베테랑 래퍼 커먼(Common)이 예전에 시도했습니다. 더 직접적으로는 카니에 웨스트가 우울한 감성과 ‘노래하는 래퍼’, ‘모범생 래퍼’의 이미지를 보여줬지요. 대필작가 논란도 드레이크 이전에 래퍼끼리 가사 수정이 있어왔습니다. 이전부터 있어왔던 힙합의 큰 변화의 흐름 중 하나일 뿐이지요.
드레이크의 ‘파인드 유어 러브(Find your love)’. 힙합계의 트렌드세터이자 드레이크 음악의 원형을 미리 제시했던 카니예 웨스트가 드레이크를 위해 준 곡이다. 카니예 웨스트 특유에 동양적 느낌의 우울함이 잘 살아있다.
그렇다고 드레이크가 유행을 잘 탄 래퍼만은 아닙니다. 그가 새로운 힙합의 상징이 된 건 재능 덕분이지요. 그는 누구보다 트렌드를 잘 잡습니다. 일렉트로니카부터 트랩 뮤직, 레게까지 수많은 장르를 활용하면서 유행을 따라가고 또 선도합니다.
또한 그는 다재다능합니다. 상당히 매끈한 랩 테크닉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곡을 선별하는 음악성도 훌륭합니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후렴구를 만드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마지막으로 그는 성실합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는 게 관례인 팝 음악계에서 드레이크는 엄청난 투어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1~2년에 하나씩 앨범 단위 결과물을 만듭니다. 작업물의 양 자체가 그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미넴, 릴 웨인, 카니예 웨스트 등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스타와 함께한 드레이크의 ‘포에버(Forever)’. 드레이크는 결국 좋든 싫든 2010년대 힙합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드레이크는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배우 출신, 대필작가 고용, 노래로 가득한, 감성적 힙합 음악이 팬들과 래퍼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겠지요. 수많은 래퍼가 드레이크를 디스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거친 힙합곡으로 대응해왔지요. 그의 음악을 비판하는 이들은 ‘과거 좋은 시절의 진실한 힙합’을 그리워하는 이들입니다.
어쩌면 그 불편한 느낌이 바로 혁신일지도 모르지요. 힙합도 록과 재즈가 그랬듯 다른 장르와, 새로운 감성과 결합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힙합과 많이 다른 힙합의 현재를 상징하는 랩 스타. 드레이크였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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