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감자(가지과, Wild potato)
[비즈한국] 안데스 산맥의 고개를 넘어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의 길에서 만난 야생감자다. 3박 4일의 여정 중에서 가장 힘이 든다는 ‘죽은 여인의 고개(dead women's pass)’, ‘마(魔)의 구간’이라고도 한다. 해발 4,215m의 이 고개를 넘어 바로 내려가는 길옆에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은 우리가 흔히 보는 재배감자와 비슷했다. 그러나 잎과 줄기의 형태가 많이 달라 보였다.
해발 3,000m 이상의 안데스산맥 고원에 자란다는 감자의 원조를 만난 것이다. 이 야생감자가 페루에서 스페인을 거쳐 유럽에 전파되어 전 세계에 보급되었다. 그 후 감자는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 지대한 공을 세운 작물이 되었다. 현재 옥수수, 밀, 쌀에 이어 세계 4대 식량자원이 바로 감자다.
우리나라에 감자가 들어온 것은 조선 순조 때(1824년) 청나라 만주 지방에서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감자라는 우리말의 어원도 ‘북방에서 온 고구마’라는 뜻의 북방감저(北方甘藷)에서 유래한다. 대부분 사람이 감자는 중국이 원산지이려니 생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자의 역사는 남미의 안데스고원에서 시작한다. 남아메리카 토착민 사이에서 이미 2000년여 전부터 오랫동안 재배됐는데 잉카 문명을 지탱해 온 것이 바로 ‘감자’와 ‘옥수수’라고 한다.
1532년 금을 찾아 신세계로 진출한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페루에서 감자와 처음 대면하게 된다. 그 후 1570년경 스페인 정복자들이 배 위에서 먹을 식량으로 감자를 가져가면서 처음으로 유럽에 전해졌고 다시 인도를 거쳐 중국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감자의 영명(英名)인 포테이토(potato)의 어원도 감자의 원산지인 페루에 연유한다고 한다. 고대 페루에서는 감자를 파파(papa)라고 불렀다. 감자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파파가 파타타(patata)로 변형되었다. 이름이 파타타로 바뀌게 된 것은 유럽인들이 캐러비안 지역에서 가져간 바타타(batata)라고 부르던 고구마와 감자가 비슷하여 이를 파타타라고 불렀다. 이 파타타가 지금의 포테이토(potato)란 이름으로 정착된 것이다.
감자는 전 세계적으로 수세기 동안의 선택과 개량 번식 과정을 거치면서 주요 작물로서 다루어져 왔다. 현재는 수천 종류의 감자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안데스산맥의 고지대에서 자란 야생감자의 직계 후손이다. 유럽에 전파된 감자가 인도, 중국으로 전해졌고 영국에서 건너간 청교도에 의하여 미국에서도 1700년경에 재배하기 시작하여 전 세계의 식량자원이 된 것이다. 유럽의 19세기 인구 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감자라고 하며 현재 아프리카에서도 중요한 식량자원의 하나이다.
인류를 기아와 궁핍으로부터 구한 감자의 원조가 바로 ‘잉카의 길’에서 만난 야생감자다. 이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야생감자를 현지에서 만나니 그 의미가 더욱 돋보였다. 물론 야생감자는 현재의 재배감자보다 크기도 훨씬 작고 모양과 색깔도 달랐으며 맛도 별로여서 당시에는 환대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전 세계적 식량자원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세월에 걸친 꾸준한 연구와 개량, 재배법의 발전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현재는 주요한 식량자원으로서 인류를 먹여 살리는, 없어서는 안 될 작물이 되었다. 접근조차 쉽지 않은 높은 산의 돌 틈새에 자라고 있는 하찮아 보이는 야생감자가 새삼 귀하게 느껴졌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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