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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PC 왕조’ HP의 재도약 승부수

무리한 사업 확대보다 안정적 성장 기조…신제품 디자인 호평 이어져

2017.03.02(Thu) 16:46:46

[비즈한국] 분야를 막론하고 1등은 두 번의 시점에서 뉴스가 된다. 1등을 차지했을 때와, 1등에서 밀려났을 때. 지난 2012년 HP가 레노버에게 전 세계 PC시장 점유율 1등을 내줬을 때 전 세계 언론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PC 분야에 종주국이 있다면 단연코 미국이다. 애플을 시작으로 IBM, HP, 델 등 내로라하는 PC 공룡들이 즐비한 미국이 중국에게 1위 자리를 뺏긴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면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도 아주 이해 못할 현상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PC 시대의 종말을 고하며 아이패드를 발표했을 때, PC 시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별로 아프지 않은 한 방이었다. 성장률이 예전같지 않았을 뿐 여전히 PC 시장은 건재하다.

 

HP가 이러한 사실을 미리 예견했다면 어땠을까. 스마트폰 혁명이 몰아치는 순간 HP는 실수만 거듭했다. 팜을 12억 달러(1조 3700억 원)에 인수해놓고 스마트폰을 만들다 말더니, 이를 만회하기 위해 110억 달러(12조 5620억 원)에 인수한 오토노미 역시 알고 보니 분식회계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날아간 기업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PC 사업에 매진했더라면, 수익이 많이 나는 프린터 사업과 기업의 신뢰를 받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사업을 더욱 강화했더라면…, HP 위상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HP 엘리트 X360.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HP 노트북 디자인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기업용 제품은 더욱 그랬다. 사진=HP 제공

 

# “저희 장사 계속 하고 있습니다”

 

HP코리아가 지난 2일 기업용 PC 신제품 4종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 행사를 개최했다. 거의 1년만이다. 물론 기자간담회 횟수가 기업의 위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달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행사를 개최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너무 뜸했다. 자연스럽게 HP에 대한 궁금함이 커질 수밖에 없다.

 

김대환 HP코리아 대표 역시 행사 환영사 서두에 “누가 HP가 장사 접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여전히 장사 잘 하고 있다”며 머쓱함을 숨기지 못했다.

 

이날 발표된 제품은 HP 엘리트북 X360 노트북을 비롯해 프로X2 태블릿, 엘리트 슬라이스 모듈형PC, Z2 미니 워크스테이션 4종이다. 기업용 제품답게 만듦새가 훌륭하고 성능도 뛰어나며 가격도 비싸다.

 

지난 CES 2017에서 발표된 기업용 PC 신제품 4종이 국내 출시된다. 사진=봉성창 기자


지난 2014년 HP는 PC 및 프린터 사업을 하는 ‘HP Inc.’와 엔터프라이즈 사업을 하는 ‘HPE’로 회사를 둘로 쪼겠다. HP 제품 디자인이 크게 달라진 것은 그 이후 부터다. 이에 대해 HP코리아에서 PC 마케팅 부문 소병홍 상무는 “분사 이후 온전히 PC에만 R&D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며 “이제 기업 업무인력의 50%를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소 상무의 설명대로 지난해부터 HP가 내놓는 PC 신제품 디자인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튼튼하지만 두껍고 무거웠던 과거와 비교해, 튼튼하면서도 얇고 덜 무겁다. 굳이 가볍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요즘 출시되는 초경량급 제품조차 여전히 1kg이 넘고 있어서다. 

 

과거에는 훨씬 더 이러한 경향이 심했다. HP 노트북이 무거운 이유는 kg이 아닌 파운드를 사용하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미 충분히 가볍다는 판단하에 굳이 1kg의 벽을 깰 마케팅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본연 경쟁력 추구…1등보다 ‘내실’

 

IT업계에서 1등에 올라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한번 내려왔다가 다시 오르는 일이다. 한번 뒤처지면 다시는 따라잡기 어려운 산업 속성 때문이다. 애플이 위대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HP 역시 레노버에 내준 1등 자리를 되찾고, 더 나아가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이미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을 등에 업은 레노버를 다시 따라잡기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PC 교체주기가 갈수록 길어지고 있고, 이러한 현상이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서 더욱 도드라진다는 점에서 시장 상황조차 HP에 우호적이지 않다.

 

HP 엘리트 슬라이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미니 PC를 베이스로 모듈형 설계를 통해 기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HP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HP의 행보를 보면 PC, 프린터 등 오랜 주력 분야에서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하위 경쟁업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점차적으로 점유율을 회복하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지난해 전 세계 PC 시장 점유율을 보면 상위 3개 업체인 레노버, HP, 델은 소폭의 성장률과 함께 전체 시장 점유율의 약 55%를 차지했다. 

 

반면 애플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은 역성장을 기록해 이와 대조를 이뤘다. HP가 삼성전자 프린터 사업부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지난 7년간 뭐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HP를 소비자들이 다시 주목하도록 한 것은 흑자 실적도, 회복한 주가도, 시장점유율도 아닌 PC 신제품이었다. 일반 소비자용과 기업용으로 타깃을 분류하고, 니즈를 정확히 읽어내 만들어내는 재주를 보면 ‘아직 HP 안죽었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만 전 세계에 소문난 사후 서비스는 앞으로도 점차 개선돼야 할 요소다.

 

김대환 HP코리아 대표는 “올해가 원년이라고 보면 된다”며 “더 많은 신제품이 나올 것이며 오는 2020년까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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