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를 말할 때,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있다. 북한은 첨단기술 부족으로 재래식 장비를 사용하지만, 대량살상무기와 인해전술로 약점을 극복해 우리 군은 열세에 있다는 말이다. 남북한의 군사비 격차가 최소 2배 이상인 상황에서, 북한군이 군사 퍼레이드나 에어쇼에서 구형으로 보이는 재래식 무기들 선보인 것은 어쩌면 연막작전일 수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크게 받지 못하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데 필수적인 무기를, 북한은 맹렬히 개발한다. C4I 장비가 그것이다. C4I는 ‘커맨드(Command), 컨트롤(Control),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컴퓨터(Computer), 그리고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의 약자로, 군사작전에 필요한 지휘통제 및 정보통신 시스템들을 모아 부르는 것이다.
군생활에서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중대·소대마다 하나씩 있는 PRC-999K 무전기부터, 한국군 전체에 공격, 방어, 피해현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리는 합참의 KJCCS(Korean Joint Command and Control System)까지 군의 신경이자 두뇌를 일컫는 말이 C4I라고 할 수 있다. 이 C4I의 수준 차이가 북한군과 한국군의 가장 큰 전력 차이다. 북한군은 숫자와 화력이 뛰어나지만, 실전에서는 전장의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유기적으로 부대 간 협력을 할 수 없어 실전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추측했던 내용이다.
그 말이 어쩌면, 틀릴 수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통신사, 로이터(Reuters)의 기자인 제임스 피어슨(James Pearson)과 로자나 라티프(Rozanna Latiff)는 2월26일 북한이 말레이시아에 유령회사를 세워 불법적으로 무기 판매를 했다는 보도를 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글로컴(Glocom)이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하고, 작년 12월까지 말레이시아에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또한 UN은 이 회사가 얼마 전 에리트리아에 수출하는 물건을 압류한 적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글로컴은 말레이시아의 방산 전시회에서도 버젓이 물건을 전시하고 있었다.
북한이 무기회사를 몰래 만들어 국적을 숨기고 판매해왔다는 것부터 UN 제재를 무시한 중요한 증거이다. 북한이 말레이시아에서 저지른 또 다른 범죄행위가 적발된 셈이다. 이 무기를 팔고 기업을 운용하는 배후로 북한의 정찰총국이 지목되고 있다. 군사전문가 입장에서는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북한이 파는 물건이 정말로 본격적인 C4I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로이터 기자가 공개한 글로컴의 영상을 살펴보면, GR-200이란 이름이 붙은 VHF 라디오는 병사가 등에 짊어지고 다닐 수 있는 것으로 우리 군의 주력 무전기인 PRC-999K와 역할이 똑같다. 게다가 PRC-999K가 적의 도청과 전파방해를 피하기 위해 만든 기능인 ‘주파수 도약’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음성, 데이터, 텍스트를 전달할 수 있음은 물론, PRC-999K에 없는 GPS가 자체 내장된 뛰어난 수준의 개인용 무전기라는 것이다.
개인용 무전기에 GPS가 내장되어 있다면, 화력지원을 요청하거나 아군의 상태를 전달할 때, 자신의 좌표를 음성으로 불러주지 않아도 되니 작전에 편리함이 증가한다. GR-500이라는 차량용 통신장비는 군용 무전기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512kbps의 속도로 영상이나 문서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GR-400은 EECM,즉 전파 방해를 이겨내고 통신을 할 수 있는 특수 기능인 암호화 알고리즘과 주파수 호핑 기능을 갖췄다고 홍보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상황이 심각해지는데, GR-510이라는 통신장비는 무인 드론, 즉 UAV(Unmanned Aerial Vehicle)에 쓰이는 통신 시스템이다. UAV를 조종하고 UAV에서 탐지한 영상을 실시간 데이터 링크로 받을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이 장비를 탑재한 무인기와 원격 조종 장비는 100km 밖에서 무인기를 조종하고, H.264코덱으로 압축된 640×480픽셀 해상도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은 다음, 1초마다 무인기의 위치를 GPS를 사용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 능력이면 우리 군단급 무인기 RQ-101 송골매 정찰기에 써도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GR-220이라는 무전기는 GR-200보다 훨씬 작은 개인용 무전기다. GR-220은 컴퓨터나 다른 기기와 연결할 수 있을 뿐더러 스펙 상으로는 특수부대용 무전기나 경호용으로 쓰는데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이 무전기는 마이크와 연결 가능하고, 전술 PDA나 스마트안경에 영상을 표시할 수 있다. 무전기로 200m 이내의 아군과 통신하고, 차량용 무전기를 중계소로 사용하면 최대 10km 밖 아군은 물론 지휘통제부와도 정보를 주고받는다. 북한은 이 무전기를 가진 군대가, 서울의 도봉산 뒷자락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을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남침을 할 때, 북한의 특수부대원이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놀라운 것은 GS-2100이라는 솔루션이다. 무전기나 한 개의 컴퓨터가 아닌, 수많은 장비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이 시스템의 목적은 전장의 전략 상황과 전술지도를 지휘부에 전달하는 지휘 시스템이다. 우리 군 합참의 KJCCS와 매우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시스템은 어느 사단, 어느 대대가 어느 곳에 배치되고, 어떤 적과 교전 중인지, 어디를 공격하고 어디를 방어할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전 군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화면에는, 북한군이 대한민국 영토를 서해안, 파주, 철원, 화천, 양구의 다섯 가지 공격축선으로 남침을 하고, 한국군의 방어선과 전투 지역을 표시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만약 이 장비가 북한의 최고지휘부가 사용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지휘통제를 하는 정보력 자체는 남북한이 최신 기술을 똑같이 사용하는 셈이다. 김정은과 북한의 장군들은 GIS(지리정보시스템)을 이용하여, 3차원 벡터 지도에 자신들의 부대를 투입하고 공격로를 명령할 수 있다는 기술력이 확인된 셈이다. 북한은 눈에 띄지 않게 내실을 다진 셈이다.
아직 북한 위장회사의 브로슈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북한은 정부 단위로 대단한 사기를 치는 불량국가로, 그들의 역량이나 기술을 과장하는데 전문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 브로슈어에 제시된 기능이 팔아먹기 위해 사기를 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첨단 정보통신 장비들은 제작도 중요하지만, 결함을 수정하고 전쟁터의 거친 환경에서 내구성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대규모 서버와 자료 처리가 필요한 지휘통제 시스템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C4I에서 절대적 우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창끝 전투력부터 최고 지휘부까지 우리 C4I 역량을 키우고 투자할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소대급 무전기의 경우, 업체가 PRC-999K 이후 더욱 소형화하고 성능을 개량한 발전형을 내놓았지만 정작 채택하지 못했고, 우리 군의 차세대 통신망인 TICN은 몇 년 동안 개발에 난항을 보이다 이제야 결실을 보는 중이다. 북한의 군사역량에 대한 경각심을 놓치지 말고, 우리 군의 C4I의 발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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