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해 6월 스위스의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 이후 핀란드, 네덜란드, 핀란드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 실험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스위스 국민투표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청년배당 등 한정된 범위의 기본소득 제도가 추진 중에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진화가 가속화되고 저성장·저고용 시대에 돌입하면서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복지 제도로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벌어져 왔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던 논의가 지난 1월 31일 인도 재무부가 발표한 경제 진단 보고서(Economic Survey 2016/17)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담기면서 빈곤퇴치를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소득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인도의 기본소득 논의는 인도 출신 프라납 바르단(Pranab Bardhan) UC 버클리대교수가 2011년 “인도 내 최소한의 사회민주주의 실현에 있어서의 도전과제(Challenges for a Minimum Social Democracy in India)”에서 빈곤퇴치 및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으로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비제이 조시(Vijay Joshi) 옥스퍼드대 교수 역시 2016년 출판한 “번영을 위한 머나먼 길(India's Long Road: The Search for Prosperity)”에서 보조금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여 큰 반향을 불러왔다. 매년 예산안 발표 전날 공개되는 경제 진단 보고서(Economic Survey)의 현 총책임자인 알빈드 수브라마니안(Arvind Subramanian) 인도 수석 경제 고문은 기본소득제 신봉자로 보고서에 기본소득을 포함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적절하며 존엄적인 삶을 제공한다는 인도적 의의를 담고 있으나, 형평성, 실현가능성, 효율성, 효과성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노동의지를 감퇴시키고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기는,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반대로 인도 내 기본소득제 지지자들은 인도와 같이 빈곤선이 낮고,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국가에서는 실현 가능하며 효율적이라고 반박한다. 빈민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조금 상당 부분이 비리 등 잘못된 방법으로 새어나가고 있다면 기본소득 도입 명분은 확실해진다. 실제로 인도 빈민층 절반 이상이 보조금 수령에 필요한 BPL(빈곤선이하생활가구)카드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 반해 최상위 1%의 35% 이상이 정부 식량보조의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자유주의적 성향의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2월호에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안으로 인도의 기본소득 도입을 지지했다.그러나 문제는 행정적으로, 재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가능할 것인가이다.
우선 행정적으로, 인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중에 있는 전 국민 은행계좌 갖기 정책(Jan Dhan Yojana), 전자주민등록 정책(Aadhaar), 휴대전화(Mobile)를 일원화한 ‘JAM’ 트리니티(Trinity) 정책 덕분에 모든 대상자에 대한 기본소득 지급은 용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13억 인구 중 보조금 지급 대상을 선정하는데 들어가는 행정적 비용과 보조금 비리(부정 수급 등)가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아직까지 금융 서비스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농촌 인구들이 계좌에 입금된 소득을 어떻게 인출 및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각자마다 주장하고 있는 기본소득 금액은 다르지만 세금 추가 징수 없이도 재정적으로 기본소득제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인도 정부가 운영 중인 보조금 프로그램만 약 950개로 GDP의 5%를 차지한다. 수브라마니안 수석경제고문은 연간 7,620루피(약 13만 원)를 지급하면 GDP의 6~7%가 소요되지만 절대 빈곤율은 현재 22%에서 0.5% 이하로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르단 교수는 “직간접 보조금을 모두 합치면 GDP의 12%가 소요된다”며 손실되는 세수로 재원 마련 시 연간 1만 루피(약 17만 원) 지급에 필요한 세수는 GDP 대비 10% 정도라며 주장하고 있다. 조시 교수는 연간 3500루피 지급도 빈곤퇴치에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정치다. 비효율적 보조금을 대체할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제 도입은 명분이 확실하지만, 인도의 대표 기업인인 무케시 암바니(Mukesh Ambani)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 회장과 기차역 차이왈라(Chai Wallah: 차 파는 사람)가 비슷한 기본소득을 수령한다는 것은 정치적 논의를 부를 것이다. 또한, 현재 제도 하에서 수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이권집단의 반발도 간과할 수 없다. 인도 정부는 기본소득제 대상을 전 국민으로 할지, 빈곤층으로 한정할 지에 대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빈곤층으로 한정한다면 높은 행정비용 발생과 부정 수급 문제 지속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찰된다.
수브라마니안 수석경제고문은 경제 진단 보고서(Economic Survey 2016/17) 발표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기에는 이르지만 논의를 시작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언급했다. 일부에서는 소득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제공해야 한다며 기본소득 예산을 공공 서비스 및 제도 역량 강화에 할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 세계 극빈층의 1/3이 거주하고 있는 인도에서 기본소득은 ‘적절한 삶’ 제공보다는 인간다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검은돈 및 부정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전례가 없는 화폐개혁을 단행한 모디 총리가 앞으로 기본소득을 두고 어떤 정치적 마술을 펼칠지 기대된다.
박소연 국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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