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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일기] 외로움에 익숙해지면 진짜 어른이 되는 걸까

관계 맺기가 늘수록 외로워지는 이유

2017.02.28(Tue) 14:58:14

[비즈한국] 동네 친구와 집 앞 카페에서 만났다. 꽤 오랜만이었지만 수다를 떨기 위해 만난 것은 아니었다. 둘 다 노트북을 가져왔고, 종종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일을 했다. 13년 된 친구라 무척 편하기도 해서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친구는 공무원 준비를 위해 NCS(국가직무능력)를 공부한다고 했다. NCS가 무엇인지 찾아보니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 기술, 태도 등의 내용을 국가가 체계화한 것’이라고 NCS 홈페이지에 설명이 나와있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10번째 취업스펙’이라는 신조어로 공공기관, 공기업에서 도입한 NCS 채용을 표현하는 말도 있었다. 

 

어쨌든, 친구는 그걸 준비하고 나는 옆에서 글을 썼다. 바로 이 취준생 일기를. 상대적으로 바쁘지 않은 일(?)을 하는 것 같아 아주 잠깐 위기감이 들었으나 어쩌겠는가.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거지.

 

간간이 우리가 나눈 대화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둘은 꽤 다른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친구는 주로 남자친구와의 데이트가 만남의 대부분이었고, 세종시에 있는 공기업에서 인턴을 하다 보니 서울에 있는 대학친구들과는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에 올라가더라도 약속을 잡거나 연락을 하는 것은 꺼려진다고도 했다. 

 

소모적인 만남은 취준생 입장에서 부담스럽고, 만나더라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친구는 깊고 좁은 관계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그녀의 친구들도 거의 다 취준생들이고, 공무원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름대로 그들을 배려하고 있었다. 서로의 입장이 비슷해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다. 나도 이해되는 부분이었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Figure 1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많은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반면 나는 넓은 인간관계 속에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한다. 내가 속한 독서클럽 때문이다. 독서클럽 커뮤니티 서비스 회사에서 알바 비슷한 개념으로 일하며 내가 맡은 클럽들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밖에 없다. 유료 서비스이기에 고객층은 회사원들이 많았고 지금까지 몸 담았던 어떤 곳보다도 이질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 점은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한데, 여러모로 배우는 점이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처음에는 재미있기만 했다. 책 읽고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의 넘치는 지성에 놀라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점점 피로감이 들었다. 모임 때문이 아니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관계에서 그러했다. 외향적, 내향적이라는 성격의 구분은 확연한 것이어서 내가 노력해도 분위기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런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기 전에 상처를 받는다는 데 있었다. 거기서 알바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기에 친절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 맞지 않는 사람들,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감정으로 대해야 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다. 이미 정신적으로 성숙해 ‘정’이라는 갈고리를 걸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항상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미움이나 상처를 받는 것은 힘겨웠다. 

 

물론 나를 미워하는 사람, 악의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저 나 혼자 그랬다. 잘 해나가고 싶고, 모든 것이 잘 풀리기만을 바라는 나는 어쩌면 여린 존재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속감’이라는 게 쉽고도 어려워서, 따뜻하다가도 냉정하고, 기대를 무너뜨리다가도 위로하는, 그런 모순적인 의미일 때가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허물이나 벽 따위가 없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곤 했는데 그만큼 마음도 잘 주어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상처를 받는 일도 허다했다. 그때마다 며칠씩 우울하긴 했으나, 금세 또 사람을 좋아하고 만다. 

 

다행인 점은, 스물다섯이 될 때까지 나름 거짓, 위선, 배신 등 거창한 것들에 치여서 세상을 바라볼 때 한 가지 필터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새로운 고민은 내게도 범퍼 같은 것이 조금 생겼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른스러워진 것인지, 무뎌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앓이로 끙끙 앓는 것보단 나았다.

 

‘관태기’라는 단어가 생겼다. 관계 맺기에 권태를 느끼는 20대를 뜻한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몸과 마음이 훌쩍 자란 어른들은 어떻게 외로움을 달랠까.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는데, 그렇다고 홀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가지만 뻗는 관계에는 적당한 관심과 연결을,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않은 채로, 그렇게 아주 바람직하고 아프지 않은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또다시 중요한 고민과 마주쳤다.  

 

※필자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거둬갈 기업 관계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이상은 취업준비생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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