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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나는 ‘플렉시테리언’이다

이제 채식은 취향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태도의 문제

2017.02.27(Mon) 12:11:21

[비즈한국]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은 플렉서블 베지테리언(Flexible Vegetarian)의 줄임말인데, 말 그대로 융통성 있는 채식주의자다. 채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상황에 따라 육식도 하는 가장 느슨한 채식 유형이다. 이러한 세미 베지테리언의 대표적인 유형이 페스코다. 채식에다가 유제품, 달걀, 그리고 해산물 어패류까지 먹는다. 또 다른 유형인 폴로는 페스코가 먹는 것에 조류까지 먹는다. 치맥을 할 수 있단 얘기다. 플렉시테리언은 해산물은 물론 조류, 불가피한 상황에선 돼지고기, 소고기까지도 먹는다. 아니 안 먹는 고기 없이 다 먹는데 왜 채식의 유형에 포함될까 의아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세미 베지테리언이 된다는 것이 스님의 식습관을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나도 플렉시테리언이다. 

 

육식과의 결별이 아니라 채식을 중심에 두고 융통성 있게 육식도 겸하는 플렉시테리언이 늘고 있다.


육식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나서부터 채식을 중심에 둔 식습관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완전한 채식은 어렵고, 삼겹살과 스테이크도 가끔은 먹고 싶어서다. 스스로 기준을 정해두고 먹는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갈비를 구워줬는데 소고기는 못 먹는다고 거절하는 것보단 그날만큼만 즐겁게 먹는다. 소고기 먹는다는 회식도 빠질 수 없다. 생일날 아내가 끓여준 미역국에 들어간 소고기는 건져내면 안된다. 친구들이 모여서 오랜만에 술자리를 하는데 고깃집에서 한다고 해도 피할 필요없이 어울린다, 아프거나 몸이 허할 때 고기를 먹기도 한다. 여행 간 호텔에서 아침에 베이컨도 먹어줄 때가 있다. 

 

아니 들어보니 다 먹네 싶겠지만, 이외에는 안 먹는다고 생각해보면 꽤 덜 먹을 수 있다. 원칙 없이 아무 때나 입맛 당기는 대로 고기를 탐하는 게 아니다. 육식과의 결별이 아니라 채식을 중심에 두고 융통성 있게 육식도 겸하는 거다. 

 

채식의 세계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가장 권하는 유형이 플렉시테리언이다.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비건은 아주 엄격하다. 고기는 당연하고, 우유나 치즈 같은 유제품, 달걀조차 먹지 않는다. 나아가 실크나 가죽처럼 동물에게서 원료를 얻는 제품도 사용하지 않는다. 락토는 비건처럼 채식을 하지만, 우유와 유제품, 꿀 등은 먹는다. 완전 채식에서 조금 양보한 셈이다. 락토에서 조금 더 나간 게 락토 오보인데, 이들은 달걀까지 먹는다. 이렇게 비건, 락토, 락토 오보까지를 베지테리언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걸 선택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니 먹는 게 뭐 이리 복잡하냐, 그냥 아무거나 골고루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거다. 특히 남자라면 큰 갈비를 잡고 뜯어먹거나, 치킨 한 마리도 뚝딱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육식이 주류이고 채식은 비주류, 특히 채식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입맛 까탈스러운 비주류라 여기기도 한다. 한국인들에게 채식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건강이나 피부에 좋다거나, 다이어트를 떠올린다.

 

우리에게 채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채식에 대한 얘길 하면 앞서 한 얘기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사회적 소비와 생태주의, 동물복지, 환경주의 등이다. 고기 먹고 안 먹고의 문제를 뭐 이리 비약시키냐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채식은 입맛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태도의 문제가 되었다. 실제로 채식주의 확산은 육류 소비량의 급증 때문이기도 하다.

 

채식은 동물에 대한 태도와도 연결되어 있다. 가수 이효리는 유기동물을 입양해 키우면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사진=이효리 블로그 캡처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 육류 소비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늘어나는 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 공장식 사육이 증가했고,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같은 전염병에도 취약한 환경이 되었다. 동물들이 식량으로 태어나 식량으로 죽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동물복지의 사회적 기준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왕 고기를 먹더라도 건강한 고기, 살아 있는 동안 좀 더 행복했던 고기를 먹겠다는 것이고, 이건 동물을 대하는 태도 변화에서 출발한다. 모피를 반대하는 움직임이나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변화다. 그래서 채식주의는 단지 먹는 문제만이 아닌 것이다.

 

전 세계 기아인구는 8억 명 정도이고, 식량부족은 인류의 중요한 문제다. 물 부족도 세계적 문제다. 하지만 고기를 먹기 위해 상당한 곡물과 물을 가축사육에 쓴다. 전 세계가 식량부족이지만 전 세계 농토의 3분의 1 이상은 농사가 아니라 축산업에 쓰이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축산 부문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이른다고 한다. 

 

축산은 인류에겐 중요한 단백질 공급 산업이지만 다른 한쪽에선 지구에 다양한 악영향을 끼친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단지 입맛의 문제가 아닌 시대적 선택이기도 하다. 육류 소비를 조금만 줄여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세계 인구는 계속 늘고, 식량부족도 심화된다. 고기는 분명 맛있지만, 그걸 절제하는 것도 우리의 클라스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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