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은 스마트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스트레스다. 매일 자기 전 잊지 않고 스마트폰을 충전해야 하는 것은 기본. 틈틈이 배터리를 확인하고 떨어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만일을 대비해 보조배터리까지 챙긴다.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워치, 웨어러블기기 등 사용하는 첨단 IT기기 숫자만큼 충전용 어댑터와 케이블도 늘어난다.
무선충전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케이블 자체가 없으니 단자 규격을 따지지 않아도 되고, 단지 올려두는 간단한 행위로 충전이 이뤄진다. 제품에도 충전을 위한 구멍을 내지 않아도 되니 물이나 먼지의 유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미 무선충전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폰과 충전기를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시장 반응은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런데, 여기에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다. 충전 속도가 느려서다.
현재 가장 대중화된 무선충전 기술은 무선충전 컨소시엄(Wireless Power Consortium, WPC)이 정한 5W급 Qi(치)다. 이는 5V 전압으로 1A 전류량을 가지는 유선충전과 동일한 수준이지만, 실제 효율은 70~80%만 나기 때문에 느리다. 게다가 최근에는 퀄컴 ‘퀵차지’와 같은 유선 고속 충전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더욱 더디게 느껴진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무선충전 기술이 바로 15W급 중전력 무선충전이다. 무선충전 속도가 더욱 빨라질 뿐만 아니라 노트북과 같이 더 높은 전력을 요구하는 기기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가령 책상이나 탁자에 중전력 무선충전기가 내장돼 있고, 노트북이 중전력 무선충전을 지원하면 거추장스러운 선이 사라지게 된다. 더 이상 ‘스타벅스’에서 콘센트 근처 자리에 앉으려고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 애플이 나타났다
WPC는 지난 13일부터 닷새간 영국에서 ‘런던 멤버미팅’을 개최했다.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해 노키아, 도시바, 필립스, 하이얼, 퀄컴, 보쉬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는 Qi 규격 표준을 정하고 기술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설립됐다. Qi는 동양에서 말하는 ‘기’를 중국식으로 읽은 것이다.
‘런던 멤버미팅’은 깜짝 손님의 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주목을 받았다. 바로 애플의 참여 선언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정상문 코마테크 기획실장은 “애플의 등장은 마치 첩보전을 연상케 했다”며 “주요 멤버들도 행사 하루 전날 애플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코마테크는 오랫동안 WPC 멤버로 활동해온 우리나라 기업으로, ‘프리디’라는 브랜드로 무선충전 액세서리를 다수 선보였다.
애플은 WPC 가입과 동시에 스티어링 그룹(Steering Group)에 합류했다. WPC 가입 기업은 멤버십 비용에 따라 4개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가장 상위 등급이 레귤러(Regular) 등급이다. 그런데 레귤러 등급 중에서도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멤버가 바로 스티어링 그룹이다. 스티어링 그룹은 단순히 돈만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애플이라면 자격이 충분하다. 무선충전 표준 제정에 관해 애플이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올해 출시될 예정인 ‘아이폰8’(가칭)에 모아졌다. 선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애플이 마지막 남은 선인 충전 케이블을 제거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이미 무수한 반대 여론을 이겨내고 이어폰 단자마저 제거한 애플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당장 애플이 이 제품을 뭐라고 소개할지 머릿속에서 그려질 정도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무선 아이폰(Most complete wireless iPhone ever).”
# 아이폰8, 15W급 중전력 무선충전 도입할까
애플이 당장 아이폰에 무선충전 기능을 탑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5W급 무선충전 규격이 애플이 원하는 기술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플도 아이폰에 자체적인 고속 유선충전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5W급 무선충전 기술은 끔찍하게 느리다는 것이 근거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15W급 중전력 무선충전이다. 정 실장은 “이미 중전력 충전 규격은 정해져 있으며 당장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며 “수신부에서 발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중전력 무선충전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폰은 없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삼성 갤럭시S7과 지금은 사라진 비운의 갤럭시노트7에 ‘급속무선충전’이라는 명칭으로 좀 더 발전된 기술이 탑재돼 있긴 하다. 정식 규격은 아니지만 Qi와 호환되는 9W급 무선충전 기술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갤S7과 갤노트7을 15W급 중전력 충전기에 올려둘 경우 15W급 고속 충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검증된 적이 없다.
만약 차기 아이폰에 중전력 무선충전 기술이 탑재된다면 이는 세계 최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무선충전 기술 도입에 유보적이던 애플이 단숨에 무선충전 시대를 여는 시나리오다. 애플이 무서운 점 중 하나가 관련 액세서리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시중에 중전력 무선충전기기가 쏟아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이 이를 뒤따르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 60W급 무선 충전 시대…우리 삶 변화시킬 것
올해 WPC에서는 15W급 중전력을 넘어 60W급 무선충전의 규격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60W급 무선충전 기술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회사는 전동공구로 유명한 ‘보쉬’다. 고출력을 요구하는 전동기기 역시 무선충전 기술과 시너지를 내기에 충분한 영역이다.
60W급 무선 충전이 대중화되면 주방 풍경도 확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식탁에 무선충전 충전기를 내장한 다음 믹서기, 전자레인지, 전기그릴, 전기밥솥 등을 선 없이 간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편리할 뿐만 아니라 안전하기까지 하다. 아직까지 넘어야 할 기술적 과제는 적지 않지만, 현재 기술 발전속도를 감안하면 못할 것도 없다. WPC 스티어링 멤버 중에는 삼성과 LG 이외에 하이얼, 필립스, 파나소닉 등 가전업체가 포진돼 있으며, 스웨덴 가구 기업인 이케아 역시 WPC에 가입돼 있다.
이 밖에도 60W급 무선충전 기술은 사실상 대부분의 전자제품과 가전기기에 적용될 수 있는 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Qi 규격 자체가 아직까지는 자기유도 방식인 만큼 충전거리가 밀착해야 할 정도로 짧다는 점에서, 공명 방식의 근거리 무선충전 기술의 발전도 함께 지켜봐야 할 포인트다.
정상문 코마테크 실장은 “과거 VHS나 블루투스처럼 표준 규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라며 “애플의 참여로 Qi 규격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으며 무선충전 시대를 더욱 앞당기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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