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스타일

명품 가죽이 명품 핸드백을 만든다

아는 만큼 보이는, 천연가죽에 대한 모든 것

2017.02.21(Tue) 15:47:15

명품시장 발달과 가죽공예의 확산으로 좋은 가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에르메스


석유화학 기술이 최첨단으로 발달하고 있지만, 천연가죽은 여전히 패션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재료다. 질기면서도 온도, 습도를 조절해줘 인체에 최적화된 소재라는 것이 이유다. 근래에는 명품시장이 커지면서 고급가죽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취미 또는 창업 목적의 가죽공방 클래스도 활성화돼 있다. 가죽제품을 구매하거나 또는 만들기 전에 가죽에 대해 알아두면 좋을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을 나서면 가죽 관련 가게들이 보인다. 안쪽 골목엔 대형 여자구두 모형을 옥상 위에 올려놓은 2, 3층 건물들도 보인다. 성수역 4번 출구 바로 앞 건물에 있는 A 사는 해외 가죽 구매를 대행하는 곳이다. 이 업체 최영진 차장의 도움을 얻어 좋은 가죽을 고르는 노하우를 정리했다. 학술적으로는 여러 가지 분류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실무에서 쓰이는 용어를 기준으로 했다.

 

① 그레인/누벅/스웨이드/스플리트

 

사용되는 층위를 기준으로 한 분류법이다. 가죽은 겉에서부터 표피(은면), 진피, 피하조직으로 이뤄진다. 표피를 가능한 한 살려서 사용한 것을 그레인(grain) 가죽이라고 한다. 흔히 떠올리는 가죽은 대부분 그레인 가죽이다. 그레인 중에서 풀 그레인(full grain) 가죽은 표피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레인 가죽도 벌레 물린 자국이나 상처를 표피의 두께 안에서 살짝 갈아내 사용하는데, 풀그레인 가죽은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가죽은 어느 부위를 쓰느냐에 따라 그레인, 누벅, 스플리트, 스웨이드로 나뉜다.


표피를 얇게 갈아내 기모를 일으키면 누벅(nubck)이 된다. 가죽 표면의 무늬가 남으면서 무광 처리된 가죽은 누벅이라 보면 된다. 반대로 피하조직은 살점과 붙은 쪽의 거친 부분을 곱게 갈아내 기모를 일으키면 흔히 ‘세무’라고 부르는 스웨이드(suede) 가죽이다. 

 

누벅과 스웨이드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누벅에는 그레인 가죽처럼 가죽 고유의 무늬가 남아 있고 감촉은 매끈하다. 스웨이드는 가죽 표면의 무늬가 없고, 짧은 털의 감촉이 느껴진다. 

 

 

하나의 원단에 그레인, 누벅, 스웨이드 가죽이 모두 보여지는 샘플. 스플리트 가죽은 좀 더 두꺼운 가죽에서 따로 나온다. 사진=우종국 기자


두께가 충분히 두꺼운 가죽은 표피와 피하조직을 잘라내고 남은 진피 부분을 단독 가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를 스플리트(split) 가죽이라 한다. 스플리트에 여러 가지 무늬 프린트를 붙여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를 ‘도꼬가죽’이라고 부른다. 패션 업계에서 일본식 용어를 많이 쓰듯 가죽업계에서도 일본식 용어가 꽤 많다. 얇지만 가장 조직이 치밀한 표피가 스플리트 가죽엔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겁고 강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저가형 제품에 많이 쓰인다. 

 

누벅, 스웨이드 가죽은 이염 가능성이 있다. 사진=우종국 기자


누벅 가죽, 스웨이드 가죽은 표면을 깎고 코팅처리를 안 했기 때문에 물, 불에 취약하다. 천연가죽임을 알아보려 라이터 불로 지져서는 안 된다. 때가 잘 묻지만 세척은 어렵다. 또한 이염이 잘 되어 핸드백을 만들 경우 옷에 색이 배일 수 있다. 

 

최영진 차장은 “흰 옷을 입고 누벅, 스웨이드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을 매면 옷에 이염이 될 수 있다. 누벅, 스웨이드는 이염의 우려가 적은 신발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일반 생산자라면 누벅, 스웨이드로 가방을 안 만들겠지만, 가끔 공방에서 수강생이 모르고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누벅, 스웨이드라도 특수처리를 한 가죽은 핸드백으로 만들 수 있다. 

 

② 내추럴/프린트

 

가죽 표면에는 땀구멍과 모공이 만들어 내는 고유의 무늬가 있다. 생물 상태 그대로의 표면을 살려서 사용하면 내추럴 가죽이다. 소가죽의 경우 한 마리의 소에서 나온 가죽이라 하더라도 신체 부위에 따라 무늬가 각기 다르다. 

 

네발 짐승들의 특성상 지면에 수평으로 중력을 받기 때문에 등 부위 쪽은 조직이 치밀해서 좋은 부위지만, 옆구리는 늘어져서 비교적 얇고 무늬도 흐릿해진다. 내추럴 가죽으로 사용하려면 무늬가 선명하고 편차가 크지 않은 부분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커팅 밸류(재단해서 쓸만한 부분의 비율)’가 낮다. 커팅밸류가 낮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내추럴 가죽으로 만든 제품은 고급품인 경우가 많다.

 

내추럴 가죽(위)은 무늬가 일정하지 않고 흠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프린트 가죽(아래)은 무늬가 일정하나, 내추럴 느낌을 내기 위해 불규칙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진=우종국 기자

내추럴 가죽(위)은 무늬가 일정하지 않고 옆구리로 갈수록 불규칙하게 무늬가 커진다. 프린트 가죽(아래)은 무늬가 일정하나, 내추럴 느낌을 내기 위해 불규칙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진=우종국 기자


프린트 가죽은 열과 압력을 가해 인위적인 패턴으로 성형하는 것이다. 악어 무늬, 뱀피 무늬, 기하학적 무늬 등이 많이 쓰이고, 내추럴 가죽의 커팅밸류를 극복하기 위해 내추럴가죽 무늬를 찍기도 한다. 소가죽에 내추럴 가죽무늬를 프린트한 것을 ‘오플가죽’이라고 부른다. 프린트 가죽을 사용하면 모든 부위의 가죽을 다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옆구리 부위는 강도나 탄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③ 베지터블/크롬

 

동물 가죽을 자연 그대로 방치하면 썩거나 딱딱하게 굳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가죽의 성질을 바꾸는 것이 무두질이다. 이를 영어로는 태닝(tanning)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가죽 생산자를 태너리(tannery)라고 부른다.

 

베지터블은 인류 전통의 방식으로, 박달나무 껍질 등을 갈아서 녹인 물에 가죽을 담그는 것이다. 나무껍질 등에서 나온 추출물을 사용하므로 ‘식물성(vegetable)’ 태닝이라고 부른다. 

 

크롬 가죽은 크롬 등의 물질이 포함된 용액으로 무두질을 하는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서 도입된 이후, 현재 약 80%의 가죽 제품이 크롬 방식으로 제작된다. 베지터블 방식은 수 주에 걸쳐 오랜 시간 천천히 물성을 변화시키지만, 크롬 방식은 수일 내의 시간이면 완성된다. 

 

베지터블 가죽은 나무껍질에 절이는 방식이므로 채도가 낮고 가죽 본연의 색이 남는다. 카우보이 스타일이나 통가죽과 같은 빈티지 제품에 주로 쓰인다. 크롬 방식은 색상에 제한이 없어 흰색, 핑크색 등 밝은 색상을 제한 없이 구현할 수 있다. 

 

베지터블 가죽을 담그는 용액에는 나무껍질 외에 오일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베지터블 가죽은 오래 쓸수록 배어 있던 오일이 올라오면서 색이 어두워지고 반질반질해진다. 이러한 현상을 에이징(aging)이라고 한다. 

 

베지터블 가죽(위)은 가죽 느낌이 남아 있으나, 발색에 한계가 있다. 크롬 가죽(아래)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발색이 좋다. 사진=우종국 기자


베지터블 가죽은 관리가 쉽지 않다. 물에 젖으면 마르면서 딱딱하게 굳어지므로 물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빛을 받으면 색이 변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구두 판매점에서 베지터블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한 짝만 진열하고 한 짝을 상자에 넣어두면 나중에 색이 동일하지 않게 된다. 베지터블 가죽 제품은 상자나 라벨에 ‘베지터블 가죽’임을 쉽게 알 수 있게 표기되어 있다.

 

가죽이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도 크롬 방식의 도입 덕이다. 크롬 방식이 대중화된 계기는 20세기 초의 큰 전쟁들이다. 군용 물품의 대량생산을 위해 크롬 방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크롬 가죽을 ‘나빠 가죽’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미국 나파(Napa) 지방에서 크롬 공정이 대규모로 일어났던 데서 유래한다. 

 

베지터블 가죽과 크롬 가죽의 장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미 베지터블 가죽, 세미 크롬 가죽으로 가공하기도 한다. 베지터블 방식으로 절반쯤 가공한 후 크롬 방식으로 가공하거나, 그 반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④ 소/양/고트/돼지

 

일반적으로 가죽은 식용 가축의 부산물이다. 소 한 마리를 잡을 때 가죽 가격은 고기 가격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최종 가공된 가죽 원단의 도매가는 ‘평(제곱피트)’ 당 3000~5000원이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소 한 마리에서 25~40평 정도 면적이 나오므로, 소 한 마리에서 나오는 가죽 가격은 7만 5000~20만 원이다. 이는 소매점 판매가격으로, 도축장에서 팔리는 가격은 더 낮을 것이다.

 

소가죽(cow leather)은 안정적이고 무난한 소재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소재다. 적당한 무게와 적당한 강도를 지니고 있어, 별다른 설명이 없이 ‘가죽제품’이라고 하면 소가죽인 경우가 많다. 개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많아 가죽원단 판매점에서는 반 마리 분량을 한 장으로 판매한다. 

 

들소가죽(buffalo leather)도 있으나, 들소는 사육이 일반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수량이 많지 않다. 소가죽보다 질기기 때문에 강도가 필요한 곳에 많이 쓰인다. 소가죽보다 모공이 크고 특유의 와일드한 무늬가 있다. 무겁기 때문에 여성용 가방 재료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들소가죽(왼쪽)과 고트가죽(오른쪽)의 크기 차이 비교. 사진=우종국 기자


양가죽(lamp leather)은 소가죽에 비해 얇기 때문에 누벅, 스웨이드, 스플리트로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그레인 가죽으로 사용된다. 모공이 조밀하고 가벼워 고급스런 느낌이 난다. 그러나 한 마리에서 나오는 면적이 작기 때문에 큰 가방을 만들 수 없고 여성용 핸드백, 지갑, 신발 등에 사용된다. 양가죽은 강도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양가죽의 가벼움과 소가죽의 튼튼함을 가진 중간적 소재가 고트가죽(goat leather)이다. 고트가죽은 ‘산양가죽’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국내에서 산양이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이름이 적절치 않다는 논란이 있다. ‘염소가죽’으로 부르자는 제안도 있지만, 고트와 염소는 다른 품종이다. 

 

지금은 영어 그대로 고트가죽으로 불린다. 호황기인 2000년대 고트가죽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지만, 불황이 계속되면서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소가죽이나 양가죽으로 소재를 단순화시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고트, 양 가죽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고트, 양을 사육하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가죽은 모공이 크기 때문에 주로 신발 등의 안감 등으로 쓰인다. 가죽으로서의 용도가 많지 않아 흔히 ‘돼지껍데기’로 불리는 구이용 등 식용으로 많이 쓰인다. 소, 고트, 양, 돼지 외에도 악어, 타조, 사슴, 도마뱀 등의 가죽도 쓰이지만 대량으로 거래되는 소재는 아니다.

 

⑤ 아닐린/피그먼트

 

가죽 제품은 관상용이 아니라 입고 신고 들고 다니기 때문에 손상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코팅을 하게 된다. 가죽 표면에 아주 얇게 코팅막을 입히는 것이 아닐린 피니싱이다. 아닐린 피니싱은 세게 문지르면 코팅이 벗겨져 빛이 바랜다. 따라서 가죽 전용 제품을 써야 하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코팅막을 두껍게 처리하면 플라스틱과 같은 질감이 나온다. 사진=우종국 기자


피그먼트 피니싱은 코팅막이 상대적으로 두껍다. 가죽 표면을 코팅막이 덮어 버리므로 가죽의 흠을 가려주고 긁힘에 강하다. 코팅막을 두껍게 해서 광택을 강조한 것을 ‘페이턴트 가죽’이라고 한다.   

 

⑥ 원하는 가죽을 구하기가 힘든 이유

 

가죽은 공산품이 아니므로 소량생산이 어렵다. 최초 가죽을 처리하는 태너리(tannery·무두질 공장)에서는 커다란 드럼통에 한번에 수천 평의 가죽을 넣고 약품과 함께 돌린다. 피혁집은 업체들의 주문량을 파악한 후 태너리에 주문생산을 의뢰한다. 개인이 공방에서 자신만의 가방을 한두 개 만들 경우라면, 원하는 가죽을 태너리에서 직접 주문할 수 없고, 주문을 받아준다고 하더라도 운송비가 비싸 피혁집에 있는 가죽 중에서 골라야 한다. 국내에서는 가성비가 좋은 국내산이나 파키스탄, 인도 등에서 들여오는 비교적 저렴한 가죽들이 주로 유통된다. 이탈리아 명품 가방을 개인이 비슷하게 만들려고 해도 동일한 수준의 가죽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는 저가형 가성비 중심의 가죽이 대량 유통되므로 개인이 고급 가죽을 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진=우종국 기자


가죽은 생물에서 나오기 때문에 살아있던 동안의 이력이 가죽에 드러난다. 크고, 작고, 마르고, 살찌고, 상처가 있고, 병을 앓는 등 개체의 특성과 성장 환경에 따라 가죽 한 장, 한 장이 달라진다. 동일한 품종을 동일한 환경에서 사육해도 가죽을 가공하면 염색약이나 화학약품이 조금씩 다르게 반응한다. 

 

프랑스 가죽이 비싼 이유는 소가 고산지대에서 자라 모기, 진드기 등에 물린 자국이 없다. 또 소가 살아 있는 동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좋은 가죽이 나온다. 이탈리아 가죽이 비싼 이유는 가공이 전통산업으로서의 오랜 경험과 활발한 패션산업과의 피드백으로 가공이 섬세하고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엄청난 가죽이 생산되지만, 대부분 중국 내 공장에서 소화된다.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태너리들을 통째로 인수하거나 기술자를 영입하고 있다. 최 차장은 “중국 태너리를 가보면 이탈리아에서 쓰는 고가 장비와 약품을 사용하는 태너리들이 늘고 있다. 이제는 중국 가죽이 물건도 좋고 비싼 편이다. 아직도 중국산 가죽이 싸구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장을 잘 모르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 

우종국 기자

xyz@bizhankook.com

[핫클릭]

· [왓위민원트] 남자의 핑크, 남자는 핑크
· [왓위민원트] 구두 제대로 신는 11가지 방법
· [왓위민원트] 여자가 원하는 슈트의 정석, 킹스맨보다 손석희
· [클라스업] 당신만의 ‘인생안경’ 찾는 법
· [왓위민원트] 천재들이 사랑한 패션, 스카프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