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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2008년 미국은 어떻게 장기불황을 피했나?

버블 붕괴 이후 미·일 중앙은행의 상반된 대응이 낳은 결과에 주목할 것

2017.02.21(Tue) 10:17:26

지난번 글에서 1980년대 일본 자산시장이 유례를 찾기 힘든 버블을 경험했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이 대목에서 잠깐 일본의 자산 버블 수준이 어땠는지, 위키피디아에 나온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한국의 강남처럼 고급주택이 집결해 있는 동경 미나토 구는 평당 1900만 엔(2억 원 전후)까지 치솟았으며, 서울의 명동에 흔히 비유되는 긴자는 평당 1억엔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참고로 일왕의 주거지인 ‘황거’의 지가가 캘리포니아주 전체 지가와 맞먹었다.

 

버블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만큼 버블의 붕괴로 일본경제가 받은 충격도 상상 이상이었다. 

 

버블이 붕괴될 때면 경제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게 바로 ‘대차대조표 불황’이다. 아래의 그림은 리처드 쿠의 책 ‘대침체의 교훈’에 실린 것으로,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날아가버린 자산가치가 1500조 엔에 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0년 당시 일본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449조 엔이니, 대략 3년치 GDP가 허공에 날아가버린 셈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했어야 했지만 금리 인하는 1993년에야 본격화되었다. 

 

1990년 이후 가계와 기업의 자산 손실 규모. 출처: 리처드 쿠, ‘대침체의 교훈’(김석중 옮김, 더난출판, 2010년)​



자산시장 붕괴, 경제에 어떤 충격을 미쳤나?

 

이렇게 어마어마한 손실은 경제주체들에게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자산 15억에 부채 10억을 가진 가계를 생각해보자. 이 가계는 15억짜리 집을 10억의 빚과 자신의 순자산 5억을 투입해 구매했었는데(LTV 66%), 1991년 이후 시작된 부동산 폭락사태로 집값이 50% 하락한 7억 5000이 된다면? 이 가계의 순자산은 -2.5억이 된다. 집 한번 잘못 샀다가 자산 5억을 가진 ‘중산층’이 자산 마이너스 상태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가계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열심히 소비를 줄여서 저축을 늘리고, 어떻게든 빚을 갚아 나가는 게 최선이다. 만에 하나 금융기관이 집값 하락에 주목해 대출금의 상환을 요구하는 경우, 집은 집대로 잃어버리며 또 빚만 2.5억을 진 채 길바닥으로 나앉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경제 전체에서 벌어진 데 있다. 상당수 가계와 기업들이 80년대 후반에 졌던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저축했고, 또 금융기관은 대출을 늘리기보다는 대출을 회수하는 데 열중했다. 이 대목에서 폴 크루그먼 교수의 글을 한번 인용해보자.*

 

어빙 피셔는 그의 논문 ‘대공황 시대의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에서 “경기침체로 인해 많은 채무자들이 부채를 줄이고자 최선을 다하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을 팔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수입을 부채 상환에 쓰고 지출을 가급적 줄인다.

 

그러나 하나의 경제에서 너무 많은 주체들이 동시에 부채 문제에 부담을 느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노력한다면, 이는 자기파괴적인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수백만 명의 주택 소유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너도나도 집을 내놓는다면, 또는 채권자들에게 담보 잡힌 집을 매각하기 위해 내놓는다면, 그 결과는 대규모 ‘집값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중략)

 

소비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인다면, 경기는 침체되고 일자리가 사라지며 이는 다시 소비자들의 부채 부담을 무겁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경제 전체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것이다. (중략) 어빙 피셔는 조금은 애매모호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짤막한 문장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채무자들은 더 많이 갚을수록 더 많이 빚지게 된다.”

 

피셔는 이것이야말로 대공황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이며, 전례 없이 높은 부채로 인해 자체적으로 낙하하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미국 경제가 위기를 맞게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아래의 그림이다. 일본의 저축률과 투자율이 1989년을 기점으로 함께 떨어지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

 

일본의 저축률과 투자율 추이. 출처: 세계은행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다. 투자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저축률이 왜 떨어질까? 

그 이유는 ‘나의 지출은 남의 매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함께 저축을 시작하고 투자를 줄이면 경제 전체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이게 다시 가계 소득을 줄이는 악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줄어든 소득 때문에 저축은 이전보다 더 줄어들게 된다.

 

즉, 아래와 같은 악순환이 반복된다.

 

가계 지출 축소→기업 매출 감소→채용 기피/투자 축소→가계 소득 감소→가계 지출 축소

 

결국 이 과정에서 가계와 기업의 대차대조표는 더 악화된다. 이게 바로 1990년 이후 지금껏 일본이 겪고 있는 ‘대차대조표 불황’의 핵심 내용이다.

 


2008년 이후 미국은 왜 장기불황을 겪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진 독자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은 1990년 일본 못지 않게 버블이 심했고 자산가격의 하락 폭도 컸는데, 왜 미국 경제는 지금 강한 회복세를 보이느냐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정책당국의 대응’에 있었다. 

 

자산가격의 ‘버블’을 막지 못했던 것은 1990년 일본이나 2007년 미국 모두 같았지만, 버블 붕괴 이후의 대처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의 대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다. 아래의 그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한 미국의 실질정책금리와 경제성장률의 관계를 보여준다.

 

미국 실질정책금리와 경제성장률의 관계. 출처: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준


여기서 실질정책금리란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정책금리에서 소비자물가를 뺀 것으로, 경제 주체들이 체감하는 금리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처럼 실질정책금리가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반대로 2009년 이후처럼 실질정책금리가 하락하면 경제성장률이 반등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회복은 미국 연준이 정책금리를 공격적으로 인하하고 또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본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가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해 경기를 부양했기 때문이다. 사진=연방준비제도이사회 페이스북


그런데 미국 연준이 2008년 이후 이렇게 적극적인 금리인하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 이후 일본 중앙은행의 실책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또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즉, 미국 입장에서 1990년대 일본의 경험을 열심히 연구해 큰 위기를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 

 

2002년 미국 연준의 경제학자들이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자.**

 

1989년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만 공격적으로(200bp 이상) 내렸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해, 버블이 붕괴되던 1990년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즉각 2% 이상 인하했다면 일본경제가 그토록 긴 시간 불황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왜 이런 주장을 펼치는지 이해하기 위해, 조금만 더 보고서 내용을 더 인용해보자.

 

예를 들어 지나친 경기부양으로 인플레가 발생하면 긴축으로 전환하여 해결할 수 있지만, 너무 경기부양이 늦거나 규모가 약해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영역에 진입하면 경제를 다시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방법이 마땅찮다. 따라서 자산시장의 버블이 붕괴될 때에는 일단 시장 참가자들의 미래 경제에 대한 예상을 바꿔놓을 정도로 공격적인 경기부양이 필요하다.

 

연준의 통화와 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모습. 사진=연방준비제도이사회 페이스북


즉, 자산가격의 거품이 터지면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때에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한데, 이 타이밍을 놓치면 경제에 아주 큰 위험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아래의 그림은 1990년 버블 붕괴를 전후한 일본의 실질정책금리와 경제성장률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1990년대 초반 일본의 실질정책금리가 매우 높은 수준(2%)을 유지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는 2008년 당시 실질정책금리를 -4%까지 떨어뜨린 미국 연준의 정책과 대비된다. 일본 중앙은행 당국자들이야 “거품을 걷어내 경제를 건전화하려 했을 뿐”이라고 강변하겠지만, 이후 역사가 증명하듯 이는 명백히 잘못된 정책이었다. 

 

왜냐하면 대차대조표 불황을 유발해버리면 ‘디플레이션’ 문제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폴 크루그먼 교수가 지적했던 바와 같이, 모두 보유한 자산을 계속 줄이려 노력할수록 경제의 수요가 줄어들고 이 결과 다시 물가가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경제가 디플레에 빠져들면, 장기화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통화정책이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물가가 마이너스 상황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금리를 아무리 낮춰봐야,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것)가 더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90년대의 일본으로, 정책금리가 1990년대 중반 이후 0%까지 떨어졌음에도 경기불황이 지속된 바 있다. 

 

물론 일본은행만이 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 이후 일본경제는 사실 꽤 여러 가지 ‘면’에서 운이 없었다. 다음에는 일본은행을 위한 변명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일본 실질정책금리와 경제성장률의 관계. 출처: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준


*폴 크루그먼(엘도라도, 박세연 옮김, 2013년),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70~72페이지.

**Alan Ahearne; Joseph Gagnon; Jane Haltmaier; Steve Kamin(2002년), “Preventing Deflation: Lessons from Japans Experience in the 1990s”, International Finance Discussion Papers.​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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