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채널 중 하나인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의 주인공 ‘캐리’가 바뀌었다. 그동안 우리가 캐리라고 알고 있던 진행자 대신 새로운 캐리가 진행을 맡게 된 것이다. 제작사인 캐리소프트는 별 설명 없이 ‘개편’이라는 말로 기존 캐리와 새 캐리를 인사시킨 뒤 2대 캐리 체제를 선보였다.
캐리소프트는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시작으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유명세는 물론이고 IPTV에 채널을 만들고, 뮤지컬 공연도 이뤄졌다. ‘캐리언니’는 지상파TV의 어린이 방송에도 진출했다. 당연히 관심은 캐리를 중심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캐리는 구독자 140만 명에 달하는 성공한 유튜브 크리에이터였고, 콘텐츠 그 자체로 큰 인기를 누린 독립 채널의 대표격으로 꼽혔다. 이제 캐리는 하나의 비즈니스로 잡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캐리소프트와 캐리, 둘의 결별은 묘하게도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이 걱정하던 부분이다. 당장 이 유튜브 콘텐츠가 법적 권리를 떠나 누구의 것인가 하는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 기획된 MCN, 주인공과 제작자가 다른 콘텐츠의 출발
먼저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이 그동안 움직여 온 시스템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유튜브 콘텐츠라고 하면 크리에이터 1인이 직접 제작하는 경우를 떠올린다.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서 뜬 대부분의 크리에이터가 개인 관심사나 취미활동에서 소박하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 놓고 시작했다가 성장하면서 점점 촬영과 녹음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이후 이른바 ‘대박’을 치면 투자를 받거나 MCN(멀티 채널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일종의 1인 미디어 기획사에 합류하는 게 일반적이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좀 달랐다. 애초 이 채널은 캐리소프트라는 회사에서 기획했고, 우리가 캐리라고 알고 있는 강혜진 씨는 단순 출연자, 즉 직원이었다. 팬들에게도 강혜진이라는 이름이 낯설 정도로 캐리의 캐릭터는 확실히 잡혔고, 이 회사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그동안 대부분의 채널들이 진행자 자체가 채널의 주인이었다면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회사가 나서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적절한 출연자를 내보내 채널을 운영하는 식이다. 지금이야 이런 식의 모델이 나오는 게 그리 이상한 그림은 아니지만 이 채널이 처음 소개되던 2014년 즈음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후 캐리소프트는 케빈이나 앨리 등 다른 캐릭터를 내놓으면서 채널을 확장했다. 지금은 다섯 개의 프로그램이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고, 관련 캐릭터 사업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이 점점 유명세를 타면서 이 ‘앞선’ 구조는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의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럼 이 캐리라는 캐릭터는 누구의 것인가’다. 그 답은 결국 캐릭터는 회사의 것이라는 단순한 답으로 마무리됐다. 애초 강혜진 씨는 출연자일 뿐이었고, 대표나 공동창업자처럼 회사에 특별한 권한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결국 이번 개편을 통해 캐리는 ‘퇴사’를 하는 셈이 되었다. 아직 회사에 남을지, 다른 일을 찾는지, 혹은 새로운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지에 대한 사정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강혜진 씨는 더 이상 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 기획된 콘텐츠의 가장 큰 리스크, ‘주인공의 하드캐리’
캐리소프트는 캐리를 ‘2대 캐리’와 어색하게 인사시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물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물러나는 1대 캐리는 마지막 방송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새 캐리에 집중되어 있고, 떠나는 캐리는 자리조차 밖으로 밀려나 있다. 시청자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유튜브 채널의 댓글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고, 아이들에게 새 캐리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 글이 올라왔다. 채널 구독을 끊는다는 댓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사실 이렇게 캐릭터를 물려주는 건 그리 낯선 일도 아니다. ‘뽀뽀뽀’의 ‘뽀미 언니’도 대를 물려가며 이어졌다. 캐리소프트도 이런 구조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뽀미 언니는 그 자체로 뽀뽀뽀의 캐릭터라는 인상이 강했지만 캐리는 방송 구조부터 그동안의 활동 등을 봤을 때 강혜진 씨의 또 다른 이름처럼 비쳤다. 사실 이름도 상표라기보다 대중적으로 만날 수 있을 만큼 익숙하기도 하다.
현재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방송은 음악 시장이나 방송 시장이 밟아온 과정을 그대로 따라 압축 성장하고 있다. 이름의 소유권이 아티스트에 있느냐, 회사에 있느냐에 대한 문제는 꽤 오랜 갈등 요소이기도 하다. ‘신화’는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면서 이름을 놓고 갈등을 치른 바 있다. 수년간의 치열한 법적 공방을 펼친 뒤 신화는 이름에 대한 권리를 찾아왔다.
이때도 근거는 대중들이 멤버들을 신화라는 이름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소유권이 본인들에게 있다는 점이었다. 팬들은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캐리는 그에 비해 별 문제 없이 2대 캐리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또 다른 캐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캐리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혼란이 어른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인데,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 시청자들이 캐리에 기대한 건 뭐였을까
아직 캐리가 왜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캐리소프트의 유튜브 채널은 혼란에 빠진 시청자들의 반응이 뒤덮고 있다. 구독을 끊겠다는 댓글은 흔하고 ‘캐리가 계약직이었고, 재계약하지 않아서 짤렸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여느 방송 프로그램이었다면 오히려 그 파급 효과가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라디오는 1 대 다수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전통 채널인데, 라디오 진행자 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아쉬움이 따르긴 하지만 그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유튜브 채널은 조금 다르다. 방송의 주체가 채널의 소유권자라는 인식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틀을 깨고 주인공이 ‘사실은 출연자’라는 강력한 충격파를 던졌다. 어쨌든 캐리소프트 역시 영상이 출연자들 중심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데 대한 우려를 꾸준히 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캐리소프트는 채널을 다섯 개로 늘리고, 캐빈이나 앨리 등 캐릭터를 더했다. 또한 누가 연기하든 관계 없는 인형 연기자도 투입했다. 일반적인 TV 채널들처럼 프로그램 포맷이 주도권을 쥐는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기존 방송과는 분명 다른 포맷이지만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비롯해 캐리소프트의 콘텐츠가 애초 방송과 외주 기획 콘텐츠 형태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로 보인다. 캐리소프트는 최근 캐빈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바 있다. 캐빈의 인지도는 캐리에 비해 적기 때문에 그 충격도 적었던 듯하지만 ‘캐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캐리의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의 사례는 MCN 업계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이용자들이 유튜브에 바라는 게 개개인의 캐릭터였는지, 아니면 기획과 콘텐츠 그 자체였는지에 대한 시험대에 오르는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플랫폼’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지난해 아프리카TV와 BJ들의 갈등을 계기로 한 차례 시험대에 올랐던 바 있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은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MCN의 등장 이후 플랫폼은 더 개방됐고, 채널을 만드는 건 더 쉬워졌다.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채널이 또 다른 콘텐츠 소비처로 자리를 잡으면서 기획과 자본이 들어오고, 결국 채널의 소유권과 출연자가 같지 않은 사례로 만들어지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어른들의 고민과 충격이 아이들의 콘텐츠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안타깝긴 하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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