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고등학교 동창 4명이 ‘카라스 플라워스’라는 밴드를 결성합니다. 95년 공연을 시작한 그들은 97년 ‘더 포스 월드(The Fourth World)’라는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전형적인 얼터너티브 록이었습니다. 음반사와 멤버들의 큰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음반은 실패했습니다. 5000장 정도 팔린 게 고작이었지요. 실망한 멤버들은 98년 음반 계약을 깨고 대학에 진학합니다.
카라스 플라워스의 유일한 싱글 Soap Disco. 당대에 유행하던 록 사운드를 담았지만 결과는 미지근했다.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애덤 리바인과 기타리스트 제시 카마이클은 함께 고향 캘리포니아를 떠나 파이브 타운 칼리지(Five Towns College)에 진학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도시를 지배하는 흑인 음악을 접합니다. 덧붙여서 제시 카마이클은 키보드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트렌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음악 스타일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00년 그들은 카라스 플라워스를 재결성합니다. 이번에는 흑인 음악에 영감을 받은 애덤 리바인과 제시 카마이클의 주도로 말이죠. 그들이 만든 곡은 전혀 달랐습니다.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이 섞인 독특한 느낌의 팝이었습니다.
신생 옥톤 레코드의 임원 벤 버크만은 음반사를 이끌 신인을 찾던 중 카라스 플라워스에서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카라스 플라워스의 새 음악을 들은 벤 버크만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 직장 워너에 있을 때 들었던 그들의 음악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죠. 록 밴드가 흑인음악 팝 밴드가 된 겁니다.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밴드에게 딱 두 가지 조언을 합니다. 첫 번째, 기타리스트를 영입해서 보컬이 노래에 집중할 수 있게 할 것. 두 번째, 밴드 이름을 바꿀 것. 밴드는 기타리스트 제임스 밸런타인을 영입합니다. 이에 맞춰 밴드 이름도 바꿉니다. ‘마룬 파이브’였습니다.
마룬 파이브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밴드입니다. 록 음악이 죽은 시대. 나아가 밴드 음악이 죽은 시대인데요. 마룬 파이브는 여전히 매 앨범마다 빌보드 10위권 내에 드는 히트곡을 냅니다.
처음 그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영국 록 음악 팬이었던 저는 록 음악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유행에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든 거지요. 특히 리듬이 아쉬웠습니다. 정박의 록 비트보다는 그루브 있는 느낌을 원했습니다. 막상 제가 원한 그루브로 가득한 흑인 음악을 들을 때는 록 기타의 강한 느낌이 그리웠습니다. 마룬 파이브의 ‘디스 러브(This Love)’를 듣자 마치 머릿속에 그리던 사운드를 실제로 들은 듣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룬 파이브의 성공적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 곡 디스 러브에 반한 존 메이어가 자신의 공연에 마룬 파이브에 초대했고 이후 마룬 파이브는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게 저뿐만은 아니였던 듯합니다. 마룬 파이브의 1집 ‘송스 어바웃 제인(Songs About Jane)’은 큰 성공을 거둡니다. 디스 러브뿐 아니라 ‘하더 두 브리드(Harder to Breathe)’, ‘선데이 모닝(Sunday Morning)’, ‘쉬 윌 비 러브드(She will be loved)’ 등의 곡이 히트했습니다.
하지만 트렌드는 바뀌는 법이죠. 팝의 유행은 더욱 빨리 바뀝니다. 더욱 전자음악에 가까워진 2집과 달리 하드한 밴드 록 음악을 강조한 3집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습니다. 마룬 파이브는 상업적으로 조금씩 내리막을 걷는 듯했습니다.
그때 밴드를 구한 곡이 등장합니다. 바로 ‘무브스 라이크 재거(Moves Like Jagger)’입니다. 당시 애덤 리바인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 중이었는데요. 오디션 프로에서 마룬 파이브가 발표한 곡이 바로 이 곡이었습니다. 또 다른 심사위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완벽한 댄스 팝입니다. 밴드 멤버보다는 프로듀서, 전문 작곡가, 연주자 들의 의견이 많이 들어간 곡이었지요. 이 노래는 밴드 역대 최고의 성공을 거두며 마룬 파이브를 다시 가장 뜨거운 밴드로 만들었습니다.
댄스 음악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섞어 큰 성공을 거둔 마룬 파이브의 싱글 ‘Moves Like Jagger’.
록적인 어프로치에 집중했던 3집의 실패와 오디션 프로에서 발표한 댄스 팝 싱글의 메가히트로 요약되는 3집 활동이 이후 마룬 파이브를 결정지었습니다. 초기 마룬 파이브의 음악은 스티비 원더나 프린스가 연상되는 흑인 밴드 음악이었습니다. 애덤 리바인은 보컬이었을 뿐만 아니라 작곡을 책임지는 사람이었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사운드는 어디까지나 밴드 음악이었습니다.
무브스 라이크 재거의 성공 이후 그 균형이 무너집니다. 4집 ‘오버익스포즈드(Overexposed)’와 5집 ‘브이(V)’는 아예 일렉트로닉 팝 음악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기타와 베이스 소리가 줄어듭니다. 그 사이를 전자음이 채웁니다. 알앤비 아티스트 피제이 모튼(PJ Morton)이 멤버로 추가되지요. 여전히 작곡은 애덤 리바인이 담당합니다. 사실상 팝 솔로 음악이 된 셈입니다.
애덤 리바인은 솔로 활동으로도 성공했습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수록곡인 ‘로스트 스타(Lost Star)’가 바로 그 곡인데요. 이 곡은 마룬 파이브 곡 못지 않은 대성공을 거두며 솔로로서 애덤 리바인을 널리 알렸습니다.
애덤 리바인의 솔로곡 Lost Star.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하면 보컬 애덤 리바인의 저력을 보여줬다.
마룬 파이브는 사실상 마지막 남은 히트 밴드입니다. 마룬 파이브의 커리어와 음악은 역설적으로 밴드 음악이 죽은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첫 번째로 음악 장르 유행이 변했습니다. 마룬 파이브는 일렉트로닉과 알앤비, 힙합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밴드 초기 정체성인 얼터너티브 록은 사실상 없습니다. 마룬 파이브는 상업적으로 옳았습니다. 알앤비 그리고 일렉트로닉으로 마룬 파이브는 음악계를 평정했습니다. 록이 흑인음악과 일렉트로닉에 패배하는 21세기 음악의 조류를 마룬 파이브가 대변한 셈이죠.
두 번째,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는 ‘음악 제작 방식’으로서 밴드의 수명이 다했습니다. 지금 마룬 파이브는 밴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보컬의 비중이 높습니다. 자신이 통기타 하나 들고 불러도 ‘로스트 스타’ 같은 히트곡을 낼 수 있을 정도지요. 초기 마룬 파이브를 발굴한 벤 버크먼은 애덤 리바인이 기타를 놓고 보컬에 집중하면 스타가 될 거라고 공언했습니다. 그의 말은 맞았습니다. 애덤 리바인은 시대를 상징하는 보컬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량의 전문가들이 투입됩니다. ‘무브즈 라이크 재거’ 이후 마룬 파이브의 음악에는 대량의 작곡가와 연주자가 투입됩니다. 멤버가 6인으로 많아졌습니다. 멤버 외에도 대량의 연주자와 스태프들이 투입됩니다. 곡마다 팝 프로듀서들이 곡을 주도합니다. 철저한 협업과 분업을 통해 거대한 음악을 만듭니다. 뛰어난 보컬 한 명과 대량의 스태프. 전형적인 팝 음악 제작 방식입니다. 밴드 멤버들이 곡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지요.
최근 마룬 파이브가 켄드릭 라마와 함께 발표한 싱글 ‘Don’t Wanna Know’. 사실상 밴드 음악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저스틴 비버가 유행시킨 팝 음악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느낌이 강하다.
마룬 파이브의 성공은 밴드 음악의 죽음을 보여줍니다. 마룬 파이브는 원래 실패한 록 밴드였습니다. 그들이 성공한 이유는 밴드 음악이 사라져가는 시대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장르를 바꿨습니다. 그 다음에는 곡 제작 방식마저 바꿨습니다. 덕분에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밴드가 밴드답지 않아야 성공을 하는 시대. 어쩌면 밴드 음악이 클래식, 재즈처럼 유행을 선도하지 못하는 음악이 되었다는 의미일지 모릅니다. 밴드음악 팬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나의 음악이 사라지면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이 등장합니다. 그게 어쩌면 섭리고, 운명일지 모르지요.
밴드 음악의 죽음을 알리는 밴드, 마룬 파이브였습니다.
※필자 김은우는 모바일 교육 미디어 앱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입니다. 미국에서 교직을 이수했습니다. 원래는 락덕후였으나 미국에서 소수 인종으로 살아본 후 흑인음악 덕후로 개종했습니다. 현재는 학부모에게 교육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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