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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이 뽑은 올해의 ‘취향저격’ 앨범 Top10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들어볼만한 앨범 리스트

2017.02.20(Mon) 17:56:02

욕심이 많아 손이 가는 대로 많은 글을 썼습니다. 어떤 글을 잘 쓸 지 몰라서였기도 합니다. 메디컬 에세이, 일상 에세이, 책 평론 이외에도, 시와 연애 소설과 여행 산문을 썼고, 영화 평론과 음악 평론을 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도저히 다 기록할 도리가 없어 음악 평론은 가장 뒷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음악을 기록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고, 또, 시간이 지나면 반추하기 위해 매년 그 해 좋은 음악을 남겨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6년은 제법 지났지만, 이제야 짬이 생겨 기록해봅니다. 최대한 가벼운 느낌으로, 올해는 트랙이 아니라 앨범으로 기록합니다. 써놓고 보니 취향은 점점 조용하고 고요한 음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엿보는 재미가 있으시길.

 

10위. 넌 아만다. 열대야.

 

모던 록 그룹 넌 아만다의 ‘열대야’ 앨범


누구도 좋다고 안 하고, 심지어 아무도 모르는데 그냥 괜히 추천하고 싶은 앨범이 가끔 있지 않나요. 이 앨범은 연주가 뛰어난 것도, 대단한 감성을 담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밴드의 음악을 듣다 보면 초심으로 돌아간 델리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을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그 옛날 묵묵하고 담담하지만 왠지 서글퍼지던 모던록의 느낌을 다시 떠올리기에 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 앨범은 초기 모던록으로 회귀한 듯 감각적인 멜로디를 보장할 것입니다.


9위. 셀린셀리셀리느. 꿈, 막다른 바다, 바람을 기다리다.

 

앨범을 걸자마자, 혼자 기타를 치는 쓸쓸한 목소리의 남자는 다짜고짜 ‘꿈, 막다른 바다’라고 읊조립니다. 이 가사와 음률을 들으며 또 셀린셀리셀리느의 앨범이 세상에 나왔구나 직감합니다. 앨범을 끝까지 들어도 그의 목소리와 기타 한 대의 선율밖에 들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쓴 가사, 그리고 자기가 쓴 곡과 감정을 완벽히 담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한 올도 빼놓지 않으려는 앨범을 저는 사랑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말미의 ‘그대, 나의 천국’이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음울한 단조와 가사가 유독 귀에 들어오는 트랙입니다. 여담인데요, 그가 소아과 의사이며 저와 같은 공중보건의 시절에 솔로 음반으로 데뷔했다는, 조금 놀라운 사실.

 

8위. O.O.O. Home.

 

O.O.O. 앨범 ‘Home’


진짜 잘 만든 앨범입니다. 신인이지만 좋은 멜로디와 그를 뒤받치는 합이 아주 잘 담겨 있습니다. 크랜필드류의 모던락인데 크랜필드가 등장했을 때보다 훨씬 강렬한 것 같습니다. 듣고 있으면, 젊은 재능으로 가슴이 설렙니다. 중간중간 미니멀한 편곡이 곡을 잘 살려내고 있지만, 이 앨범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근원적으로 상큼하고 절묘한 멜로디, 그와 잘 어울리는 보컬입니다. 올해의 웰메이드 신인입니다.

 

7위. 루나. Free somebody.

 

작년 SM은 제 취향의 노래들을 만들어댔습니다. 트랙으로 꼽자면 무수히 많겠지만, 앨범으로는 이 앨범 하나만 꼽겠습니다. 개인적으로 SM이 지금까지 이룩해온 EDM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앨범 같습니다. 타이틀곡 ‘프리 섬바디(Free somebody)’부터, ‘킵 온 두잉(Keep On Doin)’과 ‘갤럭시(Galaxy)’ 등 트랙의 만듦새는 고루 훌륭하고, 루나의 보컬도 태연과 함께 SM을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사운드와 절묘한 코드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진행이 돋보이는 올해의 SM 앨범입니다.

 

6위. 못(MOT). 재의 기술.

 

못(MOT)의 앨범 ‘재의 기술’


이이언이 솔로 활동을 하다가, 8년 만에 밴드를 모아 못(MOT)의 새 앨범을 낸 것만으로도 올해의 성과라고 꼽을 만합니다. MOT의 사운드에는 그 옛날 청년 시절의 제가 좌절하고 방황하던 시기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요. 2004년 발매된 1집 ‘날개’는 천 번쯤 들었을 정도입니다. 이번 앨범에서도 당시의 힘겨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유의 불협화음, 그 화음에서 나오는 불안감, 차라리 시라고 부를 수 있는 가사, 이이언의 음울한 목소리가 꼭꼭 담겨 있습니다. 발매만으로도 가장 저를 흥분시켰던 앨범입니다.


5위. 이상의날개. 의식의 흐름.

 

로로스가 떠난 포스트록계는 공허했으나, ‘이상의날개’가 아직 건재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포스트록의 계승자답게 장엄하고, 격정적이며, 연약하고, 웅장합니다. 84분의 러닝타임 동안 앨범의 표지 같은 우주에 단 하나 있는 핵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그것이 연약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우주의 눈처럼 절절한 기분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상의날개가 로로스를 능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들이 국내 포스트록계에서 최전방에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4위. 9와 숫자들. 수렴과 발산.

 

이 명단에서 빼놓기에는 '수렴과 발산'은 너무 잘 만들어진 앨범입니다. 그들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바도 명확하고, 청자까지 십분 고려하고 있는 좋은 팝을 하는 그룹입니다. 이 앨범은 계속된 싱글의 총합체인지라, 하나하나 빠지는 트랙이 없습니다. 처음 결성 때보다 음악적으로 세련되어진 것도 분명하지만, 사운드와 가사에서 더벅머리로 독한 소주를 마실 것 같은 옛 감성을 놓지 않는 점도 개인적으로 높게 사는 부분입니다. 우리에게 인디 팝의 발전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3위. 김윤아. 타인의 고통.

 

김윤아의 앨범 ‘타인의 고통’


그녀야말로 음악가가 아니라, 예술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영혼을 드러내고 싶지만, 그것의 표현 경로가 하필 음악이었다는 느낌. 건조하고 꿈결 같은 목소리와 잘 만들어진 애절한 멜로디를 이용해 독보적인 자아를 구축해내고 맙니다. 때로는 표독하고, 때로는 한없이 고독한 기분. 청자들을 그리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음악 안에서 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2위. 이랑. 신의 놀이.

 

어떤 음악을 들으면, 이 사람이 음악을 하려고 한다기보다는 그냥 이 사람의 천재성이 음악이 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문학, 회화, 기타 어떠한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청각적 자극이 주는 특유의 쾌감 때문에 음악적인 천재성은 유독 돋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기타와 현악기라는 미니멀한 구성으로도 청량한 보컬의 특이하고 충격적인 가사 전달과 노랫말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비어 있는 듯한 현학기의 적절한 사용이 이랑의 천재성을 돋보이게 해준달까요. 특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의 서사적 감동은 올해의 음악적 순간에 꼽을 만합니다. 이런 음악이야말로 자기표현적 예술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멋진 음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모든 명단을 그냥 지나치더라도, 무려 6분 57초나 되는 독백인,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라는 트랙은 꼭 귀 기울이고 집중해 들어보시길. 감성이 너무 가슴을 긁어서, 추천하지 않고는 못 견딜 트랙입니다.

 

1위. 이호석. 이인자의 철학.

 

이호석의 앨범 ‘이인자의 철학’


무심코 이 앨범을 걸었다가 깜짝 놀랐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점, 한 찰나 버릴 것이 없는 완벽한 앨범이었으니까요. 철학자의 사유와 고독한 이인자의 감정을 짧은 가사로 온전히 담아낸 것도 좋았습니다만, 음악 자체도 많이 고심한 듯 안정적이며, 때론 격앙된 상한선까지 담긴 점 때문에 몇 번이고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외로워해야 하는 걸까요. 어떤 음악은 왜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그 쓸쓸함을 상기시키는 걸까요. 한 해 동안 저를 가장 잔잔하고 고독하게 만들어 주었던, 이호석씨의 앨범을 1위로 꼽겠습니다. 

 

기타 언급하고 싶었던 앨범은 이아립, 권나무, 사비나앤드론즈, MAAN, 정새난슬, 곽진언 등등입니다. 레드벨벳과 우주소녀, 오마이걸, 여자친구 등등은 이번 해에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엿보는 재미가 있으셨기를 바랍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만약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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