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이제 더 이상 경각심을 위한 구호가 아니다. 재난급 규모의 지진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9월 경주를 시작으로 제주도, 광주, 대전에 이르기까지 리히터 규모 1.5~3.0의 경미한 지진들이 500회 이상 이어졌다.
지진 소식이 잇달아 전해지자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진 대비가 철저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강진 발생시 괴멸적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보일러를 활용한 온돌 문화가 발달했다.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에너지 공급원이 액화천연가스(LNG)다. 흔히 도시가스로 불리는 이 에너지원은 비교적 저렴하고 편리해서 주요 도시에 공급망이 잘 구축돼 있다.
그렇지만 대규모 지진 발생 시 보일러가 뇌관이 되어 가스가 폭발하는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경주에서 5.8 규모의 지진 발생 시 수많은 보일러가 작동을 멈춘 점이 주목받았다. 조사 결과 특정 회사의 보일러만 작동을 멈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회사 측은 20년 전 부터 소비자 안전을 위해 지진감지센서를 장착해왔다고 밝혀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귀뚜라미보일러다. 귀뚜라미보일러는 원가 상승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20년 전부터 자사 제품에 지진감지센서를 꾸준히 장착해 왔다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한편, 이를 소재로 한 TV CF까지 제작하며 홍보에 나섰다.
그렇다면 이제 귀뚜라미 이외의 보일러 브랜드도 지진감지센서 탑재를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비즈한국’ 취재 결과 경동, 린나이, 대성쎌틱 등 경쟁사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진감지센서가 없어도 충분히 지진 발생시 사고 위험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근거는 KS 인증에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출시되는 모든 보일러는 의무적으로 KS 인증을 받아야 한다. 가스 보일러 관련 KS 인증을 받기 위한 여러 가지 항목에 대한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내진동성에 대한 규정이 대단히 까다롭다고 한다.
가스보일러 관련 KS 인증인 ‘KSB8101’을 보면 진동폭 5mm로 분당 600회가량 상하좌우로 30분간 테스트를 거친 이후에도 가스가 새지 않아야 한다. 보일러 관련 전문가는 이 같은 진동을 지진 규모로 환산할 경우 리히터 규모 6.5 정도를 충분히 견디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리히터 규모 6 이상부터는 진동으로 인한 보일러 고장이 문제가 아니라 건물 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보일러 관련 KS 규격에서 진동 시험이 까다로운 이유는, 대부분 KS 규격이 일본의 JIS 규격을 참고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지진이 빈번한 일본에서조차 일부 산업용 보일러를 제외하면 지진감지센서가 장착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일본은 온돌식 보일러보다 순간 온수기를 사용하며 탁자형 전기 온열기인 ‘코타츠’와 같은 일본 특유의 난방 문화가 발달해 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보일러 내부의 부품 이탈에 의한 가스 누출보다는 배관 파손에 의한 누출이 더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어디서든 점화만 되면 대규모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대부분 가스 회사들은 일정 규모 이상 지진 발생 시 가스 공급을 자동으로 중단하는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령 한국도시가스공사의 경우 리히터 규모 6.5 이상 발생 시 가스 공급을 차단한다.
한 보일러 업체 관계자는 “보일러 최대 시장인 유럽은 물론 일본조차 가정용 보일러에 지진감지센서가 달린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KS 규격에 맞게 제조된 제품이라면 내진설계 및 가스 폭발에 의한 사고 위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귀뚜라미보일러 측은 지진감지센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귀뚜라미보일러 관계자는 “모든 제품은 KS 규격 인증을 받는 것이 당연하며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지진감지센서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지진 등과 같은 이유로 보일러가 흔들릴 때 연통 같은 곳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국가스안전공사 내진TF 신승용 팀장은 “단정 지어 말하기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라며 “지진감지센서가 사고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여 줄 수도 있지만 비용까지 고려하면 이는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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