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나온 한국의 범죄영화는 대개 뻔하다. 재벌이 등장하고, 재벌의 뒤처리를 해주는 조폭이 있다. 검찰과 언론은 재벌과 하나의 카르텔을 이룬다. 주인공은 꿈쩍이지 않는 상대 앞에서 좌절하지만 반전 있는 한 방으로 상대를 무너뜨린다.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인 조태오는 무너졌고,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에서 대통령 후보 강동윤은 낙선했다. 영화 ‘더 킹’ 역시 위와 같은 정치범죄드라마다.
‘더 킹’은 왕에 관한 이야기다. 그 왕은 검찰이다. 부패의 근원이자 막후에서 한국의 정·재계를 좌지우지하는 정우성은 스스로를 왕이라 칭한다. 검찰로서 직업정신을 지키려는 조인성에게 촌스러운 정의감을 버리고 역사에 올라타라고 주문한다. 한 달 60만 원 밖에 되지 않는 연금으로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투사와 고초를 겪은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언급하며, 정신 차리라고 일갈한다.
검찰의 중심에 서 있는 한강식은 스스로를 역사라고 말한다. 사건을 조작하고, 터트리고, 대통령을 바꾸는 이 세계의 살아있는 권력이자 역사 말이다. ‘더 킹’에서 검찰은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정치 엔지니어링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작동한다.
현직 검사들이 보면 당황할 만하다. 사법고시를 패스한 현대의 율사라고 할지언정 모두가 과로에 시달린다. 검사 1인당 해결해야 하는 사건은 한 달 최소 150개에서 300개다. 검사가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다는 기사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현실 세계에서 검찰의 악행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폰서 검사 한두 명의 파면은 있었을지언정 검찰 조직 개혁은 없었다. 전관예우를 받은 검사와 판사는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았으나 검찰은 여전히 그들을 예우했다. 급제를 한 천재소년에서 부역자로, 박근혜 정권의 아이히만이 되어버린 우병우는 어쨌거나 후배 검사들에게 의전을 받았지 않았는가.
누구나 왕을 꿈꿀 수 있지만, 왕이 될 수는 없다. 검찰은 현실 세계의 강력한 권력으로서 실제로 왕을 꿈꿀 수 있다. 많은 정권이 검찰 개혁을 공약으로 가지고 나왔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반면 왕을 꿈꾸며 부정을 저지른 검사는 대부분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끊임없이 검사들에게 권력의 시녀가 되어 아이히만이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스스로를 역사로 외친 한강식은 몰락했다. 그에 반해 아무도 보지 않는 일을 한다고 폄하되던 박태수의 선배 검사와 검사의 본분을 지키던 안희연 검사는 검찰의 중심으로 승진했다. 한없이 초라해 보이던 체스판의 폰(Pawn·졸병) 같던 검사들은 승진했고, 킹은 몰락했다. 스스로를 역사라 참칭한 자들은 결국 몰락하고, 공동체의 규칙을 준수하고 최선을 다한 사람은 역사가 된 셈이다.
영화는 말한다. 화려한 킹이 아닌 ‘평범한 장삼이사’가 역사를 만든다고. 2016년의 촛불은 말한다. 평범한 시민이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2017년은 스스로를 역사라고 말하는 소수가 아닌 일상에서 역사를 써내려가는 많은 사람을 위한 해였으면 좋겠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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