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에 따르면 나는 ‘기생충 싱글’이다. 기생충 싱글이란 부모의 집에 얹혀살며 기초적인 생활을 의존하는 성인 비혼자를 가리킨다. ‘싱글’이란 단어를 제거해도 무방하다. ‘기생충’과 다름없다. 직업은 있다. 돈도 번다. 하지만 독립에 따른 기초 생활비를 감당할 몫은 없다. 최소 하루 두 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무료 숙식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기생충 싱글에서 ‘기생충’을 소거한 삶을 감당할 수 있는가. 식사와 월세만 챙겨도 빠듯하리라. 그런고로 독립은 하지 않는다. 결혼도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부모의 인프라에서 벗어나 독립하거나 결혼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독립과 결혼. 할 수 없는 것인가, 하기 싫은 것인가. 나이만 들었지 어른은 되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에도 불구하고, 1도 생각하지 않고 답한다. 할 수 없어서 못하고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결혼하지 않는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여력은 없고 단순하게나마 주위 싱글들에게 물어보니 ‘자의적 싱글(Single by Choice)’보다 ‘타의적 싱글(Single by Force)’이 대부분이다. 자발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비혼인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결국 결혼 얘기다.
어느 비혼 집단이든 레퍼토리는 비슷하다. 남성들은 가계에 보탬이 될 맞벌이 부인을 원한다. 여성들은 가사, 육아, 맞벌이에 시댁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남성들은 가사 분담을 제안한다. 여성들은 콧방귀를 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시간은 남성 40분, 여성 3시간 14분이며, 이는 5년 전보다 남성은 3분 증가하고 여성은 6분 감소한 결과이다. 5년 동안 3분과 6분이다. 통계청이 쓸데없이 장난하는 건 아니겠지.
다른 세상 이야기지만 베벌리 힐스에서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슈퍼 내니(Supper Nanny)의 연봉은 1억 원이 넘는다. 거기서 가사는 전문직이지만 여기서 집안일은 티도 안 난다. 그토록 꿀 떨어지는 구혜선과 안재현도 가사분담으로 싸우지 않는가. 남성들은 호의를 베풀듯 말한다. 자신은 합리적으로 가사를 분담할 것이라고. 여성들은 기가 찬다. 왜 가사와 육아는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가. 가사분담 운운하려면 정확한 지표가 필요하며, 그것이 이 사안의 합리적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가사 노동량은 돈으로 따져봐야 한다.
이 시점에서 사랑의 연속으로 결혼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형태이든 혼인이 경제계약인 점에 동의한다. 머리를 굴려본다. 가사를 연봉으로 따지면 얼마인가. 2016년 4분기 일본 드라마 최고 히트작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이야기를 잠깐 하자.
스물다섯 살,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미쿠리는 파견사원 이상의 일을 얻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학원을 졸업한 재원이지만 취업시장은 냉랭하다. 그런 미쿠리가 프로 독신남인 히라마사의 가사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게 된다.
미쿠리의 집이 시골인 다테야마로 이사를 가면서 어쩔 수 없이 가사 대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통보하던 날, 미쿠리는 자신의 망상을 히라마사에게 이야기하고 만다. 계약 결혼으로 가짜 부인이 되고, 지금처럼 급여를 받고 가사를 하며 히라마사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다(고용관계이므로 각방을 쓰고 급여에서 집세를 제외한다). 히라마사에게는 당황스러운 제안이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미쿠리와 계약 결혼이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확한 분석을 통한 숫자 데이터를 제시하며 미쿠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의 계산에 따르면 주부의 연봉은 340만 1000엔. 우리 돈으로 3500만 원 정도다. 어쨌든 미쿠리는 연봉 3500만 원 직장에 취업한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취집’이다.
미쿠리는 요즘 젊은 여성이 꿈꾸는 이상향일지 모른다. 스물다섯 살이다. 연봉이 3500만 원이다. 업무 시간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일에만 몰두할 수 있고, 하루 일이 끝나면 자신이 일궈낸 성취를 알아봐주는 직장 상사가 있다. 업무가 끝난 저녁이면 선물 받은 홍차를 상사와 나눠 마시며 평화로운 기분을 만끽한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일본의 대표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와 시인이며 사회학자인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를 읽다 보면 일본 젊은 여성들의 결혼 관념을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어린 여성들에게 결혼은 ‘사회생활 보장재’이다. 그들 생각에 남편은 여성에게 필수 요소이며 없으면 불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실력이 뛰어난 여성이 아니라면, 사회에 나가 경력을 쌓기보다 결혼을 통해 안정을 찾고 싶어 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평범한 여성이 평범하게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대체로 비정규직이며, 1년 혹은 2년이 지나 다시 생존 불안에 시달리느니 정규직 남자를 만나 뒷바라지 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가짜 결혼일지라도 히라마사 같은 남자와 저녁 식사 후 홍차를 홀짝이며 평화를 느끼는 미쿠리의 모습은, 이 각박한 사회에서 ‘사회생활 보장재’를 선취한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여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는 보는 이의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그러한 기능을 상기시키면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히트가 어느 지점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짐작이 간다. 나 역시 이 빤한 드라마에 빠졌다. 계약 결혼한 히라마사와 미쿠리의 이야기가 궁금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니 잠깐이지만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만약 독립과 결혼 중 선택하라면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사는 누군가 있어주는 결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결혼을 통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식후 홍차’와 같은 작은 평화다. 하지만 결혼 이후를 상상하면 ‘기생충 싱글’로서 누리는 소소한 여유마저 얻지 못하리란 불안한 예감이 든다.
결혼=평화로운 티타임. 결혼=생존불안이 없는 조용한 가사운영. 결혼=상호보완 체제로 삶의 질 향상. 이것은 드라마 속에서 나올 법한 결혼생활의 유토피아일 것이다. 이런 공식이 완벽히 성립되어 있는 결혼이라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기생충의 삶을 벗어던지고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면의 아이러니. 너무도 결혼이 하고 싶어서 도저히 결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앞에 두고 눈도 못 마주치는 여자아이 같은 걸까.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대상과 같은 거리를 공유한다.
여자아이에게는 그 남자아이가 너무 멀고, 나에게는 결혼이 너무 멀리 있다.
김나현 에세이스트
[핫클릭]
· [취준생일기]
설날 부엌에서 내 미래를 보았다
· [영화이입]
내 인생의 ‘해피엔딩’이란 어떤 결말일까
·
사지 않을 권리도 있다
· [취준생일기1]
나는 준비되지 않은 취준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