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석상에서 만난) 국가기술표준원 고위 관계자가 ‘핸드메이드가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더라고요. 애초에 전안법에는 저희 수공업자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습니다.”
지난달 말 시행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이 소상공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일부 규정의 시행이 1년 유예됐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핸드메이드 업계의 상황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많은 수공업자가 폐점을 선언하고 일부 프리마켓은 아예 취소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전안법은 ‘전기용품안전관리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을 통합한 것으로 전기용품에만 해당했던 KC인증서 비치 의무를 생활용품에까지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전안법에 따라 제조업자 또는 수입업자는 규정된 41가지 품목에 한해 시험기관의 인증을 받고 이를 제품에 표시하는 공급자적합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안법 제2조가 규정하는 품목에는 의류, 가방, 잡화 등 신체에 접촉되는 모든 섬유제품을 일컫는 ‘가정용 섬유제품’도 포함된다. 이 밖에 양초, 접촉성 금속 장신구, 가죽제품 등도 규제 대상이다. 위반 시 건당 최소 30만 원에서 최대 5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같은 종류의 원단도 색상이 다르면 추가 인증을 받아야 한다.
짧지 않은 인증 기간과 막대한 비용은 다품종 소량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핸드메이드 업계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재료를 소량 구매해 매번 다른 제품을 만들어내는 핸드메이드의 경우 전안법 준수를 위해선 제품을 만들 때마다 인증을 받아야 한다. 6가지 정도의 원단을 사용하는 맞춤 한복 한 벌의 경우, 원단 한 종류에 6만 원씩 총 36만 원의 인증비가 요구된다. 제품 가격보다 인증비가 더 나가는 셈이다.
KC인증 시험기관 중 한 곳인 피티(FITI)의 관계자는 “3가지 항목을 검사하는데, 한 종류의 원단 당 6만 원이며, 종류는 같되 색상만 다른 원단은 비용이 이보다 약간 낮다. 검사 기간은 5일 정도가 걸린다”고 설명했다.
핸드메이드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수제 향초를 제조하는 A 씨는 “다섯 항목 검사에 36만 원이 드는데, 향초를 만들 때마다 해야 한다. 일부 검사항목은 도저히 향초에 들어갈 리가 없는 성분”이라고 토로했다.
생활한복을 만들어 팔고 있는 허혜영 씨(여·32)는 “원단을 포함한 부자재 중 인증받은 제품은 거의 없다. 핸드메이드 종사자들은 제작부터 판매, 홍보까지 1인이 담당하고 있어 시간이 빠듯하다. 한 품목당 며칠씩 걸리는 인증은 너무 힘들다”며 “또 주문을 받은 후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객들이 인증에 필요한 시간까지 한없이 기다리려 하겠나. 인증 비용 일부를 지원해 준다 하더라도 전안법이 치명적인 이유”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한 번의 인증이 이렇게 복잡하니 작가들은 아무래도 사용하는 재료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며 “원단에서 안전에 문제가 되는 건 사실상 염료다. 차라리 염료 생산이나 수입 단계에서 검사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더 큰 문제는 전안법이 핸드메이드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다수 업계 종사자가 이에 대해 잘 몰라 집단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이다. 2015년 말 공청회조차 거치지 않은 채 통과한 전안법은 당시에도 졸속 입법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작 1년의 유예기간 동안 잠잠하다가 올해 시행되고 나서야 크게 논란이 된 것이다.
핸드메이드 상가가 밀집한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뜨개질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백 아무개 씨는 “나야 SNS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전안법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지만, 인근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 프리마켓 담당자는 “공고대로 3월에 프리마켓을 진행할 계획이지만 전안법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핸드메이드 시장이 거의 1인 창작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집단적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앞의 허 씨는 “주로 이용하는 광장시장 거래처 분들께 물어보니 전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며 “너무 답답해 온라인 카페를 만들고 국회 앞에서 1인시위도 하고 있는데 두세 분 정도만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핸드메이드 업계는 법안의 일부 조항을 1년 유예한다는 발표가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국가기술표준원은 생활용품 중 공급자적합성확인제품은 올해까지는 KC 인증마크를 게시하지 않아도 판매할 수 있도록 전안법의 일부 규정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게시 의무만 유예된 것일 뿐, 안전성 시험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수제 향초를 소규모로 만들어 파시던 분이 안전성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고 당해 80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폐점을 선언하는 핸드메이드 제조·판매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부 프리마켓은 홈페이지와 SNS 계정을 통해 전안법 때문에 일시적으로 운영 중단을 밝히고 있다.
핸드메이드 전문 오픈마켓 ‘핸디온’ 관계자는 “본업 외에 핸드메이드 판매를 병행하던 영세 판매자들은 작가활동을 접거나 확장을 주저하고 있다”며 “많은 작가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라인 판매를 포기하고 오프라인 프리마켓에 집중하고 있지만, 우리도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취미, 부업이 아니라 생계가 달린 작가들은 신고당할 걸 알면서도 폐점을 결정할 수 없다. 앞서의 백 아무개 씨는 “이 일이 본업인 나로선 전안법 때문에 너무 화가 나고 초조해 지난 설날에도 전전긍긍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심경을 전했다.
전안법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일각에서는 ‘안전 검증에는 핸드메이드 제품도 예외는 될 수 없기에 현실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핸드메이드 업계 종사자는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원자재나 약품을 직접 다루는 공장 위주로 KC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핸드메이드 작가는 “선진국과 같이 사전 규제가 아닌 사후 규제 방식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강하게 묻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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