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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나에게 ‘녹차라떼’를 돌려달라!

멀쩡하던 강을 녹차라떼로 만든 4대강 농단세력도 다시 꼼꼼히 뜯어보자

2017.02.14(Tue) 13:03:47

요즘은 아무 생각 없이 에스프레소 도피오 또는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하지만 녹차라떼만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돼지가 먹어도 결국 우리 몸에 좋다는 녹차를 섞은 우유 음료를 카페에 앉아서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는 기분이 삼삼했다. 눈을 감으면 마치 새벽 숲속을 걷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사람은 누구나 초록색을 좋아한다. 초록은 풀과 나무와 숲의 색이다. 아무리 생물 과목을 싫어하는 사람도 광합성 과정만큼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배운다. 초록에는 햇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바꾸는 비밀의 힘이 있다. 초록은 에너지이고 생명이다. 우리는 초록색 식물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녹차라떼를 마시면서 녹색 식물이 가득한 숲이나 강변의 아름다음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녹차라떼는 행복이다. 하지만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아주 먼 옛날은 아니다. 녹색 식물이 가득한 강변은 아름답다. 초록이 짙을수록 아름답다. 그런데 강물마저 초록색이라면, 초록이 짙다 못해 어디가 강물이고 어디가 강변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면 더 이상 아름답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사진으로만 봐도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녹색 식물이 울창한 강변은 아름답고 산소가 샘솟지만 녹조(綠藻)가 창궐하는 강물은 추하고 숨도 쉴 수 없다.

 

2015년 9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녹조 가득한 4대강 강물을 보여주며 환경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비즈한국DB


지난여름 낙동강이 그랬다. 작년만이 아니라 최근 몇 년 내리 그랬다. 보(堡)를 열어 흘려보내는 물조차 초록이었다. 영남 지방의 식수원인 낙동강 하구도 초록이었다. 낙동강만 그런 게 아니었다. 금강도 초록이었고 심지어 한강마저도 초록색을 띠었다.

 

시민들은 강물을 보고 처음에는 녹차라떼라고 불렀다. 해가 거듭할수록 초록은 짙어졌고 그나마 애교라도 있던 녹차라떼라는 비아냥 대신 녹차곤죽이니 잔디밭이니 하는 표현이 쏟아졌다. 어느덧 초록은 죽음의 색깔이 되었다.

 

4대강 사업을 하고 나면 강이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아니다. 알았다.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돈을 벌고 싶었고 그 욕망에 충실했으며 권력자와 뜻이 맞았다.

 

4대강 사업은 처음부터 거짓말로 점철되었다. 처음에는 남북 방향의 물류에 혁신을 이룬다더니 어느새 홍수와 가뭄을 막고 수질을 개선하는 사업이 되었다. 물류는 누가 봐도 터무니없었고 홍수나 가뭄이니 하는 것에는 유권자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때 전가의 보도가 있다. IMF 사태 이후 누구나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모토가 있다. “부자 되세요.” 이명박 정부는 돈으로 유권자를 현혹했다. 4대강 사업으로 34만 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 공사장에서만 10만 명이 일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사를 하려면 그 정도의 인원은 필요할 것이라고 믿을 만했다. 그런데 우리가 만리장성을 쌓던 진나라에 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보 한 곳의 공사장에 상주하는 인원은 작업인부와 관리 직원을 포함해서 100~200명 수준에 불과했다. 4대강에 설치한 보는 총 16개다. 여기에서 일한 사람은 많아야 1만 명이었을 것이다. 4대강 공사를 하는 바람에 사라진 골재채취장 인부를 생각하면 늘어난 일자리는 거의 없다.

 

토론으로 진행하는 대학교 교양 수업의 어느 날 주제가 ‘4대강 공사’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4대강 건설에 비판적이었지만 유독 관광경영학과 학생들은 4대강 공사를 열렬히 환영했다. 4대강 공사가 완공되면 온갖 수상 스포츠와 관광이 꽃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변에는 호텔이 서고 강에는 유람선이 떠다니며 모터보트에 줄을 매고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장면이 그려진 슬라이드도 보여주었다. 정부가 만들고 전공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나눠준 슬라이드다.

반대 논리에 막힌 찬성파 학생은 공사를 진척시키기 위해 자기가 모래라도 퍼나르는 노력봉사라도 하겠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연속극에서 보던 북한 노동당 청년당원의 모습 그대로였다.

 

22조 원이 들었다는 4대강 사업으로 삶이 좋아졌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22만 가구에 그냥 1억 원씩 나누어주었으면 적어도 100만 명의 삶이 바뀌었을 것이다. 아니 그냥 가만히만 있었어도 멀쩡하던 강이 녹조라떼로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9년 7월 1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을 마치고 4대강 살리기 사업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이명박 정부가 이런 짓을 하는 게 가능했던 데에는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부역이 한몫했다. 4대강 공사로 물이 맑아질 수 있을까?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4대강 공사 동안에도 물이 맑아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공사를 하다 보면 흙탕물이 이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이때 상식에 반하는 데이터가 발표되었다. 아무리 4대강에 찬성하는 과학자라고 해도 데이터를 조작하지는 않는다. 대신 약간의 조건을 조절했을 뿐이다. 공사는 남한강에서 하는데 수질은 북한강에서 측정한 것이다. 데이터 조작은 아니지만 거짓말이다. 과학자가 했다. 물론 그들은 돈을 벌었다. ​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상식적이며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2012년에 이렇게 말했다. “댐을 터라. 가뭄도 해결 못 하고 홍수도 해결 못 하고 물을 썩게 할 따름이다. 댐을 터라.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만고의 진리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얼 안다고 자꾸 헛발질을 하면서 국토를 난도질하고 국민을 괴롭히고 나라 곳간을 축내는가? 더 이상 꼼수 부리지 말고 댐이나 터라.”

 

녹조는 4대강 사업이 아니라고 해도 일시적으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가뭄이 들어 수량이 줄어들고 없던 보가 생겨나서 물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지고 체류시간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녹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간단하다. 댐이나 보를 트면 되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환경부장관인 윤성규 박사도 이 점을 인정했다. 그러자 ‘한국경제’와 ‘문화일보’가 들고 일어났다. 다른 언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보는 천동설주의자들의 지구와 같았다. 보만 열면 되는데 그걸 못 했다. 마치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인정하기가 그렇게도 힘들었던 로마 가톨릭 교회처럼 말이다.

 

국토부가 올해부터는 녹조와 수질 악화를 막기 위해 4대강 보 방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사진은 영산강 승촌보.


4대강 공사는 막았어야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좋다. 돈 욕심은 인정해준다. 쿠데타도 성공하면 어쩔 수 없다는데 이미 나눠 가진 돈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물은 다시 깨끗하게 해야 하지 않는가. 국토부가 올해부터는 녹조와 수질 악화를 막기 위해 4대강 보 방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물이 멈춰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보의 수위를 인근 지하수에 영향이 없는 수준까지 낮추기로 했다. 지금이라도 다행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4대강 사업 농단세력도 둘러보고 싶어졌다. 같이 돈을 나눠 가진 사람, 이들에게 과학으로 포장한 데이터를 제공한 사람, 이명박을 칭송하고 환경전문가들에게 윽박질렀던 언론인들의 명단을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아마도 그들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 있을 것이다.

 

우리 강에 맑은 물이 흐르는 날이면 독한 에스프레소 대신 부드러운 녹차라떼를 다시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녹차라떼를 돌려달라!​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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