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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홈캐스트’는 시작일 뿐…건국 이래 최대 주가조작, 15종목 더 털린다

강남 M&A 큰손들의 ‘펄 주가조작’ 수법 집중해부

2017.02.14(Tue) 11:33:07

“일단 적당한 회사 두 개가 필요해. 하나는 펄(Pearl·진주)이고 다른 하나는 셸(Shell·껍데기)이 되는 거지.”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펄’은 주가를 부양하는 역할을 맡는다. 펄의 핵심은 성공 가능성이다. 추진하는 프로젝트나 연구가 성공했을 때 그 가치가 짐작되지 않을 정도로 커야 한다. 당장 매출이나 이익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물이 빨리 나오면 오히려 곤란하다. 투자자들을 ‘희망 고문’할 정도의 기간이면 적당하다.

 

“펄은 일단 뭐니뭐니해도 때깔이 좋아야 돼. 기자들이 알아서 달라붙을 정도가 돼야지. 뭐 안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설명하는 ‘셸’의 조건은 단 두 가지다. 하나는 코스피 혹은 코스닥 상장사이면서 시가총액이 최대한 낮을 것. 다른 하나는 대주주의 주식 보유비중이 높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이익을 최대한 많이 낼 수 있다.

 

일단 셸의 주식을 인수 전 차명으로 최대한 사 모은다. 그다음 펄이 셸을 인수·합병(M&A)한다. 언론, 주식동호회, 회원제 유사투자자문업체 등을 최대한 동원해 셸의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린다. 최고점에 오르기 직전에 팔고 빠져서, 인수 자금을 보전한다. 의무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면 적당한 시점에 주식을 마저 팔아버린다. 이것이 지난 5년간 대한민국 주식 시장을 농락한 신종 주가조작의 실체다.

 

# 칼 빼든 검찰, 주가조작 세력 일망타진할까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서봉규 부장검사) 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주가조작 일당을 붙잡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연루된 상장사만 최소 15개 이상이며 피해액은 산출하기 힘들 정도다.

 

텔레비전 셋톱박스 생산기업 홈캐스트와 IT기업 에스아이티글로벌. 두 회사는 현재 검찰로부터 주가조작 혐의로 각각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두 회사에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다.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원영식 더블유홀딩컴퍼니 회장, 주가조작 브로커 김 아무개 씨, 명동 사채업자 최 아무개 씨, 그리고 투자전문회사 K 사의 윤 아무개 회장이다. 검찰은 이들 4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전부 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현재 잠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홈캐스트는 지난 2014년 4월 황우석 박사가 대주주로 있는 에이치바이온이 4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있는 황 박사가 펄, 홈캐스트가 셸이 되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가 주가조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번 논란에 휘말리게 된 것은 분명하다. 사진=비즈한국DB


유상증자에 필요한 자금 40억 원은 원 회장이 건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원 회장의 자금줄 역할을 한 것이 명동 사채업자 최 아무개 씨이고 주가조작 실무를 맡은 사람이 바로 김 아무개 씨라는 것이다. 또 홈캐스트 유상증자에 참여한 윤 아무개 회장도 함께 수사를 받고 있다.

 

에스아이티글로벌 역시 지난해 3월 디지파이코리아가 회사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등한 기업이다. 디지파이코리아는 저궤도 위성통신 특허를 다수 보유한 기업으로, 이란 시장에 75억 달러(862억 원) 규모의 슈퍼 와이파이 기술 수출 협약을 맺었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지난 1월 17일 검찰은 주가조작 혐의 에스아이티글로벌 이 아무개 회장과 한 아무개 대표를 구속했다. 이와 관련해 이 사건의 한 참고인에 따르면 주가 조작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홈캐스트 사건과 관련이 있는 주가조작 브로커 김 씨라는 것이다. 또 이 회사에 자금을 댄 사람 역시 명동 사채업자 최 씨인 것으로 보고 검찰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논현동 라움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술 시연행사는 200여 명의 관계자와 이란 통신업체 관계자, 전직 고위공무원 등이 참석하며 성황을 이뤘다. 사진=봉성창 기자


SK텔레콤에 중계기를 납품하고 있는 암니스 역시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암니스는 과거 ‘지에스인스트루’에서 ‘아이카이스트랩’을 거쳐 사명이 변경된 회사다. 암니스는 지난해 6월 창조벤처 1호 기업 아이카이스트가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아이카이스트가 실제로 인수한 지분은 4.67%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40여 명의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나머지 주식을 차지했다. 이러한 재무적 투자자 중 당시 12.69%의 지분을 차지한 곳이 바로 K 투자회사 윤 아무개 회장이다.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는 암니스를 인수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대표직을 그만뒀다. 현재 아이카이스트 김성진 대표는 200억 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홈캐스트, 에스아이티글로벌, 암니스 이들 세 회사는 펄이 상장사인 셸을 인수합병 하면서 셸의 주가가 급등했다는 점이다. 또 현재 검찰에서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들과의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돼 수사선상에 오른 회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들 회사의 이름이 공개될 경우 주식 시장에 미칠 파장 역시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필름 전문기업 S 사, 부품기업 S 사, 통신솔루션 기업 I 사, 엔터테인먼트 기업 C 사, 무선솔루션 기업 A 사, CCTV 기업 H 사, 건설자재 기업 C 사 등이 거론된다. 이들 상장사들은 최근 2~3년 사이에 주가가 단기간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올랐다가 서서히 내려가는 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금융당국, 그동안 왜 처벌 못했나

 

펄을 활용한 주가조작 기법은 그동안 꾸준히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거론돼 왔지만, 범죄사실 입증이 쉽지 않아 기소조차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인수합병부터 지분 매각에 이르는 전 과정이 합법적이다. 또, 누가 보더라도 펄이라는 확실한 주가 상승 재료가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주가를 올리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자연스럽다. 펄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주가가 급등했다가 급락하는 형태가 아닌 급등 후 서서히 내려가는 형태를 취하는 것도 개미 투자자들의 의심과 불만을 사지 않는 부분이다. 

 

인수합병 이후 펄이 셸의 경영에 참여하는 등, 겉에서 보면 정상적인 인수합병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은 셸이나 자금 마련이 필요한 펄도 주가조작에 관여했거나, 최소한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그동안 법망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수합병 계약 과정의 맹점 때문이다. 보통 인수합병은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인수합병 전 누군가 주식을 매집해도 이를 미공개 정보로 판단하기가 까다롭다. 

 

또 차명으로 계좌를 관리해 왔기 때문에 더더욱 수사가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이러한 사례를 주가조작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수사당국이 ​금융감독 기관에 유권해석까지 받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펄이 비상장사인 만큼 재무제표나 사업 타당성 등에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대신 이들이 택한 것은 언론플레이였다. 앞서 제보자가 말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언론사 데스크급 간부들에게 은밀히 주식 정보를 공유하는 대가로 인터뷰 등 기사를 청탁한다. 

 

군소 언론사에는 아예 비용을 지불하고 보도자료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움직였다. 주식을 보유한 언론사 간부가 이후에도 계속 해당 기업에 비판적 기사를 내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인 기사를 내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귀띔했다.

 

언론사에 나온 기사를 바탕으로 주식 동호회가 움직인다. 주식 동호회에서는 기사를 바탕으로 허위 정보를 짜깁기 해 소위 ‘지라시’를 만들어 돌린다. 과거에는 포털 커뮤니티를 많이 이용됐지만, 최근에는 라인이나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에 비공개방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지막으로 유사투자자문업체가 있다. 이들은 미리 투자 종목을 찍어주는 대가로 회원들에게 매달 상당한 회비를 받는다. 이 중 일부가 주가조작 세력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들은 주가조작 일당들에게 사전 정보를 듣고 이득을 취하는 대가로, 보유한 회원들에게 한발 늦은 정보를 제공한다. 개미 투자자 회원들은 주가가 오르는 것을 목격하지만 매도 시점을 정확하게 몰라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다.

 

일부 언론에서는 명동사채업자 최 씨의 자금줄이 비선실세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 일가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내놓고 있다. 검찰의 칼 끝이 어디까지 겨눌지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 최근 검찰에서 이와 관련한 참고인 조사를 받은 한 관계자는 “홈캐스트 30억 원 차익 혐의는 이들을 구속 수사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검찰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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