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뮤지컬 또한 바뀌었습니다. 영화 뮤지컬은 ‘싱잉 인 더 레인’ 등의 전성기가 있었습니다(최초의 유성영화 또한 뮤지컬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영화가 유행하면서 뮤지컬은 암흑기를 겪습니다. ‘물랑루즈’와 ‘시카고’가 뮤지컬 영화를 부활시키기 전까지는 말이죠.
공연 뮤지컬은 꾸준히 강세였지만 미국 뮤지컬의 힘은 약했습니다. 영국의 뮤지컬 거장 두 명이 오랜 기간 뮤지컬을 이끌었지요.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그들입니다.
뮤지컬을 준비 중이던 미란다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가 제작하고 있는 뮤지컬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백악관이 미란다를 ‘시, 음악과 연설의 밤(Evening of Poetry, Music & the Spoken Word)’이라는 연례 문화행사에 초대한 겁니다. 백악관이 흥미를 가진 이유가 있었습니다. 미국 건국신화를 다룬 이 뮤지컬이 ‘힙합’ 뮤지컬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해밀턴에게서 힙합 정신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해밀턴은 카리브해의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사실상 고아로 자랐습니다. 전쟁통에 실력을 발휘해 미국 정부 이인자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오만함과 (사실로 밝혀진) 불륜 의혹, 주변의 질시 등에 휩싸여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미란다는 해밀턴에게서 힙합 영웅 투팍을 봤습니다.
뮤지컬 제작자이자 주연, 미란다의 백악관 공연 영상.
미란다는 해밀턴을 쏜 라이벌인 ‘버’의 시점에서 쓴 랩을 ‘시, 음악과 연설의 밤'에서 공연했습니다. 자신이 해밀턴을 힙합음악으로 표현한 이유에 대한 담백한 설명과 함께 말이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해밀턴’은 기록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초기 공연 3개월 동안 전석이 매진됐습니다. 성공에 힘입어 3개월 만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합니다. 브로드웨이에서도 ‘해밀턴’은 승승장구했습니다. 1주 기준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8주 만에 330만 달러를 벌었고, 단 8번의 공연으로 300만 달러가 넘는 티켓 매출을 냈습니다. ‘아메리칸 사이코’, 그리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스쿨 오브 락’ 등 신작 뮤지컬을 모두 실패로 몰아넣을 정도의 거대한 성공입니다.
‘토니상’ 수상식을 장식한 뮤지컬 ‘해밀턴’ 공연.
무엇이 ‘해밀턴’을 특별하게 만든 걸까요? 우선 홍보를 들 수 있겠습니다. 미란다가 백악관에서 공연했을 때 해밀턴은 딱 한 곡 만 만들어진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하나인 오바마가 있는 백악관에서 공연했으니 그 효과는 굉장했겠지요. 덕분에 ‘해밀턴’은 빠르게 공연으로 현실화됩니다.
공연이 시작한 뒤에도 ‘해밀턴’은 뛰어난 마케팅을 보여줬습니다. 바로 ‘Ham4ham(햄포햄)’이라고 불리는 티켓 추첨행사입니다. 당일 추첨으로 무료 티켓을 뿌리는 이벤트인데요, 무료 티켓 이벤트는 대부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합니다. ‘해밀턴’은 여기에 하나를 더했습니다. 추첨 행사 때 하는 짧은 공연입니다. 출연진은 물론, 스태프, 심지어 다른 뮤지컬 배우들까지 참여해서 즉흥적으로 날마다 다른 공연을 합니다. 이 공연은 뉴욕시에서 엄청난 화제를 부르며 뮤지컬 홍보에 기여했습니다.
홍보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시작을 다룹니다. 그것도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사람을 다루었지요. 이 자체도 역사성입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닙니다.
핵심은 현실과 과거의 만남입니다. 건국 이야기를 현재 젊은이들이 가장 즐기는 ‘힙합’으로 표현하니 더 큰 역사성을 띄게 됩니다. 미국의 시작과 현재의 만남입니다. 유색인종 이민자들의 음악, 가난한 젊은이들의 음악인 힙합으로 미국의 건국 신화를 다룬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생기는 거지요. ‘너희들이 바로 미국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건국의 영웅들 또한 유색인종 배우가 연기합니다. 그들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뮤지컬 ‘해밀턴’은 형식을 통해 ‘지금의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뮤지컬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지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선거기간에 이민자와 여성, 기타 소수자들을 모욕하면서 말이죠. 트럼프 정권의 부통령 펜스는 ‘해밀턴’을 보러 갔습니다. 출연진과 관객은 그에게 야유했습니다. 트럼프 정권을 상징하는 주장은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다. 백인 남자들의 나라다’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두 주장의 대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시작’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가 결정되지요. 힙합을 통해, 소수자를 건국신화에 참여시킨, 뮤지컬 ‘해밀턴’이였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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