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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주부 아빠 넘사벽’은 학부모 모임

남성 전업주부 지난해 16만 명 사상 최대…경험담 들어보니 ‘아이 키우는 보람 가장 커’

2017.02.10(Fri) 18:13:12

“직장생활 힘들다고 전업주부 하고 싶다는 사람들한테 가사와 육아야말로 가장 고된 육체노동이라고 말해준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렇게 힘든데도 엄마들이 왜 아이를 더 낳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더라.”

 

“세상이 많이 바뀌고 내 주변에 신여성이 가득하다지만 아직도 아빠가 주 양육자인 집을 보지 못했다. 부인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더 높은 경우라도 예외는 없다.” 

 

방송기자였던 강남구 씨는 아내와 사별 후 회사를 그만둔 뒤 ‘주부아빠’의 길을 선택했다. 사진=KBS  ‘인간극장’ 캡처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육아와 가사 노동을 하는 이른바 남성 전업주부는 지난해 기준 16만 1000명으로 2010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남성이 육아와 가사를 온전히 책임지는 ‘주부 아빠 시대’가 열린 것 아니냐는 기대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주부 아빠들은 남성이 전체 주부의 2.2% 정도에 그치는 현 상황에서 주부 아빠의 시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비즈한국’이 주부 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직 방송기자 강남구 씨(42)는 지병이 있는 아내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아들 민호 군을 홀로 키우고 있는 주부 아빠다. 그는 지난 2014년 KBS ‘인간극장’을 통해 아내와 사별 후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돌보는 ‘싱글 대디’로 소개되기도 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낸 ‘남자 1호’로 1년을 보내고, 그는 완전한 주부가 되기로 했다. 일과가 불규칙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생활비는 글쓰기 레슨 등을 통해 마련하고 있다. 

 

강 씨 역시 다른 주부 아빠들처럼 주위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낮에 젊은 남자가 돌아다니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이웃의 시선, 좋은 직장 그만두고 남자가 집안일이 웬 말이냐는 부모님의 우려 섞인 잔소리는 그를 포함한 주부 아빠들이 겪는 흔한 일이다.

 

그는 ‘비즈한국’과의 전화통화에서 “문화의 문제라고 본다. 남자는 주방이 아닌 밖에서 일해야 한다는 게 우리 어르신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지 않은가”라며 “얼마 전 아이가 친구들과 다투다가 엄마 얘기가 나와서 속상해 했다. (대개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우리 사회에선 어린 시절 엄마의 존재가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부아빠의 수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곱지않은 시선을 마주해야 할 때가 많은 소수자다. 사진=YTN 뉴스 캡처

 

자신의 적성을 고려해 주부의 길을 택한 남성들도 ‘직업으로서의 주부’를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업주부 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A 씨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려 고용센터를 찾아가 서류를 작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남자가 집에서 아이를 보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며 “가사와 육아가 성향에 맞았을 뿐인데 남자 주부에 대해서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학부모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 주부 아빠들이 학무모 커뮤니티에 속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주부 아빠의 수 자체도 적은 데다 남성도 주부일 수 있다는 인식이 아직 심어지지 않은 탓이다. 학부모가 참여할 일이 많은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었을 때 난감한 상황이 특히 많다. 

 

강남구 씨는 “요즘 학생 수가 적어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학부모가 학교 일에 참여할 일이 정말 많다. 모임에 가 보면 모두 엄마들이라 배려한다 해도 어울리기 쉽지 않다”라며 “아무래도 엄마들끼리 결정한 사안을 전달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려운 점도 많지만, 주부 아빠들은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다른 아빠들이 전업주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최대한 느껴볼 것을 권한다. 

 

강 씨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처음에는 인터넷 뱅킹을 할 줄도 모를 정도로 집안일에 무지했다”며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나 저녁 술자리가 그립기도 하지만 아이와 대화하고 교감하는 순간들이 주는 소중함을 알기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의 A 씨도 “우리 사회에서 경력단절은 여성만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전업주부 남편을 접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만약 둘째 아이가 생긴다면 다시 주부로 돌아가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남성과 여성의 학력수준이 거의 차이가 없음에도 여전히 여성 전업주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남녀 임금격차로 인해 여성 주부가 가계 경제에 이득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육아와 가사는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는 편견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며 “우리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건 남성 전업주부가 많아지게 하는 것이라기 보다 남녀가 육아와 가사를 보다 평등하게 분담할 수 있는 인식과 시스템의 마련”이라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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