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LG디스플레이가 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할 기업답지 못한 처신을 보이고 있다. 열악한 근무 여건을 언론에 제보한 내부고발자를 색출하기 위해 현장 근로자의 휴대전화 통화목록 열람을 강요하고, 내부고발자를 찾아낸 후 두 달 넘도록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등 보복 행위를 한 것. 내부고발자를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고소해 법적 공방도 앞두고 있다. 내부고발자인 문 아무개 씨의 사연은 이렇다.
문 씨는 지난 2006년 LG디스플레이에 입사한 현장직 근로자다. 지난해 9월 유기물 담당을 맡게 되면서 생산라인 셋업이 완료되지 않은 E5 공장에서 근무하게 됐다. 10년 근무 기간 동안 무탈하게 근무했던 문 씨는 유기물 담당을 맡게 된 이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OLED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유기화합물을 이용한 디스플레이 방식이다. 전자제품에 쓰이는 화합물인 만큼 흡입 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런 화합물질 분진이 공중에 떠다니는 가운데, 환기시설인 국소배기장치가 가동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해야 했기 때문이다.
셋업 작업을 위해 투입된 공사 인부들이 마스크 등 안전장치도 착용하지 않은 채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 위험해 보였다. 여러 차례 문제 해결을 상부에 요청했으나, 국소배기장치는 두 달 가까이 단 한 차례도 작동되지 않았다.
회사가 문제해결에 나설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문 씨는 결국 언론에 제보하기에 이르렀다. 제보한 지 이틀 만에 보도가 나왔다. 곧바로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은 E5 공장의 불시 현장점검에 나섰다. 점검 결과, LG디스플레이는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물질안전보건자료) 교육 및 특수건강검진 미실시에 따른 과태료 65만 원과 시정조치 명령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구미지청 관계자에 따르면 불시 현장조사 당시 E5 공장의 국소배기장치는 가동 중이었다.
문 씨는 언론 보도 이후 안심했다. 국소배기장치가 가동되면서 유해화학물질 노출 위험도가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직 근로자와 엔지니어 사이에서 내부고발자 색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문 씨는 불안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용의선상에 자신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었다.
한 달 후 노경팀 관계자가 문 씨를 찾아 휴대전화 통화목록 열람 동의서에 서명을 강요했다. 내부고발자 색출을 위한 과정이었다. 결국 문 씨는 자신이 내부고발자임을 자백했고, 휴대전화 통화목록 열람에 대한 동의서 서명에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후 LG디스플레이 관계자들은 문 씨를 ‘범인’이라 호칭하는가 하면, 두 달 넘도록 업무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문 씨는 ‘비즈한국’과 만나 “근로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 행위를 일삼았다”면서 “두 달 넘도록 회의실에서 죽치고 앉아 휴대폰만 만지다 퇴근했다. 출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됐고,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고생하다가 지금은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앞으로 회사에 어떻게 다녀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LG디스플레이 측은 전혀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겨울인데다 공사 중인 작업장이라서 국소배기장치를 작동시키지 않았다. 마치 독극물이 유출된 것처럼 포장됐는데, 먼지 나는 정도의 수준”이라며 “이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됐고, 징계 차원에서 내부고발자 색출 작업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3일 노경팀 직원 등 5명이 문 씨를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구미경찰서에 고소한 것이다. 문 씨가 언론사에 제보할 때 자신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동의 없이 알려줬다는 게 고소 이유다. 하지만 문 씨는 고소인에는 포함되지 않은 공장장의 연락처만 언론에 알렸다고 주장한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는 “문 씨가 연락처를 제공한 건 공장장 한 사람뿐”이라며 “보도 이후 LG디스플레이 구미공장 노조 비리 의혹을 제기한 제보가 줄을 이었고, 후속보도가 이뤄졌다. 고소인들은 후속 보도 내용을 보고 문 씨를 고소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또 다른 제보자들로부터 고소인들의 연락처를 제공받았는데, 고소인들은 내게 확인 작업 조차 거치지 않고 무작정 문 씨일 거라 판단한 것 같다. 세 달 동안 LG디스플레이 측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LG디스플레이 측은 문 씨를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고소하기 전에 담당기자에게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그 기자에게 연락해 문 씨가 제공한 연락처를 물었더니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말해줄 수 없다’고 하더라”며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내부 관계자의 연락처를 제공했기에 고소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내부고발자 색출 과정에서 문 씨와 함께 리스트에 올랐던 또 다른 현장근로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이 또한 당사자의 동의를 얻었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현장근로자들은 강압적 동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장직 근로자는 “인사고과에서 하위 평가를 받은 사람에게 내부고발자를 찾으려 혈안이 된 상사가 동의를 구하는데, 거부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내부에서는 OLED 유기물에 노출되면 불임된다는 소문도 떠도는데 ‘먼지 나는 정도’라는 해명은 터무니 없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문 씨는 내부고발자 색출 과정에서 노경팀 담당자로부터 협박, 강요, 모욕 등을 받았다며 지난 9일 담당자를 구미경찰서에 고소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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