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5일(현지시각)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Super Bowl) 경기에서의 현대자동차 TV 광고가 화제다. 현대차는 이번 슈퍼볼에서 제품광고 대신 기업이미지 광고를 선보였다.
내용은 폴란드 주둔 미군이 단체로 슈퍼볼 경기를 보던 도중 3명의 미군을 따로 불러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각 별도 시청각실에 앉은 그들에게 잠시 후 360도 VR(가상현실) 스크린에 슈퍼볼 경기장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잡힌다. 마치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에 온 것 같은 착각에 주위를 돌아보던 주인공들은 관중석에서 자신들의 가족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이디어가 돋보인 부분은 당시 진행되던 슈퍼볼 경기장의 모습을 광고에 담았다는 것이다. 몇 시간의 시간차는 있었지만, 거의 생중계 수준으로 1분 30초짜리 다큐멘터리를 찍은 셈이다. 다른 자동차 메이커를 포함한 대부분의 업체들이 기존처럼 ‘웰메이드’ 형식의 광고를 방영한 것과는 차별화됐다. 최근 슈퍼볼 광고는 헐리우드 영화 수준의 스토리텔링과 특수효과를 보여주는 것이 일반화됐다. 때문에 슈퍼볼 광고에 대한 기대감도 크고 사전 예고편 격의 TV CF가 방영될 정도다.
경쟁사인 도요타자동차, 혼다,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는 화려한 볼거리, 감동적인 스토리, 웃음 코드 등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했다. 이와 달리 현대차가 실시간 다큐 형식으로 CF를 선보인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광고는 훌륭했지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현대자동차 광고라기보다는 삼성전자 또는 인텔 광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가전 전시회에 자동차 업체들이 대거 참가할 정도로 자동차가 IT 제품화된 것을 반영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VR로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의문이다.
또 하나의 씁쓸함은 해외 주둔 미군을 소재로 한 점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찬가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현대차가 이렇게 미군을(또는 미국을) 아낍니다’라는 메시지를 트럼프에게 보내려는 의도였을까. 트럼프는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미국 내 공장 설립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광고의 소재 또한 미국인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이다. 올림픽, 월드컵 축구와 달리 슈퍼볼은 오로지 미국인들만의 잔치다.
매년 슈퍼볼 광고에서 지적되는 것이지만, 현대차가 추구하는 정체성이 광고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지난해 현대차는 제네시스(현 G80)의 위치추적 기술을 코믹하게 표현해 호평을 받았는데, 위치 추적은 1.6km(1마일) 이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거의 쓰이지 않는 기능이었다. 고급 브랜드로의 도약을 추구하기에는 내용이 적절치 않았다.
올해 슈퍼볼 광고에서도 현대차 광고에는 현대차의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슈퍼볼 광고는 현대차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계열 광고회사인 이노션의 작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노션은 정몽구 회장의 장녀 정성이 고문이 실질적인 경영자 역할을 하는 회사다. 이노션이 글로벌 광고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현대차가 퍼주기식 지원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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