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이 외출복이 예뻐 추운 겨울에도 밖에 나갈 맛이 난다 하는 패딩 점퍼는 원래 방한을 위한 에스키모의 옷이었다. 이 옷이 패션 아이템으로 재탄생된 건 불과 몇십 년도 안 된 일.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한겨울이다. 패딩 점퍼를 따뜻하고도 멋지게 잘 입는 법.
얼마 전 프랑스 브랜드 몽클레르(몽클레어·moncler)의 패딩 점퍼를 구입했다. 해외 사이트에서 시즌마다 하는 정기 세일이 아니었다면 높은 가격에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충전재는 덕다운이고 겉감은 방수 소재인 폴리에스테르일 뿐인데 도대체 이 패딩 점퍼는 왜 이리 비싼 건지 모르겠지만, 예쁘니까 봐준다며 내가 전지현이 된 양 스스로를 달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패딩 점퍼는 등산을 하거나 스키를 타는 등 운동을 할 때나 추위에 노출된 작업을 할 때 등 기능성에 의존해서만 입던 옷이었다. 그러니까 격식을 차린 옷차림 위에는 걸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출근길에 아무리 추워도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은 코트를 입고 코끝이 빨개질지언정 잘 차려입은 수트 위에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진 않았다. 어렸을 땐 패딩 점퍼를 입으면 팔이 옆에 잘 붙지 않을 만큼 부피감이 느껴졌었다. 그러니 포멀한 스타일과는 이질감이 더 도드라졌을 거다. 일상복으로 잘 입던 겉옷이 아니었기에 (생각해보면 코트는 여러 개가 있었어도 내 옷장에 패딩 점퍼는 단 한 개였다) 가격에 민감하지도 않았었다. 소위 ‘등골 브레이커’라 불리며 학생들끼리 부의 척도가 되는 근래 일어나는 일 따윈 없었단 말.
그랬던 패딩 점퍼가 불과 몇 년 안에 잘 입으면 코트의 마성을 넘어설 만큼 멋진 스타일을 만드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특히 수트 위에 패딩 점퍼를 매칭한 남자들이 세련된 스타일러로 꼽히며 주목을 받고 있다.
패딩은 속을 채워 넣는다는 뜻으로 다운이나 면 솜 등을 채워 넣고 퀼팅한 의류를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패딩 점퍼의 시작은 에스키모들이 주로 입는 모피로 된 외투를 뜻하는 파카에서부터다. 파카는 방한 방풍이 가능한 후드가 달린 재킷으로 사냥을 통해 얻어낸 가죽으로 만든 아우터를 총칭하는 말이다.
무거운 파카의 단점을 보완한 패딩이 등장한 건 1930년대 미국의 데지 바우어라는 사람 덕분. 스포츠용품점 사장이던 그는 겨울 낚시를 하던 중 저체온증으로 고생을 했고 방한용 재킷을 연구했다. 무게에 비해 따뜻하지 않은 양모 재킷의 대안으로 러시아인들이 입던 구스다운 재킷을 찾아냈다. 하지만 가볍고 따뜻한 반면 부피가 너무 크고 충전재가 한쪽으로 쏠려 뭉치는 점을 보완해야 했고 그는 일정한 간격을 구분해 바느질을 하는 퀼팅 기법을 고안해냈다.
그러나 패딩 점퍼를 상용화한 건 1950년대, 프랑스 브랜드 몽클레르였다. 캠핑 장비업체였던 그들은 공장에서 겨울을 보내는 직원들을 위해 작업복으로 덕다운재킷을 만들어 공급했고 그것이 입소문을 타며 산악원정대가 착용하면서 기능성 의류로 주목을 받게 된다. 그 후 1968년 그르노블 동계 올림픽에서 프랑스 알파인 스키팀의 유니폼으로 선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
1980~90년대 패딩 제품은 충전재로 솜을 사용했으나 그 후 오리 깃털을 충전재로 하여 보온성을 높이고 무게를 줄였다. 오리 솜털과 오리 깃털을 함께 사용하기도 했던 덕다운은 좀 더 가볍고 보온성이 높은 구스다운으로 충전재를 업그레이드하는 등 패딩은 나날이 발전하는 중. 미래의 패딩 충전재는 어떤 소재가 선택될지 기대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근래에는 신소재들의 개발로 겉감마저 훨씬 가벼우면서도 보온 효과는 뛰어난, 거기다 디자인까지 훌륭한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니 수트 위에 패딩을 입는다 해도 상체 운동에 주력한 보디빌더처럼 부피가 커 보이지도, 당장 스키 경기를 하러 떠나야 할 선수의 아우터처럼 어색하지도 않다. 심지어 요즘 패딩 점퍼는 경량 제품도 등장해 코트 안에 껴입어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다. 멋내다 얼어 죽는단 말은 패딩 점퍼 앞에선 무릎을 꿇어야겠다.
따뜻하게 멋낼 수 있는 패딩 점퍼로 겨울의 끝을 잡아보길. 겨울의 끝자락인 2월 즈음엔 50% 아니 그 이상의 세일 상품도 많으니, 비싼 가격에 엄두를 못 냈던 ‘찜’해둔 패딩 점퍼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쇼핑의 요령이다.
정소영 패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