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벌인 수사를 살풀이하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처음 출범했을 때 법조계 내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특검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을 받으며, 넓고 빠르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검은 김기춘 청와대 전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최근 비선 진료 의혹이 제기된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 씨 까지 구속하며 10명이 넘는 피의자를 구속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 씨는 여전히 입을 닫고 있지만, 특검이 이처럼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속된 피의자들 중 교수 출신들로부터 ‘한때 충성을 바친 박 대통령과 주변인들의 비리 폭로를 받아낸 덕분’이라는 평이 나온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안종범 전 대통령 정책조정수석. 재판에서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는 듯한 발언을 했던 안 전 수석은 최근 청와대 재직시절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빼곡히 적은 본인의 수첩 39권을 특검에 제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전횡을 특검에 진술하고 있는데, 이 수첩에는 미르·K스포츠 재단의 자금 모금 과정 및 삼성 합병의 청와대 개입, 의료농단 등 본인이 연루됐던 내용들이 상세히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수석이 자발적으로 수첩을 제출하게 된 계기는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 씨가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수석이 제출한 이 수첩은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말 구속 직전까지 안 전 수석이 쓰던 수첩들로, 안 전 수석이 특검 수사에 협조하기로 선택하며, 청와대 재직 당시 그의 곁을 지켰던 보좌관을 통해 직접 청와대에서 가져와 특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삼성 특혜 제공 관련 수사에 안 전 수석이 협조했다면,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에서는 역시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출신인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수사팀의 귀인 역할을 맡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 배후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있었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밝혔다.
김 전 장관은 또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문체부 인사개입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리는 데도 중요한 진술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이화여대 비리 수사 때 류철균 이인성 등 교수들이 혐의를 인정하는 진술을 일찌감치 하면서 비교적 빠른 시점에 수사가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연스레 특검 주변에서는 “교수가 귀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 특수 수사에 밝은 한 검찰 관계자는 “교수들은 평생 공부만 하다가 권력을 맛을 들여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최소화 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며 “‘진리를 밝히고 사회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학자적 양심 또한 이들이 수사에 협조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진술을 하나씩 받아내고 있지만, 특검팀의 청와대 수사는 난항이 예상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오는 28일까지 유효한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 9~10일쯤 박 대통령 대면 조사를 추진 중인 특검팀은 이번 주 추가 압수수색에 나서더라도 경내에 진입할 별 다른 묘수는 없는 상황이다.
당초 청와대 관계자들을 상대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는 안도 검토했지만, 특검팀 관계자는 “청와대가 형사소송법 규정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승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죄 적용은 사실상 어렵다”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특검은 청와대에서 자료를 임의제출 방식으로 확보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앞서 특검팀은 압수수색을 위해 오랜 기간 법리 검토를 했다고 했지만, 과거 사례와 같이 무너져버린 모양새인데, 결국 특검팀의 협상력에 따라 의미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도 결판이 나게 됐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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