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수출이 4년 만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면서 산업계가 모처럼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 독일을 환율 조작을 통해 무역이익을 얻는 국가로 지정한 상황에 마냥 미소를 짓기만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내 유력연구소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도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통화 전쟁 대상은 한국이 될 것이라고 지목했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올 1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1.2% 늘어난 403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13년 1월 이후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수출품 중 주력제품인 석유제품의 수출이 67.4% 급증하고, 반도체와 석유화학 수출도 각각 41.6%와 34.9%나 늘었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안한 상태이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보호주의 우려가 커가는 와중에 수출이 급증하면서 정부와 산업계에는 웃음꽃이 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수출 목표액(5900억 달러)을 더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1일 중국과 일본, 독일이 자국 통화를 고의로 저평가해 수출에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며 선전포고를 한 상황에 한국의 수출 급증은 트럼프 행정부의 눈을 한국에 돌리는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에 대한 수출이 올 1월에 크게 늘어난 상황이어서 이러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올 1월(1~20일) 미국에 대한 수출액은 32억 1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9%나 늘어났다. 전체 수출액 중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11.6%로 단일 국가로는 중국(28.1%) 다음으로 높다.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664억7300만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3.4%를 차지했다.
문제는 한국이 이처럼 미국에 대규모 수출을 하면서 미국이 요주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①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②대미 경상수지 흑자 GDP(국내총생산) 대비 3% 초과 ③외환 시장 개입 규모 GDP 대비 2% 초과, 세 가지 기준 중 두 가지에 해당할 경우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미국이 정한 6개 관찰 대상국에 포함되어 있다. 6개국에는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은 중국과 일본, 독일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올 1월 대미 수출 중 크게 늘어난 품목은 석유제품과 자동차, 자동차 부품 등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일자리 확보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업종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자릿수 수출 증가가 마냥 좋은 수치만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PIIE는 3일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전쟁 다음 타깃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한국 원화의 경우 실제 가치보다 6.0%나 저평가됐다는 것이다. 통화가치가 저평가되면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PIIE는 한국의 원화 가치가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은 중국이나 일본, 독일보다 저평가됐다고 지적했다. 중국 위안화는 0.7% 고평가되어 있고, 유로화는 독일 기준으로 0.8% 고평가된 상태다. 일본 엔화는 3.3% 저평가됐다. 다소 고평가된 위안화와 유로화를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은 것은 달러화가 7.9%나 고평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주요국 중 가장 통화가치가 저평가된 한국은 트럼프의 압박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미국이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반덤핑 관세나 상계관세 부과 조치에 필요한 무역구제 조사를 실시한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우려를 키운다. 미국의 대 한국 무역구제 조사개시 건수는 2014년 2건에서 2015년 4건, 2015년(1~9월) 5건으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규제 강화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어 이러한 무역구제 조사도 올해 더욱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1월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반기기만은 어려운 일이다”며 “또 올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정한 올해 수출 목표 5900억 달러는 달성이 어려울 수 있고, 자칫 목표치를 무리하게 추구하다가는 미국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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